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집

 

                                                                                        이정하

"아줌마, 우리 집에 제비가 집을 지어요."

유치원에 다니는 아래층 꼬마가 소리쳤다. 이층 베란다에 있던 나는 남편의 커다란 슬리퍼를 끌고 퉁퉁거리며 내려갔다. 꼬마네 집 현관문 벽 위에 조가비 같은 흙집이 반쯤 지어져 있었다. 꼬마가 떠드는 소리에 옆집 아이들까지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아이를 따라 나온 아낙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큰 도시의 빌딩 주변에도 새들이 서식한단다. 농촌이 농약에 오염되어서 새들이 도시로 피난살이를 나오는 모양이라며, 제비가 여기에 집을 짓게 된 이유도 아마 그럴 것이라 한다.

올 들어 아래층에는 시은이네에 둘째가 태어났고, 상민이네가 풍산 개 한 마리를 마당가에 매어 놓았다. 제비가 둥지를 튼 일도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있을 징조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어미가 올 때마다 제비집이 부산스럽다. 노란 부리 네댓 개가 입만 벌리고 송송거린다. 어미가 먹이를 넣어준다. 애잔하기도 하고 신비스럽다. 어미는 수시로 새끼의 오물을 물어낸다. 그러나 자고 나면 더 많은 제비 똥이 떨어져 있다. 마당을 씻는다. 말라붙은 이물질이 바닥에 허연 반점으로 남는다. 제비집 밑에 신문지를 펴고 가장자리를 돌멩이로 눌러둔다. 자주 물을 끼얹는 수고를 덜어보자는 심산이다. 하지만 허사였다. 아이들 서리에, 바람 서리에 신문지는 금세 도망가 버린다.

'널빤지를 하나 구해서 받쳐볼까? 근데 어떻게 달지?'

사다리는 어디서 구하며, 벽돌 벽에 못이 들어갈는지 난감했다.

어리던 날, 시골집에는 대청 문 위에 제비가 집을 짓곤 했다. 아버지께서는 반듯하게 깎은 나무판자를 제비집에 받쳐주었다. 마루에서 숙제를 하다 엎드린 채 잠이 들어도 걱정이 없었다. 눈을 뜨면, 먹이를 물어 나르던 어미가 널빤지에 앉아 날개를 쉬고 있는 게 보였다.

방학을 하자 객지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아이가 왔다. 우리 집에 제비가 새끼를 쳤다고, 아이를 보자마자 나는 그것부터 머리기사로 내놨다.

"정말요? 몇 마리나? 새끼를 봤어요?"

큰 눈을 반짝이며 한꺼번에 물어댔다. 자는 제비를 깨울 순 없으니까, 내일 아침에 가서 보자고 했다.

아침, 마당가 대추나무 옆에 서서 딸아이와 위를 올려다본다.

"엄마, 저기도 있네요!"

이층 안방 창문 위에 거의 다 지어진 제비집이 또 있었다. '남들은 새끼 친 지가 언젠데, 이제야 집을 짓다니?' 이런 민춤한 생각을 하다가 나는 눈이 절로 커졌다. 제비집에 방충망이 물렸다. 곧 한더위가 될 텐데, 창문을 못 열게 되었다. '어쩐다?' 헐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괜히 가슴이 콩콩거렸다. 다 짓기 전에 발견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헐어버리면 다른 데 가서 짓겠지, 마음을 다잡았다.

방충망을 떼고 쓸어버리면 될 것이다. 그러나 실행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창문을 밀고 가슴팍 높이의 창틀에 올라서려니 오금부터 저렸다. 딸아이를 불러 도와달라고 했다. 못하겠다며 나가버린다. 별 수 없이 퇴근해 오는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이 현관을 들어서기가 바쁘게 이런저런 설명부터 했다. 남편은 배가 고프다고만 한다. 수저를 놓기가 바쁘게 남편의 등을 떠밀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한참 제비집을 올려다보던 남편이 "올 여름은 그냥 나자. 창문을 안 열면 되지 뭐" 하지 않는가.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어떻게……."

방충망에 더덕더덕 달라붙을 오물을 상상하며, 남편의 턱밑으로 다가서다가 나는 영화의 정지된 화면처럼 박혀버렸다. 제비집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숙연한 달빛이 어려 있었다.

나는 제삼자인지도 모른다. 아내라 한들, 요즘 남편이 직장에서 겪는 고통과 갈등에 대하여 타인일밖에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건드렸다. 입때까지 붙박고 있던 직장은 남편에게는 집과 마찬가지였다. 그걸 잃는다는 것은 한사코 쌓아온 '나'를 순식간에 망실시키는 일이다. IMF의 위기를 벗어나면 한시름 놓으려니 했던 게 그보다 더 어려운 양상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고문당하지 않는 가장이 어디 있으랴? 남편의 어깨에 시지푸스의 어둠이 지워져 있음을, 그 내려질 줄 모르는 마음 짐의 무게를 헤아려 아내인 내가 덜어줄 수 있는 건 가볍기가 동전 한 닢에 불과할 것이다.

여름 장마를 걷어붙인 불볕이 며칠째 밤을 찐다. 몸도 복사열을 받은 모양이다. 창문을 열지 못하는 방의 밤 선풍기 바람은 더 후텁지근하다. 남편은 일찌감치 옥상으로 가고 없다. 내 집 옥상이긴 하지만 여염집 아낙이 한뎃잠을 잔다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아서 도로 잠을 기다린다. 부채질을 하며 창문을 바라본다. 방충망에 달라붙은 제비 똥이며 흙 지푸라기가 역삼각 꼴로 빗장처럼 꽂혀 있다.

창틀에 붙어 서서 제비집을 올려다보았다. 까만 꽁지 하나가 죽은 듯이 나와 있다. 새끼들을 안고 잠이 들었나 보다. 저 혼곤한 정적이야말로 황금과도 바꿀 수 없는 평화가 아니겠는가.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저 평화를 갈망하는 것 외에. 집을 허는 폭력이 언제 닥칠지 모르면서도, 비록 깎아지른 절벽에나마 발을 붙이고 살 수 있음에 우리는 다행해 한다.

옥상으로 올라갔다. 남편은 웅크리듯 모로 누웠다. 그의 등 뒤 돗자리 자락에 앉았다. 크고 작은 별들이 밤길을 가고 있다. 별을 보며 길을 헤아리던 순례자같이 우리도 그렇게 가고 있는가. 별 하나가 날아간다. 옛사람이 빛이 지기 전에 소원을 빌어야 한다고 했느니, 두 눈을 가리고 얼른 남편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개천문학 신인상 수상(2000년).

진주 문인협회 회원. 하누헤 회원. 진주 그림내 시 낭송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