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저씨

 

                                                                                             김정선

 

요즈음은 주위에 기쁨을 주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비록 그 사람이 잠깐 동안 스치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한 충만한 기쁨과 감사한 마음을 나도 더불어 느끼고 싶기에……. 내 이웃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 주위가 덩달아 밝아지곤 한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뒷길을 이용해 백화점 셔틀버스가 다닌다. 쇼핑할 일이 있을 때 꽃밭 주위를 둘러선 키 큰 은행나무 아래 서 있다가 버스가 오는 것이 보이면 무심결에 내 눈은 운전석을 흘깃 쳐다보게 된다. 순간 스포츠형의 머리에 모자를 쓰고 약간 마른 듯한 체형의 40대 중반의 기사가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핸들을 돌리며 차창 밖의 풍경을 조용히 감성적으로 읊어주는 기사 차를 타게 되어서이다.

“벚꽃이 화사한 오늘, 고객님들 안녕하세요?”

“지는 해 뒤로 하고 고객님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저는 고객님들의 리모컨입니다. 불편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고객 여러분, 가을이 점점 깊어가는군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오늘, 아름다운 가을날의 추억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기타 등등.

그가 하는 말은 오전과 오후 또는 그 날의 날씨 변화, 그리고 계절에 따라 그때 그때 바뀌면서 마치 시 한 구절을 읊듯 하기에 처음 들을 때는 참 쑥스럽고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차가 밀려도 기껏해야 20분 정도면 백화점에 도착하는 거리인데도 은연중에 그 버스를 탔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가 차창 밖의 풍경을 시구처럼 읊어줄 때면 너도나도 정신없이 바쁜 세상 속에서 한 걸음 먼저 나와 손을 내밀고 이웃을 배려하면서 순간순간 최대치로 살아가는 것 같아 보기에 참 좋아서이다. 또한 우리네 아줌마들이 무덤덤하게 앉아갈 수도 있는 버스 안에 기쁨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우리 아줌마들의 친근한 이웃이 되었고 벗이 되었다. 아마도 다른 기사들은 얼굴은 익숙하지만 서로서로가 타인처럼 사무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단순히 얼굴을 익힌다고 해서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의 만남은 형식적이고 사무적인 관계에서 시작되지만, 속마음과 감정을 표현하면서 조금의 여유와 남에 대한 배려가 금방 친숙한 이웃을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의 버스를 타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런 감정은 나만이 느끼는 건 아니다. 다른 버스에서는 무덤덤하게 앉아 있는 아줌마들이 그에게는 말도 건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걸 보면.

나라가 온통 월드컵 경기로 뜨거울 때 셔틀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내 옆에 앉은 아줌마가 웃으면서 “시인 아저씨!” 하고 기사를 별명으로 불렀다. 그러더니 “어제는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었는데 참! 좋았죠?” 하니, 그는 “밤새 마음이 설레어서 잠을 못 잤어요. 고객님들께서도 밤잠을 설쳤으리라 생각합니다. 박 선수가 히딩크 감독을 향해 달려갈 때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뒷모습만 보는데도 싱글벙글하는 얼굴이 보이는 듯하여 내 얼굴에까지 덩달아 미소 번지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가끔 자신의 가족사도 내비친다.

작년 3월이었다. 백화점에 들렀다가 셔틀버스에 올랐는데 마침 시인 기사가 올랐다. 그는 운전석에 앉기 전에 “내일은 제가 고객님들을 모시지 못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딸이 E여대 피아노학과에 붙어서 입학식을 하는데, 따라가고 싶어서 하루 쉬기로 했습니다. 모두 고객님들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더니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운전석에 앉았다.

순간 우리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이 힘차게 박수를 쳤다. 마치 나의 일처럼 마음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나 역시 언제나 한결같이 이웃에게 웃음을 선사해 주는 그에게 하늘이 축복을 내려준 것이라 여기며 힘찬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시인 기사의 버스에서는 어색한 침묵이나 정적 대신에 언제나 웃음이 번지고 마음이 흐뭇해진다.

지난 겨울에도 “고객님들, 춥구나, 추워, 몇 번만 하고 나면 별로 춥지 않았던 이 겨울도 물러가겠군요” 하며 시작되는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겨울만이 가지고 있는 추운 계절의 묘미는 잊어버리고 외출을 줄이며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책만 뒤적이던 내가 어리석어 보였다.

이제 계절은 어느덧 벚꽃이 화사하게 피는 봄이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그 아름다움을 이야기해 주고, 그때 그때 자신의 경험이나 감동적인 일들을 이야기해 주며 버스 안에서 우리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던 시인 기사님.

그는 오늘도 바깥 풍경을 시구처럼 읊는다.

“벚꽃이 화사한 오늘, 고객님들을 다시 모시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벚꽃은 언제 보아도 우리들을 왠지 모를 설렘에 젖게 하는군요.”

순간 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결코 크고 거창한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수필문학>으로 등단(89년).

수필집 『파도 위의 하얀 길』, 『작은 창 너머 보이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