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무

 

                                                                                       조만연

어머니의 부음을 들은 것은 세금 보고 철이 막바지에 이른 4월 초순이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겹친 업무로 심신이 거의 소진된 상태라 그 날도 점심 후 소파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는데 막내 누이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왔다. 평소 당뇨는 있었지만 식이요법과 약물 처방으로 건강이 좋은 편이셨고, 불과 며칠 전 가진 국제통화에서도 정기검진 차 입원하였으나 결과가 좋아 곧 퇴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미국으로 이주하기 두해 전에 막내 누이 가족과 함께 큰딸인 바로 밑 누이네가 살고 있는 세인트루이스에 와서 두 딸집을 왕래하며 살고 계셨다. 한국에 혼자 남게 된 형은 친척 중에서도 효자로 이름난 분인데, 장남이 어머니를 모셔야 된다는 지론을 피면서 자주 어머니의 귀국을 종용하였다. 마침내 어머니는 형의 재촉에 못 이겨 10개월 전 칠순 잔치를 계기로 영구 귀국하였다가 얼마 사시지도 못한 채 그렇게 돌아가시고 말았다.

 

미국 내 각지에 살고 있던 우리 3남매가 항공권 구입, 입국허가 등을 마치고 함께 모여 비행기에 탑승한 것은 소식을 들은 다음 날이었다. 김포공항에 내렸을 때는 붐비는 저녁시간이었는데 마중나온 분이 차를 대기시켜 놓은 덕에 곧바로 안치소가 마련된 병원으로 직행할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으나 졸지에 귀국하는 우리들을 보기 위해 많은 조문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동안 인사를 나누느라 다소 소란스러웠으나 이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아간 후 가족들만 남게 되자 마침내 염하는 시간이 되었다. 다행스럽게 어머니는 생존 때처럼 온화한 모습이어서 그나마 큰 위안이 되었다. 사실 오면서 시신을 안치소에 며칠 보관하는 동안 괜찮을까, 혹시 돌아가실 때의 충격으로 보기 흉해지지나 않았을까 줄곧 염려하였던 것이다.

 

염을 시작하려 하자 나는 이를 제지하고 두 누이에게 어머니의 얼굴을 화장해 드리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곱게 만들어드리고 싶었고, 조금이나마 시간을 끌어 어머니를 더 보려는 심산 때문이었다. 형을 위시해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나의 제안에 어리둥절했으나 미국의 장례의식을 보아온 두 누이는 나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순순히 알코올로 얼굴과 손을 닦아낸 후 핸드백에서 립스틱과 눈썹 그리개를 꺼내 어머니를 화장시켜 드렸다. 그러는 동안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차디 찬 감촉이었으나 생각보다는 경직되어 있지 않았다. 문득 어머니의 손가락을 살펴보았다. 오른손의 가운데 손가락, 평생 어머니가 누구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시던 끝마디가 없는 그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집은 사랑채 앞마당이 동네 아이들의 운동장으로 사용될 만큼 컸었다. 어느 날인가 손님을 배웅하고 안채로 들어가던 어머니가 중문으로 통하는 계단의 돌이 흔들거리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위험하다"며 손수 고정시키려는 순간, 떠받치고 있던 돌들이 무너지면서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의 마지막 마디를 짓이기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로서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도립병원에 달려갔으나 상처가 너무 심해 결국 그 손가락 마디를 잘라내고 말았다.

그때 20대이셨던 어머니, 더구나 여자로서 주로 쓰는 오른손이 그랬으니 얼마나 남모르게 가슴 아프셨을까? 어머니가 늘 그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계셨던 사실만 보더라도 짐작되는 일이다. 그 골무는 나의 뇌리 속에 어머니의 상징으로 깊이 낙인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가끔 그 골무를 빼놓은 것은 오랜 기간의 교직생활에서 물러나신 다음부터였다.

장례식을 마치고 제일 먼저 어머니 방으로 가서 유품들을 살펴보았다. 그동안 가까이 놓고 쓰시던 물건들과 지난 달 누이들이 용돈으로 보내드린 미화, 그리고 몇 가지 장신구들 속에서 골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머니의 손이라도 잡듯이 얼른 집어들었다.

평소 깔끔치 못한 성품 때문인지 모양이 꾀죄죄했으나 그런 소탈한 어머니에게 익숙한 나에게는 오히려 더 반갑게 느껴졌다. 나는 골무를 가방 안에 챙겼으나 기념될 만한 다른 유품 몇 가지를 더 가져갈 요량으로 다시 꺼내놓았다. 그리고 미국으로 오기 하루 전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골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형수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여기 있던 골무 못 보셨어요?"

형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 그것? 이제 쓸 데도 없고 지저분해서 제가 버렸어요."

나는 너무 화가 나서 한바탕 퍼부어주려고 벌떡 일어났다가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 형수가 어찌 나의 마음과 같을 수 있겠는가. 이미 엎지른 물이니 좋은 얼굴로 돌아가는 것이 어머니도 바라시는 일이겠지……."

그 날 밤 나는 주인이 없는 방에서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느라 꼬박 잠을 이루지 못했다.

 

 

<월간 순수문학> 신인상 수상. 제11회 순수문학 수필본상 수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부회장. 미주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에세이집 『새똥』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