<수필 아카데미 제4회 강좌 요지>

 

수필 속의 시와 시정

 

                                                                                             許世旭

시와 수필, 곧 시문(詩文)은 문학이라는 울타리가 세워지기 훨씬 옛날, 그것들은 일가一家였고, 나이조차 난형난제였다.

사람이 살면서 애환을 만나면 감탄하고 사건이 생기면 그것을 기억에 유보시키려는 원초적이고 실용적인 노력으로부터 비록 하나가 원초적인 서정의 발로라면 하나는 실사적인 생활의 기록이요, 하나가 가슴으로부터 머리로라면 하나는 머리로부터 가슴으로 번짐이며, 하나가 느낌[感]의 표현이라면 하나는 앎[知]의 전달, 하나가 이미지의 점철이라면 하나는 묘사의 군락, 하나가 운율의 물결이라면 하나는 자연의 가락이라는 등의 분별을 보였지만 그것들이 자아自我를 중심으로 소재를 넓히면서 형상화를 통한 심미작업이라는 예술 본령에 사실상 일치한다.

청(淸)나라 때 오교(吳喬)라는 평론가는 그의 『위로시화(圍爐詩話)』에서 문학의 소재와 표현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 가지 소재요 본질인 쌀을 갖고 그 목적에 따라 그 실체의 형상을 유지한 채 가공한 밥이 수필이라면 그 본질만 유지한 채 변화와 굴절의 소산인 술을 시라고 했다. 그 소재와 본질이 같을지라도 제작하는 방법과 작용에 따라 예술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겠다.

여기서 서정성·역사성·사상성 등이 시와 수필 사이에 공동으로 추구하는 소재라면 상징·함축·암시·연상적인 방법으로 보다 넓고 깊은 심미적 기능을 지니고 있는 시적(詩的) 정서가 그 본질일 것이다.

3천5백여 년 전, 중국 갑골문에 나타난 '詩' 자를 문자학적으로 분석할 때 말[言]과 절[寺]의 회의자였다.

절은 당시의 궁정(宮廷)을 뜻했다. 바로 '말의 통수자'였다. 다시 훈고학적인 해석을 따르면 '시는 감정과 사상의 표현[詩言志]'이었는데 여기서 시는 문학 전반을 대표했었다. 사실상 기원전만 해도 시가 문학의 중심이나 원류일 뿐 아니라 학문을 총칭키도 했었다. 심지어 시의 지위를 경전으로 추대하여 『시경(詩經)』이라 했다.

그 뒤, 수천 년 동안 시가 문학의 원류요 중심으로 지위를 누린 것도 시적 정서가 문학 일반의 바탕이었음은 물론 실제로 산문을 모른 채 시를 쓰는 사람이 있지만 시를 모른 채 산문을 쓰는 사람이 드물다는 예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행운유수(行雲流水)의 장편 서사시일지라도 시적인 정서나 시적인 구성이 그 밑바닥에 배여 있고 깔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수필은 광의의 시일 수 있고, 그러한 시정이 없는 수필은 기운이 없는 한갓 줄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시와 산문의 동질성은 그들이 문학의 갈래에 따라 분가한 뒤에도 간헐적으로 드러났다. 외형적인 현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형적인 시가 가사(歌辭) 또는 장단구(長短句)로 그 규율을 파괴하거나 응련된 시구詩句의 산문화를 보였고, 자유방만한 산문이 4·6체의 변문(騈文) 또는 산문시(散文詩)로 그 만연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었다. 본시 짧았던 시는 갈수록 가사·사곡(詞曲)·악부(樂府)·사설(辭說)·신시(新詩) 등같이 길어졌고, 본시 길었던 산문은 갈수록 소품(小品)·산문시 등같이 짧아졌다. 이처럼 시의 산문화와 산문의 시화, 거기다가 시의 장편화와 산문의 단형화 같은 상호 교차현상이 지금도 진행중에 있다. 여기서 또 한 번 시와 산문의 분별은 상대적일 뿐 절대적이지 않음을 확인케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시는 시요, 수필은 수필이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지질(地質)과 지기(地氣)에 상관없이 지상물을 그 건축 자재와 양식에 따라 법적으로 등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외양부터 다르다. 하나가 단절된 섬이라면 하나는 연면한 구릉이다. 하나가 분출이라면 하나는 용해다. 하나가 안개라면 하나는 비다. 하나가 추상화라면 하나는 사생화다. 하나의 테마가 언어 밖에 있다면 하나의 테마는 언어 안에 있다. 하나가 심상의 조합(組合)이라면 하나는 사실의 결구(結構)다.

무엇보다 하나가 농축된 결정체라면 하나는 진솔한 원형질이다. 핵심적이고 원액적인 결정체의 기능이 사유(思惟) 공간을 무한대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용해시키고 희석시켜 시의 형질을 벗기는 일은 수필의 권능이다. 말하자면 시를 수용하면서 그 마당을 시의 그것보다 훨씬 넓힌 것이다.

시와 수필 사이의 본질적인 유사성 때문에 수필 속에 시가 많이 보인다. 대저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수필 속에 시를 인용하는 경우, 하나는 시와 수필을 모자이크 하는 경우, 또 하나는 시적으로 쓰여지는 수필, 곧 산문시를 두고 말한다.

수필에 시를 인용함으로써 서정적인 분위기를 상승하거나 의미의 함축성을 강화하는 일인데, 자칫 잘못하면 산문 속에 이미 서술된 사건이나 제시된 주제의 중복 강조에 그치기 쉽고, 심지어 인용된 시의 해설로 저락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요는 인용으로 말미암아 수필의 흐름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수필에 시나 희곡적인 장면을 모자이크 함으로써 보다 다양한 효과를 시도함인데 잘못하면 지식의 과시나 부자연한 접목이 주는 생경을 느끼게 한다. 심지어 수필의 독자성을 훼손하거나 장르의 성격을 흐리게 한다. 성공한 접목은 접목의 자국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산문시는 시와 산문의 중간 형태로서 동서고금에 그 예는 흔했다. 그런데 산문시가 있다면 '시산문'도 있어야 한다. 산문시는 산문이로되 시질(詩質)이 진하고, 시산문은 시로되 산문적 자유가 질성이 진한 것이다.

특히 수필에서 시의 인용이나 수필과 시의 혼성은 성공도가 높지 않다. 그만치 개성을 살리면서 융화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다. 수필 속에 시정(詩情)이나 시격(詩格)을 녹이되 시의 형태나 시의 운율은 제한되고 절제되어야 한다.

흔히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이는 글이라 한다. 행운유수와 같은 자유성과 유려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형태의 자유성은 내용의 진실성과 함께 수필의 지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수필의 금과옥조인 자유성은 문세(文勢)의 해이를, 진실성은 예술성의 쇠락을 초래하기 쉽다. 이의 보완을 위해서 시적 정서와 시적 구성의 부분적인 도입은 필요하다. 다만 그 언어는 평이명백하고 그 흐름은 도도율율해야 한다. 그래서 그 문체는 자유롭되 그 주제는 응결되어야 하는 소위 '형산신불산(形散神不散)'론을 위해서도 시는 수필의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