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초회>

 

그곳에 가면 길이 보일까

 

                                                                                        정윤규

겨울비가 흩뿌리던 12월의 어느 날 제부도를 찾았다.

하루에 두 번 물길이 열려 섬이 되기도 하고 뭍이 되기도 한다는 섬, 제부도. 사강이라는 마을을 지나고 낮은 구릉과 철 지난 억새들이 흔들리는 촌락 길을 한참 달려서야 제부도는 모습을 나타냈다.

바다는 이미 드러나 있었다. 조금 전까지 이곳이 바다였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을 만큼 드넓은 갯바닥만이 펼쳐져 있다. 물이 빠져나간 바다는 희미한 파도 소리만 들려준다.

섬과 이어진 2킬로미터 남짓한 바닷길은 4년 전 초행 때와는 많이 변해 있었다. 그때 저 길은 바닷물에 패여 곳곳에 돌이 떨어져나가고, 미처 씻겨가지 못한 자갈과 조개껍데기의 잔해로 풍상에 시달린 듯 신산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새롭게 단장되어 산뜻하고 편리해졌지만 나는 변해 버린 옛 친구의 모습을 보는 듯 낯설고 서운했다.

제부도를 처음 알게 된 건 서하진의 소설 『제부도』에서였다. 낯선 미지의 섬에 그토록 강렬하게 이끌린 것도 저 바닷길 풍경에 대한 묘사가 아니었던가.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포말과 낡은 배의 바닥을 쓸어내는 늙은 어부의 비질 소리, 부서진 조개껍질의 하얀 잔해의 영상 …… 섬은 바다 위에 떠 있었지만 구불구불한 길이 드러나는 동안은 섬이 아니었다.'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게 한다는 바닷길을 찾아 처음 제부도에 왔던 날이 기억난다. 차가워서 더욱 투명하던 하늘과 날 선 바람과 마주하고 바닷길을 건넜다. 갯바위에 걸터앉아 얼마 전까지 바닷물로 출렁거렸을 그 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소설 『제부도』를 읽던 시절, 나는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원주에서 살았다. 유독 섬의 묘사에 관심이 갔던 것도 그 무렵 내 심정과 무관하지 않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고장에서의 생활은 적막했다. 돌배기와 세 살짜리 남매를 키우며 몸도 고단했지만, 마음을 열어 얘기할 상대가 없던 나는 많이 외로웠다. 석양이 지는 창가에 서서 나는 자주 제부도를 떠올렸다. 섬은 때때로 나 자신이기도 했다.

섬은 바다 가운데 고립되어 있는 철저하게 고독한 땅덩이다. 섬사람들은 바다 건너편에 있는 육지의 삶을 그리워하고 동경한다. 섬이란 한정된 공간에서의 삶과는 달리 육지에서는 넓은 세상과 조우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 즈음 하루에 두 번씩 물길이 열리고, 섬으로 이어진 바닷길로 육지와 섬이 소통할 수 있다는 제부도 이야기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나의 바람과 많이 닮아 있었다. 제부도의 빈 바닷가에서 나는 주문처럼 떠오르는 질문과 마주 했다.

'나는 왜 늘 더 나아가지 못하고 맴돌고만 있는가.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꿈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아닐까.'

푸른 파도가 아우성치며 밀려 들어와 멀리 한 점 섬으로 떠 있는 제부도를 뒤로 하고 돌아온 후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지만 늘 아득하게 느껴졌다.

마음 언저리에 맺혀 있던 가냘픈 꿈은, 섬을 에워싸고 밀려들던 시퍼런 물줄기처럼 내게도 강렬한 울림으로 남았다.

밤새 파지만 만들다 맞이하던 새벽의 푸른 여명, 깊은 밤 흰 여백 앞에서 문득 고요해지던 마음,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감동. 삶의 열정을 간직한 글 친구들과의 만남… 그런 것에서 나는 사는 재미를 느낀다.

'수필'은 어느 새 제부도의 바닷길처럼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는 길이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이 어려워만 질 때, 인생에 대한 사색이나 깊이도 없이 무엇을 그렇게 쓰고 싶었던 것일까, 잦은 의문에 시달릴 때 나는 자주 제부도를 떠올린다.

그곳에 가면 왠지 길이 보일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