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없는 무덤

 

                                                                                           윤수영

 

찬바람이 뼛속을 타고들 듯 날카로웠다. 그 속에서 백제문화 유적을 돌아보는 일정이 끝나자, 사람들은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는 안도감에 젖어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안내자가 의자왕의 무덤 하나를 더 보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대로 눌러앉은 채 아무도 움직이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의자왕의 무덤이라는 말은 나를 사로잡았다. 언제인가 신문에서 보았던 ‘1,300년만의 한恨 많은 귀국’이라는 기사의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백제가 멸망한 뒤 중국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숨을 거둔 의자왕과 왕자 부여융, 그 비운의 넋을 기리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라는 내용이었다. 중국 허난성(河南) 뤄양(洛陽) 시 북망산에 있는 부여융의 묘 주변에서 가져온 흙 40kg을 바탕삼아 충청남도 부여군 능산리 고분군에 가묘(假墓)와 제단(祭壇)을 설치한다고 했는데 이제야 그 작업이 완성되었나 보다.

안내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늑한 숲길을 향하여 잽싸게 발걸음을 옮겼다. 숨차게 뒤쫓아가다가 멈추고 보니 소박하게 다듬어진 봉분 두 개가 눈앞에 나타났다. 무덤은 방금 손질을 마친 듯한 잔디로 덮여 있을 뿐, 주변에는 흔해빠진 묘비도 하나 없어 세월의 무게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숨을 돌리자, 안내자는 설명을 시작했다.

“31대 의자왕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처럼 방탕한 임금이 아니었습니다. 무왕의 아들로,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애가 깊어 일찍이 ‘해동증자’라는 칭호를 받았던 분이며, 신라의 대야성을 비롯하여 40여 개의 성을 빼앗은 용감한 분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멍해졌다. 백제가 망한 원인은 의자왕이 향락에 빠져서 국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었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다시 안내자 쪽을 향하니, “의자왕은 아들과 신하와 함께 당나라에 끌려가 온갖 모욕을 당하다가 화병으로 4개월 만에 숨을 거두었다”는 말이 들렸다. 적국의 땅에서 죽어 시신을 찾을 수 없었던 왕, 나라를 잃었기에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던 왕이었는데 이제야 그의 무덤이 만들어졌구나. 아들의 묘 주변에서 거두어진 흙 40kg으로 시신을 대신한 무덤이라서 국왕의 유택치고는 너무나 초라할 뿐이다.

평화로운 시절에 운명한 국왕의 무덤이었다면 그 모습이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 당시 죽음은 죽음 자체로 끝나지 않았던 시대였다. 죽은 자가 산 사람의 길흉화복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묘지 조성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조금 전에 돌아본 백제 제25대 무녕왕릉이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연꽃 모양을 새겨 구운 벽돌로 쌓은 묘실 안에는 극락세계와 같은 불교적 내세관을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속세에서 향유했던 유물도 108종 2,096점이 매지권(賣地卷)과 함께 묻혀 있었다고 한다. 무녕왕은 그야말로 살아서도 권력을 누렸고, 죽어서도 영화를 누린 왕이다.

의자왕을 굴복시킨 신라의 무렬왕릉도 세월과 함께 보낸 솔숲에 둘러싸여 있다. 오른쪽 어귀에 있는 돌 거북이 발걸음을 잡는다. 힘차게 구부린 네 발가락과 정면으로 향한 머리가 무렬왕을 지키는 듯 생동적이고, 그 위에 세워진 비석에는 ‘太宗武烈王之碑’라는 글자가 뚜렷하다. 이처럼 이긴 자는 죽어도 당당한 모습으로 천 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오지 않았던가.

동작동 국군묘지에는 6·25 전쟁에 희생된 유해 없는 무덤이 많다. 그러나 그곳의 모든 무덤에는 명예로운 이름이 붙어 있다. 이들에 비하여 당나라에서 죽은 의자왕은 그를 지켜주거나 변호해 줄 신하도 왕자도 모두 함께 죽는 바람에 세상의 억측과 누명을 뒤집어쓴 채 지금까지 방치된 임금이었다.

그런 왕이 이제 유해 없는 무덤으로 우리 앞에 다시 돌아왔다. 무녕왕 무덤 속에 묻혔던 찬란한 유물이 죽은 후까지 연장된 생전의 영화를 나타낸다면, 의자왕의 빈 무덤은 1,300년 동안 잊혀져 있던 원혼의 회한을 상기시켜 주는 동시에 잘못된 나의 역사 지식을 바로잡아 주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나마 고마운 일이다.

다시 한 번 돌아보니 의자왕의 빈 무덤 주변에는 파헤쳐진 흙덩이가 여기저기 불거져 있다. 저녁노을을 담뿍 받고 있는 봉분은 무거운 침묵을 지킬 뿐이다. 인도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건, 그 사람의 시신이 화장되어 바라나시 성지의 갠지스 강에 도달해야 현세의 삶이 끝난다고 믿는다는데, 의자왕은 빈 무덤으로 자신의 삶이 끝났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묘비라도 하나 세워준다면 좋으련만……. 돌아서는 내 발걸음이 어쩐지 무겁기만 했다.

 

<문학시대>로 등단(2001년).

수필집 『잔잔한 은혜』, 공저 『더러 잊고 사는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