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천료>

 

길베

 

                                                                                           이윤임

여인이 붓을 풀고 있다. 오늘 하루도 세상을 다 그렸나 보다. 열두 폭 옥색 치맛자락에 복사물이 번진다. 누굴 만나러 여인은 저리도 사뿐히 가는가. 잔허리 선을 따라 술 익는 마을로 세월이 넘어가고 있다. 자욱한 연홍사(軟紅絲) 아래로 저녁 산이 묵향으로 내려앉는다.

오늘이 외할머니의 삼우제인데도 어머니는 병실에 누워 있다. 가슴이 답답다 하여 침대를 반쯤 일으켜드렸다. 심한 충격과 스트레스로 급성 췌장염이 생긴데다 평소에 아프던 곳들이 재발했으니 절대안정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생각나서 눕혀드리려니까 어머니가 힘없는 손을 저었다. 눈이 노을 진 창에 젖어 있다.

아흔을 넘기신 외할머니는 노환으로 오래 누워 계셨다. 그렇게 맑고 고우시더니 이승의 끈을 놓을 무렵에는 고원의 고사목 같았다. 저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의 딸'이고 싶다는 어머니는 당신의 건강 악화로 친정어머니를 잘 돌보지 못한데다 임종마저 못 지켜, 그 회한을 뼈가 녹듯이 우셨다.

한참 만에 곡을 그친 어머니가 수의를 가져오라 했다. 외숙모가 외할머니 옷장에서 수의를 내어왔다. 오동나무 상자 안에서 삼십 년이 넘도록 할머니를 기다려준 수의는 바늘 갓 뺀 새 옷처럼 고왔다. 가을볕에 거풍을 한 듯 뒷산 어디쯤에서 구했을 궁궁이풀이 옷 사이에서 나왔다. 그 향기가 내 어릴 적 엄마 냄새 같았다.

외할머니는 회갑 해에 마침 윤색이 들었다면서 딸을 데리고 손수 수의를 지으셨다. 마루에 재봉틀을 내놓고 만추의 양광에 볼을 발그레히 달구면서 처음이 될 이승의 마지막 조각들을 맞추고 기웠다고 했다. 되도록 조각 수와 모를 죽이고 시접도 넉넉히 넣어서.

치마는 비취색, 저고리는 도화(桃花)색 명주옷이었다. 빨간 귀주머니가 나왔다. 어머니가 지폐 몇 장을 주머니에 넣는다. 바지허리 양쪽에는 큰치마 끈보다 더 긴 붉은 띠가 달려 있었다. 나는 불현듯 가슴이 콩콩거리면서 내 어릴 적 머리꽁지를 묶었던 댕기가 떠올랐다.

수의에 붉은 끈이라니? 상주들이 어머니를 뜨악히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광폭(廣幅)을 그냥 쓴 그 띠를 몇 번이고 만지작거렸다.

"저승길이 밝아야 한다시며 굳이 이 띠를 다셨다."

흰 사발 물로 목욕시키고 미미한 온기를 찾으며 어머니가 손수 옷을 입혀드렸다. 떨리는 손으로 붉은 띠를 매어드리고는 새색시 예뻐하듯 쓰다듬으며 쉼없이 울었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허리를 쥐며 칼로 도려낸 듯이 주저앉았다.

외할머니는 반상의 구별이 뚜렷하던 시절에 가난한 선비 집 층층시하의 살림을 꾸렸다. 어느 날 원인 모를 화재를 만나 하루아침에 집을 잃었다. 가난해진 외할머니는 동네에서 한참 떨어진 섯터골에 있는 종중의 재실에서 살았다. 그 즈음 일제의 처녀 공출을 피해 나이도 덜 찬 외동딸을 쫓아내듯 홀시아버지를 모실 집으로 시집을 보내야 했다. 울며 보내고, 울며 간 모녀,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가슴앓이는 목숨과 함께 영영 지워지지 않았다. 바깥사돈끼리는 유(遊)가 좋았지만, 외할머니는 딸네 집에 좀처럼 오시지 않았다.

댓 살 때부터 어머니는 나를 자주 외가로 보냈다. 초등학생 때는 방학 내내 외가에 가 있기도 했다. 빨래터에도 밭에도 외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마을에라도 갔다 오는 날은 길섶에 핀 꽃이 나비처럼 날아와 내 머리에 향그러운 화관이 되었다. 나도 칡꽃을 따서 할머니의 머리에 꽂아드리곤 새끼 사슴처럼 총깡거렸다. 그러는 나를 치마폭에 폭 안으셨다.

'꼭 제 에미를 닮아설랑…….'

오래 된 성채처럼 반쯤 어그러진 담을 넘어 마당까지 기어온 질긴 칡넝쿨을 할머니는 '이제 그만 좀 성가시거라' 하며 걷어올리곤 했다. 높은 대청마루에 서면 동네가 내려다보였다. 동구 밖 저쪽에 선 노송들이 어뜩 삐딱 장승처럼 보였다. 그 너머로 멀리 뜨는 노을이 참 아름다웠다. 붉은 댕기로 내 머리꽁지를 묶어주시는 할머니의 옆얼굴에 연지 물이 들었다. 말끄러미 쳐다보는 내 볼을 톡 두들기며 할머니는 웃으셨다.

'임이 볼에 놀이 묻었네.'

산 넘고 물 건너 훠이훠이, 노잣돈과 버선 열두 켤레가 모자라지는 않을까. 저승길 고개마다 구비마다 이슬 발라 머리 빗고, 고운 영혼만 모여 사는 마을에 닿았을까. 가슴에 박힌 티눈 같은 얼음을 안고 사셨던 초라한 마디들을 풀어 보이고 계실까. 붉은 띠 두른 화사한 새 같은, 신神은 할머니의 작은 등을 쓸어줄 것이다. 선하게 사느라 애썼노라고.

가면 오는 것. 저 영원의 세계에서는 잠시 잠깐 말미를 얻어 영혼이 육신을 점지 받는다고 한다. 언젠가 저 산허리 돌아 마침내 여릿여릿 동터오는 새벽 놀을 타고 할머니는 다시 오시리라. 섯터골의 구비 진 오솔길 내려와 작은 옹달샘에 목 축이고, 비탈 밭에 줄지어 선 강냉이 밭고랑 지나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같은 끈을 잡고.

영혼에 색깔이 있다면 저 고운 노을 색이 아닐까. 내가 창에 어려 있다. 붉은 길베 한 자락 펼쳐놓고 묵향 푸는 여인이여! 아리아리.

 

 

<개천문학> 신인상 수필 당선(2002년).

진주 문인협회 , 진주 수필문학회 회원.

 

<천료 소감>

 

길을 터주신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가슴그물이 촘촘하신 선생님, 같이 공부하며 힘이 되어준 '진주수필' 글벗들, 격려하고 살펴주신 가족들과 이 기쁨을 나누렵니다.

지난날 한때, 제게는 신문, 잡지에 게재되는 '당선 소감'들을 스크랩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괜히 내가 당선이나 된 것처럼 들떠서 온종일 꿈속을 헤맸습니다. 나는 언제 이런 글을 써 볼 수 있을까 하면서.

오늘 소식을 받고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꿈을 꾸는 것만 같았는데, 천료 소감을 적으려니까 불쑥 정인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천료 소감문은 고생문을 여는 열쇠다. 당선이나 천료가 가져다주는 이름표는 죽비로 여겨야 한다."

열심히 고민하며 애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