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자의 글쓰기

 

                                                                                      구자명

요즈음 아침형 인간이니 저녁형 인간이니 하는 말이 세간에 유행하고 있는 걸로 안다. 이는 사람의 생활체질을 분류함에 있어 다소 이분법적인 냄새를 풍기긴 하지만, 가치중립성에 있어서는 별 문제가 없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만일 누가 부지런한 인간형과 게으른 인간형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입장을 발표했다면 그것이 생활체질이나 삶의 방식을 논하기에 적절한 방법이 못됨을 독자나 청중의 반응을 통해서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너무 구태의연한 관점의 파악이라서 흥미롭지도 않을 뿐더러 부지런함이니 게으름이니 하는 것 자체가 자칫 윤리적 평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견 하나마나한 또는 별 영양가 없어 보이는 분류법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 관한 한 썩 걸맞은 파악법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이 '어떤' 부류에 대표적으로 속하는 사람들이 문학인이라고 한다면 나만의 엉뚱한 판단일까?

내 생각에 문학인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부지런한 문학인과 게으른 문학인이 그것이다. 전자는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작품을 생산해 내는 다작형 작가이고, 후자는 띄엄띄엄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작품을 내놓는 과작형 작가이다.

일반적으로 분류한다면 전자가 부지런한 작가로 인식되는 건 당연한 일일 테고 따라서 후자는 자동적으로 게으른 작가의 카테고리로 밀려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지런한 농부의 농사가 잘 되는 것처럼 부지런한 작가의 작품이 반드시 훌륭한가 하는 데 있다. 물론 많이 쓰다 보면 필력이 붙어 주제의 형상화나 예술적 성취를 일궈내는 솜씨에 내공이 쌓이기도 하겠지만, 시시한 것을 시시한 줄 모르고 끊임없이 써 대는 사례도 없지 않기에 의문을 갖는 것이다. 한편, 본의건 아니건 작업 스타일이 게으른 유형에 속하는 작가일지라도 어쩌다 써내는 그 작품들이 훌륭할 경우가 왕왕 있다.

다시 말해 창작의 세계에서는 누가 더 많이 일하느냐보다는 누가 더 진정으로 일하느냐가 가치 평가의 기준으로서 더 유효하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일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그것이 문학인의 경우에 있어서 작업에 임하는 정직한 자세와 치열성이라고 생각된다. 후자, 즉 과작형에 속하는 작가인 나는 최근 들어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던 과작 콤플렉스에서 좀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며칠 전에 나는 실로 오랜만에 작품을 하나 완성했다. 지난 일 년여 집안에 여러 가지 우환이 겹친 것을 핑계 삼아 그러잖아도 가뭄에 콩 나듯이 쓰고 살며 작가의 타이틀을 민망스러워하던 나는 그 기간 중 완전히 손을 놓고 지냈기에 작업에 착수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었다. 그래 봤자 100매 안짝의 단편이긴 하지만, 지난 수년 간 생각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틈틈이 공부해 왔던 제법 무게 있는 소재를 다룬 것이라 처음 구성 단계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생각날 때마다 메모해 놓은 몇 가지 구상에 따라 각기 다른 구성을 적용하여 작업을 서너 형태로 시도했으나 거의 도입부에서 그치고 더 이상 나가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개중 가장 완성의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걸로 어렵게나마 밀고 나가 한 70% 써낸 단계에서 그만, 수천 길 낭떠러지의 암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더 이상 디디고 올라갈 바윗돌도 나뭇가지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상황에 놓인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상태로 한동안 매달려 있노라니 기력은 점점 빠져나가 내가 애초에 붙잡고 올라오던 시원찮은 밧줄마저 곧 놓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 전에도 이따금 경험했지만 참 묘한 것은,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 이르면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돌연 절벽 위로 연결되는 안전하고 번듯한 계단 같은 것이 눈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함정이 거기에 있다. 힘겹게 붙잡고 있던 줄을 놓고 그 멋진 계단 위로 발을 올려놓는 순간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게 되는 것이다.

환幻의 계단! 이전에 몇 차례 쓰라린 경험이 있기에 나는 이제 그것을 어느 정도 식별할 줄 안다. 진짜는 그렇게 난데없는 기적처럼 나타나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 중요한 순간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지막 기력을 다 모아 으랏차, 암벽을 향해 돌진하게 되면 진짜 기적은 그때 일어난다. 전에 안 보이던 발 디딜 곳과 붙잡을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부터 정상을 향한 고투는 새로이 시작되며, 나머지 등반 중에도 그러한 결단의 순간은 한 차례 이상 또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 암벽 등반의 성패를 가른다는 얘긴데, 이때 '자기'란 것은 안이하게 얼버무리려는 마음,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내용 없음을 감추려는 마음 따위를 뜻한다. 곧, 정직과 치열에 반대되는 길이다. 정직하고 치열한 작가라면 평소에 게으르다가도 일단 작업에 임하면 자기 진정성을 투입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좋은 작품이라는 목표에 도달한다. 반면, 평소에 부지런하여 펜을 놓지 않고 사는 작가라도 앞서 말한 결단의 순간에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던 부정직하고 안이한 면목과 타협해 버리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져 생명 잃은 태작(馬犬作)을 낳고 마는 것이다.

한 작가가 부지런하면서도 자신에게 정직하고 치열성을 한시도 놓지 않는다면 그는 명실공히 대가(大家)의 경지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그다지 많이 생산하지 못하여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작업할 때만큼은 최대한 진정성으로 임한다면 과작의 좋은 작가는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물론 타고난 재주의 높낮음도 어느 정도로 작용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문학인으로서 좀더 세분화된 분류를 적용시켰을 때 나는 재주가 짧고 게으른 유형이라는 건 이미 자타에게 확인된 사실인데, 정직과 치열을 수반하는 작가정신의 진정성 측면에서는 앞으로 좀더 지켜볼 여지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누가 '너 그렇게 게을러서 어떻게 작가로서 경쟁력을 갖겠냐?' 하고 빈정댄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게으르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날아가다 보면 세상을 두루 살펴볼 여유도 있고, 속도 내는 자들이 공기 저항을 받기 때문에 잘 못하는 고공비행(高空飛行)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작가세계>에 단편 '뿔'로 등단(97년).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

소설집 『건달』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