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변이

 

                                                                                           홍혜랑

호주 원주민 오스틀로이드족의 삶을 소개한 『무탄트 메시지』는 종교서적이 아니면서 읽는 이의 영혼을 절대자 앞에서 만큼이나 알몸으로 벗게 했다.

호주에서 자연예방의학을 공부하며 의료활동을 하고 있는 미국인 여의사 모건은 어느 날 원주민들의 초대를 받는다. 원주민 통역자의 지프를 함께 타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불원천리 그들의 거주지를 향해서 달렸다. 그러나 그곳엔 그녀가 궁금해 하던 원주민들의 요리를 차려놓은 식탁 같은 것은 없었다. 창고같이 생긴 오두막집엔 스스로 '참사람부족'이라고 부르는 60여 명의 남녀 원주민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가족 모건을 위한 정화의식을 마치게 되면 곧 대륙 횡단여행을 떠날 참이라는 걸 손님만 모르고 있었다. 초대는 명분일 뿐 선의의 납치였다. 평소에 그들에게 호의적인 미국인 여의사 모건을 이번 횡단여행에 참여시킨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손님은 원주민들과 똑같이 담요처럼 생긴 한 장으로 된 낡은 천으로 몸을 가리도록 권유 아닌 명령을 받는다. 원주민들과 사진을 찍으려고 준비해 온 카메라, 오늘의 초대를 위해서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서 장만한 투피스와 구두, 국제 운전면허증과 노란 호주 지폐가 들어 있는 핸드백, 다이아몬드가 박힌 손목시계 등 그녀의 몸으로부터 모든 것이 떨어져나갔다.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원주민 여자 하나가 악의 없는 미소로 여의사와 눈을 맞추더니 손님이 지녔던 모든 것을 몽땅 모닥불에 던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말 그대로 정화의식이다. 이 책의 저자 모건은 원주민들의 이 어처구니없는 짓거리에 현기증이 나도록 놀라면서도 왜 항의하며 모닥불로부터 자신의 소지품들을 끄집어내지 않았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물질에 대한 애착, 관념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참다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은 원주민들과 함께 수개월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난 후의 일이라고 고백한다. 달이 세 번 찼다가 이지러지는 넉 달 동안 계속된 사막의 여행에서 다이아몬드 박힌 금줄 시계 같은 건 조금도 필요하지 않더라고 했다.

사막의 험한 땅을 그들과 함께 맨발로 걷던 백인 여의사가 발바닥 고통을 호소할 때 원주민들은 그녀에게 '무탄트'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돌연변이'는 그녀에게 합당한 이름이다. 인간이 정글에서 맨발로 사냥을 해서 먹고 살던 시대가 그리 오래 되지 않건만 우리의 발바닥 세포는 발 빠르게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갖가지 새로운 고급 신발을 신고 아스팔트를 사뿐사뿐 걷는 동안 돌연변이들의 발은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졌다.

원주민들은 사막을 횡단하는 동안 식량이나 잠잘 텐트를 지고 가지 않는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걱정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은 곧 이들의 삶이 아니던가. 섭씨 40도가 넘는 기후에 물도 음식도 없이, 모든 것을 자연이 제공해 주는 것에 의존한다. 곤충을 만나면 곤충을, 나무열매를 만나면 열매를 먹지만 언제나 다 먹어치우는 법이 없다. 번식을 위해서 필요한 것만큼 남겨놓으며 그때마다 먹이에게 감사한다.

원주민들의 감사하는 마음은 매일 성경을 읽는 우리보다 더 진하다. 백인 선교사들이 그들에게 식사하기 전 2분간 감사기도를 드리라고 했을 때 그들은 의아했다. 감사하는 마음은 그들의 혈관 속을 돌고 있는 유전자 형질만큼 타고난 것인데 2분간만 감사하라니. 더 많이 감사해야 할 사람은 선교사들이라고 생각했다.

200여년 전 영국 안에 죄수가 넘쳐 감옥이 모자라게 되자 족쇄가 채워진 죄수들을 호주 대륙으로 이송했다. 조용하던 호주 땅에 평화가 깨진 것은 이때부터다. 호주 대륙에 침입한 백인들은 원주민들이 수만 년 동안 누리고 살아온 기름진 땅을 빼앗아 자기네 소유의 밀밭과 목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미국인들이 인디언들에게 한 짓이나 호주인들이 원주민들에게 한 짓은 다르지 않다. 사막으로 쫓겨  원주민들은 문명인들로부터 삶의 조건을 나날이 침식당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고생스런 사막생활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황무지의 오지로 갈 데까지 밀려갔다. 자연을 일탈한 대가로 온갖 고통에 시달리는 무탄트들의 변종증후군을 뻔히 알고 있는 원주민들이 문명세계로 진입하지 않으려 함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인간이 문명의 독을 먹고 무탄트가 된 지는 기껏 수백 년에 지나지 않지만, 원주민의 삶은 오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오만 년 전의 그 사막을 지금도 맨발로 걸어서 횡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시각각 조여오는 문명의 압박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지구상에서 스스로 소멸하기로 결심한 이들은 더 이상 결혼도 하지 않고 종족을 잇지 않기로 했다. 이 결단을 세상에 알리고 지금까지의 참삶을 역사에 기록하기 위하여, 증인이요 목격자로서 백인 여의사 모건을 이번 여행에 동참케 한 것이다.

사막의 지평선 위엔 모건과 60명 원주민의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뿐이었다. 침묵은 텔레파시의 절대 요건이다. 3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한 원주민 청년이 캥거루를 잡았는데, 메고 가기가 너무 무거우니 꼬리를 잘라도 되겠느냐고 족장에게 물어온다. 의사소통이 텔레파시로 이루어지는 것이 무탄트 모건에겐 몹시 신기했지만 그 '절대'의 침묵 순간에 감히 소리 내어 물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통역자가 모건에게 설명해 주었다. 원주민들의 마음 속엔 숨길 것도 거짓말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완전히 열려 있다고 했다. 마음이 완전히 열려 있을 때 텔레파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로 영(靈)의 세계를 설명하는 건 애당초 헛일이다. '거짓말을 모른다'는 말이 돌연변이들에겐 거짓말처럼 들리고, 마음이 '완전히 열려 있다'는 말도 '나'를 지키느라 마음의 문을 꼭꼭 잠가버린 문명인들은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백인들은 원주민을 '재커루'라고 부르며 캥거루에 가까운 야만 취급을 했다. 문명의 안락함에 젖어버린 무탄트는 재커루의 문명 거부를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원주민들의 초자연적인 힘에는 은근히 두려움 같은 것을 느꼈다. 백인들이 경영하는 목장에서 가끔 원주민이 양을 훔쳐가도 백인들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원주민들이 하는 일은 우주의 허락을 받은 행동일 것이라고 믿는 눈치다. 그러니까 백인들에게 원주민은 야만인인 동시에 미지의 세계와 접속되어 있는 영적 존재였다.

엘니뇨 현상으로 사막에도 비가 내려 꽃이 피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린다. 모래 속에 묻혀 있던 씨앗의 존재는 얼마나 위대한가. 백인 여의사 모건이 원주민들의 '자유로운' 영혼 앞에서 크게 깨어진 것도 그녀의 혈관 속에, 태어날 때 우주로부터 상속받은 '자연'이라는 씨앗이 그대로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깨어짐의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전이되었다면, 저자 모건은 그 어느 성직자보다 성공한 인간성 회복의 메신저가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원주민들의 종족 소멸의지를 바꾸기에는 너무나 관념적이고 창백한 깨어짐이요 성공이긴 하다.

문명 속에 살면서 자연을 얻지 못한 사람을 '저속한 교양인'이라고 부른 니체가 그리 독설가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호주 원주민이 지상에서 사라진 후에도, 돌연변이들은 문명이 속기(俗氣)를 덜어내기 위해서 원주민들의 야만성을 부적(符籍)처럼 심중에 지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