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

 

                                                                                         김광

열두 시가 되자마자 구내식당으로 달려가 점심식사를 끝내고 미술관 앞을 지나 근처의 공원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통통 소리를 내고 있었다.

간간이 새의 하얀 깃털이 묻어 있는 하늘은 그야말로 파란 물이 뚝뚝 흐를 것 같은 풍선처럼 바다를 닮아 멀리 달아나고 있는데다 살랑거리는 바람마저 얼굴을 비벼대니 어찌 걸음이 가볍지 않겠는가?

점심식사가 끝나면 으레 찾아가는 곳, 사무실 부근에는 작은 공원이 많아 찾아가곤 하는데 그 날도 습관적으로 배재공원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키 작은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고 주로 맥문동이 검푸른 이파릴 흔드는 곳인데, 경치는 별 것 없어도 도심에서는 이만한 녹지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아 주변의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곳인데다 나무 벤치 바로 옆에 큰 재떨이가 놓여 있어 내가 특히 즐겨 찾는 곳이었다.

아무리 미간을 모으고 담배를 물어대도 글줄 하나 떠오를 리 없건만 그렇다고 남들과 재잘거리는 재주도 없는 나로선 말매미 요란하게 짖어대던 여름에도 지극 정성(?)으로 이곳을 찾았었다.

내 지정석에 앉아 막 담배 하날 꺼내 무는데 이게 웬일인가? 노란색 일색의 아이들이 우르르 공원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와글와글 뽀글뽀글 짹짹."

꼭 무슨 여름날 개구리 울음소리도 같고, 비온 뒤 전깃줄에 모여 떠들어 대는 제비 새끼들과도 같았다.

아마 가까운 유치원에서 소풍을 온 것이리라. 거기까진 그래도 좋았는데 인솔교사인지, 학부형인지 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숫제 내가 앉아 있는 벤치를 가리키면서 "얘들아 저기에 짐 풀어놓고 그 앞에다 돗자리 펴라" 하는 게 아닌가.

아이들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 옆에 가방을 던져놓고 앞에다 자리를 폈다.

사무실의 건조한 일상을 피해 겨우 찾은 나만의 공간이 뜻하지 않은 침입자들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조금은 뻔뻔한 아주머니도 미웠고, 마냥 떠들어대는 아이들도 곱게 봐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한쪽은 대한민국의 아줌마고, 한쪽은 철없는 아이들이니 내가 일어나는 수밖에.

편치 않은 얼굴을 하고 일어서는데 아줌마 왈,

"아저씨 미안해요."

말은 그렇게 해도 '그러게 진즉 일어나지' 하고 그녀의 눈은 번득이고 있었다.

떠밀리듯 그곳을 나온 뒤 정동공원으로 가 보았으나 그곳도 연출자만 중학생으로 바뀌었을 뿐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갈 곳이 없군, 하는 수 없지 오늘은 정동길이나 걷다가 들어가야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덕수궁 돌담을 따라 걷는데 고맙게도 바람 한 줄기 뒤따라와 뭐라 말을 건넸다.

'하긴 침입자들은 그들이 아니지. 소풍이래야 딱히 갈 곳이 없어 그곳도 놀이터라고 찾아든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나?' 싶었다.

빌딩으로 목이 졸린 시가지에 그들이 갈 곳이 그런 곳밖에는 없었으리라. 오히려 왁자한 소리로 숨 막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한 게 그들이 아닌가?

우리가 향유하던 유년의 시대, 즉 두꺼운 철사를 둥글게 구부려 장대에 매달고 처마 밑 거미줄을 묻혀 들판의 물잠자리 한 마릴 잡아서 그 배에 호박꽃술을 문질러 암컷처럼 보이게 한 뒤 막대기 끝에 실을 묶어 위장시킨 잠자리를 매달고 다른 잠자리를 유인하느라 논둑에서 흔들어대던 그 정서를 모르는 요즘 아이들, 개미를 잡아 흙을 담은 원기소 병에 넣고 개미들이 집 짓는 걸 투명한 병 밖에서 신기하게 바라보던 일이며, 도랑을 막아 고무신으로 물을 퍼 미꾸라지 잡아서 개선장군처럼 돌아오던 흥분을 느낄 수 없는 현대의 아이들에겐 좁은 공원도 훌륭한 놀이터였으리라.

거리에 나서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빌딩 사이에 갇힌 도시, 그 도시의 질병에 전염되고 마취되어버린 이 시대의 아이들은 그저 피해자에 불과하고 이 척박한 도시를 만든 어른들, 아이들에게서 뛰어 놀 공간과 꿈을 빼앗아버린 우리 어른들이야말로 진정한 침입자인 것이다.

그제야 그 아이들의 슬픈 고백이 장승처럼 다가와 가슴에 빛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저씨 죄송해요. 아저씨의 사색을 방해해서. 하지만 거기 아니면 갈 곳이 없어서 저희도 어쩔 수가 없었답니다.'

'아냐, 진즉 일어서지 않은 내가 잘못이지.'

걷다 보니 정동길의 풍경이 유난히 다정스레 보였다. 덕수궁의 돌담도 그렇지만 분수대 건너편 도로에 심어놓은 작은 꽃들도 노랗게 웃음을 터뜨리는 게 '그래 이제는 당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알겠지요?' 하는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사무실로 향하는데 길가 벤치에 또 다른 여유가 뒹구는 햇살과 함께 곱게 놓여 있었다.

 

 

<문학세계>로 시 등단. <계간 수필>로 수필 등단(2004년). 계수회 동인.

시집 『바람이 사는 나라』, 『구름 몇 장 내게 주더니』, 공저 『시인의 바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