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과 얼레

 

                                                                                        윤삼만

 

바람살이 제법 세어 연날리기에 좋았다. 가을에 시작하여 겨울에 절정을 이룬다. 하늘 높이 훨훨 나는 연을 보노라면 내 마음까지 두둥실 떠올라 하늘에서 상큼한 기분을 만끽하게 되는 것 같다.

연날리기 대회를 앞두고 서장대 밑 남강 고수부지에서 어른들과 어린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 연날리기를 좋아하는 운봉 선생과 나는 독수리, 솔개연을 들고 고수부지에 갔다. 옛날 솜씨를 한껏 뽐내보려 했으나 전과 같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처럼 연을 머리 위에 올려 바람을 안고 뛰어갈 수도 없고, 좀 떨어진 곳에서 연을 날려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고 해서 한 손으로 줄을 휘어잡아 튕기며 연을 날렸다. 처음엔 두리번거리며 주저앉았으나 몇 번을 시도한 끝에 연은 바람을 탔다. 연줄을 감고 풀고 하는 사이에 연은 하늘 높이 솟았다. 하늘에는 여러 개의 연이 떠 있었는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힘차게 다가서는 연, 머리를 거꾸로 내려 치닫는 연, 서서히 물러서는 연도 있었다.

독수리가 솔개에 싸움을 걸어왔다. 연줄 끊기는 각도와 속도의 전쟁이다. 나는 유리한 각도를 잡기 위해 솔개를 위아래, 오른쪽, 왼쪽으로 곡예비행을 하게 했다. 연줄을 세게 감아올려 솔개가 하늘 높이 솟았는데 튕김을 주었다. 머리를 거꾸로 해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얼레 손잡이를 옆구리에 탁 치고 방향을 바꿨을 때 연줄을 날쌔게 감아올려 독수리를 낚아챘다. 구경하던 사람이 ‘감아치기’했다고 소리쳤다. 운봉이 내 기술을 알아차렸으면 후퇴했다가 다시 공격할 수 있었는데 그 전술을 모르는 모양이다. 운봉이 살 세게 풀었다 감았다 연줄을 조정했으나 독수리는 얼굴을 찡그렸고 솔개는 기세당당했다.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줄이 끊어진 독수리는 힘없이 날아갔다. 솔개가 “야! 이겼다” 환호성을 터트리는 것 같았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나도 “야!” 소리치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보는 사람들의 박수가 터졌고, 운봉도 연싸움에 아쉬움이 남아 있는지 겸연쩍게 미소를 지었다.

잠시 쉬면서 어린아이들이 연 날리는 걸 구경했다. 어린이가 좋아하는 가오리연은 마름모꼴로 꼬리를 길게 붙여서 바람이 꼬리를 타고 흘러 쉽게 떴다. 대부분이 가오리연이고 방패연, 꼬리연도 있었다. 머릿살을 땅에 처박고 끌려가는 연, 고개를 흔들며 날지 못하고 주저앉는 연, 센바람에 매달려 얼굴을 찡그리는 방패연, 바람방석에 앉아 웃으며 어깨춤을 추는 가오리연도 있었다.

연 날리는 모습에서 나는 어릴 적 생각을 했다. 설이 다가오면 연날리기 준비를 했다. 어머니를 졸라서 연은 대밭 가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에게서 샀고, 친구들과 사금파리를 갈아 연줄에 이가 시퍼렇도록 개미를 먹였다. 설날부터 보름까지 친구들과 연줄 끊어먹는 연싸움을 많이 했고, 보름날엔 달집에 연을 걸어 태웠던 일이 생생히 떠올랐다.

연은 머릿살, 허릿살, 중살, 장살 등 대나무 살이 버텨 있고, 가운데 방구멍이 뚫려 있으며 한지로 발라놓은 것이다. 연의 균형이 맞고 목줄 중심이 잡혀야 잘 뜨고 하늘을 주름잡는다. 바람이 세면 연줄을 가만히 잡고 있어도 연은 눈을 부릅뜨고 이리저리 굴리며 설쳐댄다.

얼레질에 따라 나는 하늘 높이 솟아도 보았고 좌우로 세상 끝까지도 가보았다. 얼레의 손잡이를 탁 쳐서 거꾸로 섰을 때 튕김으로 곤두박질도 쳐봤고, 또 손잡이를 탁 쳐서 방향을 바꾸어 날기도 했으며 하늘을 마음껏 누벼도 봤다. 내가 오늘까지 즐겁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아내의 얼레질 덕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 사랑하며 가정을 꾸러나가듯 하늘 높이 곡예비행 하는 연과 연줄로 이어진 얼레가 서로 주고받는 정으로 민첩하게 움직인다. 가정의 행복은 언제나 슬기로운 얼레질에 달렸다.

 

전 사천초등학교 교장. 경남서예대전 초대작가.

〈계간 수필〉로 등단(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