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 홀

 

                                                                                       고봉진

중학교 2학년 때, 한반도에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대구에서 다니던 학교 교사가 군에 징발되어, 교도소의 죄수들이 경작을 하던 수성천변 채전 한 구석에 급히 세워진 통나무 가교사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교실 바닥은 맨땅 그대로였고, 두 반이 한 교실에 합반을 하여 공부를 했었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지금 생각하면 용케도 우리 중학생들은 꽤 자주 극장에 가서 영화를 단체로 관람했었다. 그때 본 영화 중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분홍 신', '악성 헨델' 등과 함께 '카네기 홀(Carnegie Hall)'이다.

전시 중이라 정말 곤궁한 집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영화는 관람을 희망하는 학생들만 가게 되어 있었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희망자를 모으는 며칠간의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 닉네임이 베토벤이었던 음악 담당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뒤에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며, 아주 열성스럽게 관람할 것을 권고했었다. 그 어려울 때도 음악 교실은 별채로 따로 있었는데, 그곳은 그래도 바닥에 마루가 깔렸고 피아노도 놓여 있었다. 정면 벽 한 구석에 베토벤의 데스마스크가 걸려 있었는데, 그 석고상과 선생님의 요철이 풍부한 얼굴이 너무 닮아 보였기 때문에, 우리들은 선배들이 붙인 별명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감심을 했었다.

그 선생님이 '카네기 홀'을 봐야 할 이유로 내세운 것은 금세기 최고의 지휘자들이 거의 다 그 영화에 직접 등장하고 있으며, 그 무대가 바로 세계적 음악의 전당인 실제의 '카네기 홀' 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무슨 수로 그 훌륭한 거장들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으며, 뉴욕의 '카네기 홀' 구경을 할 수 있겠느냐며,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큰 행운이란 점도 강조했다. 텔레비전도 없었고, 더더구나 비디오 레코드 같은 영상 재생장치는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니, 한번 지나가는 영화를 놓치면 다시 보기란 어려울 때였다. 그래도 각 반 정원의 반 수 정도가 겨우 영화 관람을 했었는데, 다행히 나도 그 중에 속했었다.

가난한 나라 아일랜드의 고아 소녀가 미국에 이민을 와서 우연한 기회에 '카네기 홀'에서 음악을 듣게 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는 '카네기 홀'을 사랑하게 되고, 그곳에서 여러 가지 일자리를 얻어 평생을 살아간다. 처음에는 남편을 그 무대에 세우려다가 실패하고, 아들을 어릴 때부터 피아노 공부를 시키며, 자주 카네기 홀에 데리고 가서 거장들의 연주를 보며 자라게 한다. 결국은 그 아들이 피아노 작곡자 겸 연주자로 그 무대를 밟는 것을 본다. 이것이 단순한 그 영화의 스토리였다. 그러니 상영 시간의 대부분은 그 모자가 '카네기 홀'에서 거장들의 연주나 지휘를 보는 장면들을 이어놓은 것이었다. 솔직히 어린 중학생에게는 지루하기만 한 영화라 졸음을 참느라 혼이 났었다. 많은 지휘자 중에서 사진으로라도 본 적이 있는 낯익은 사람은 영화 '오케스트라의 소녀'에도 출연했던 스토코브스키(Stokowski) 한 사람뿐이었다.

극장을 다녀온 뒤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거의 한 시간 동안 각 지휘자의 독특한 몸짓 흉내까지 내며, 그들을 본 감격을 피로하는 것을 들었을 때는, 따분하고 재미는 없었지만 뭔가 굉장한 것을 보고 왔구나 하는 생각이 막연하게나마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카네기 홀'이란 곳이 음악가나 그 애호가들에게는 엄청난 꿈의 전당이라는 것이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그 선생님 덕분에 음악을 듣는 것을 무척 즐기는 젊은이로 성장했다. 음악 듣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스트라디바리(Stradivari)를 갖기를 열망하듯이 좋은 음악가와 좋은 소리를 만날 수 있는 '카네기 홀'과 같은 뮤직 홀에서 음악 듣기를 열망하기 마련이다. 언젠가 그 '카네기 홀'에 가서 직접 그 좋은 소리를, 그리고 운이 좋으면 역사적인 일로 기록될지도 모를 거장의 명연주를 들어보고 싶다는 지극히 통속적인 꿈을 오래 간직했었다.

지난 8, 90년대에는 회사 일로 뉴욕에 자주 갔었다. 그때야 비로소 '카네기 홀'에서 음악을 들어보았으면 하는 젊은 날의 바람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 갔을 때는 정작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언제나 원하면 다시 올 수 있는 곳이란 생각으로 덤덤했을 뿐이었다. 1986년 찬반론이 왁자지껄한 가운데 메인 홀의 '수복(restore)'이란 이름의 개조 공사가 반년 이상 걸린 후 연말에 재 개관을 하자, 다음 해 초 신년 연주회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갔다가, 음향효과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중론을 나름대로 확인했을 때가 오히려 더 감격스러웠다.

얼마 전에 어느 매체에선가 1950년대 후반에 링컨센터로 본거지를 옮겨 갔던 '뉴욕 필하모닉'이 2005년 이후 다시 카네기 홀로 돌아오기로 되었다는 반가운 기사를 읽었다. 실리를 추구하는 미국 사람들이니까 음향효과도 우선적으로 고려했겠지만, 묵은 것의 가치를 더욱 존중해가는 그곳 인심의 추이도 잘 반영한 처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