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는 걷히고

 

                                                                                           박현정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냉혹한 인물로 평가하는 역사가들이 있다. 힘겨운 옥타비아누스의 시기를 거쳐 아우구스투스로 자리를 잡고 목적을 이루기까지, 또 유일한 승자가 된 후에도 그는 주변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그는 일처리에 신중했으며 섣불리 날카로운 속마음을 보이지 않았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세상만을 보려는 이에게 너는 틀렸다며 지적하는 것이 옳은지, 좀더 기다려주고 눈감아주듯이 수용하는 것이 좋은지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결국 어떤 방법이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로 가리고 있다 해도 마음을 능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별로 공평하거나 친절하지 않으며, 더구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은데다가, 인간의 몸과 마음은 기본적으로 약육강식의 논리로 진화되어 왔다는 것을 일찍 깨닫는 사람은 현실 감각을 빨리 터득한 사람이다. 보통 응석받이로 자란 이들이 이런 법칙에 둔감하다. 그들은 여러 번 너는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암시를 받고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아니면 자신만은 특별해서 예외일 거라는 환상을 지니고 놓지 않는다.

요셉도 그런 아이였다.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차지한 요셉은 이복형들도 주위 사람들도 모두 야곱처럼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줄 안다. 그렇지 않았다면 무슨 배짱으로 부정父情의 상징 같은 채색 옷을 입고서 들일을 하는 형들에게 찾아갔겠는가. 요셉은 형들의 웃음이 비웃음인지, 증오의 웃음인지, 질시의 다른 표시인지 알지 못한다. 그는 형들의 분노도 결핍도 모른다. 오직 자기애만 있는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광야에서 요셉은 형들에게 잡혀 삼 일간 우물 속에 빠진 채 혹독한 고생을 치르면서야 세상의 법칙을 깨우친다. 이 세상에는 모든 것이 두 개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야곱의 사랑만큼 형들의 미움이 있었으며, 다시는 예전처럼 살 수 없으리라는 걸 짐작한다.

그래서 요셉은 이집트로 간다. 물론 형들에게 팔려갔다고 하지만 요셉의 선택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가 우물 속에서 올려졌을 때 어떻게든지 집으로 도망할 궁리를 했다면, 아버지에게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알고 다른 자신을 경험했기 때문에 요셉은 야곱의 그늘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여름 날 새벽의 대기를 가득 채운 안개가 짙을수록 한낮의 태양이 뜨겁듯이, 어린 요셉이 믿은 사랑이 완벽했기에 그의 충격과 깨달음은 컸을 것이다. 옥타비아누스의 위선처럼 사람을 마음놓게 하는 아름다움이나 부드러움에는 어떤 잔인함이 스며 있는 것만 같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진실을 발견한 우물 속에서 요셉은 어른의 마음에 한 발 다가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그는 나중에 또 다른 시련을 만나게 된다.

유년의 안개를 지나고서도 안개는 삶의 곳곳에 있어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모호한 안개가 걷히고, 햇빛을 가려주던 차일도 걷히고 햇볕이 정수리에 쏟아져올 때, 우리는 나이가 들고 거기에 익숙하다고 체념해도 뜨겁고 아프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요셉은 안개가 걷히기 전의 시절, 타인의 절대적인 사랑을 믿고 자신의 결핍과 어리석음을 모르던 그때를 가끔씩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는 햇볕이 내리쬐는 삭막한 현실을 어린 시절에 쌓은 자신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일어서지 않았을까.

로댕의 사랑이라는 실체가 벗겨진 후 카미유 클로델은 미쳐갔고, 오나시스와의 사랑이 좌절된 후 마리아 칼라스는 약물중독으로 쓰러졌다. 그들의 눈을 속인 안개는 너무 달콤하고 치명적이어서 그들이 다시는 햇빛 속을 거닐 수 없게 만들었다. 때로는 유혹에 빠지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데, 그들은 안개가 사라진 후 그렇게도 정신을 지탱하기 힘들었을까.

안개 걷힌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가며 나는 우물에서 올려진 후 상인을 따라 이집트로 떠나는 요셉의 마음을 생각한다. 형들의 진짜 마음을 알아버린 후 그들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지 알게 된 그의 마음을. 마른 우물 속에서의 눈물과 외침, 애원과 배고픔이 지나간 후 그가 깨달았을 현실과 결국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담담했을 마음까지.

햇볕이 뜨거우면 얼마나 뜨겁겠는가. 사람은 모든 일에 적응할 수 있고, 해야만 하고 견딜 수 있는 에너지 정도는 있다. 환상이 사라진 자리에는 현실의 게임이 있다. 그것을 즐길 마음을 먹는다면 안개가 걷힌 후에야 진짜 삶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햇빛을 안고 수없이 걷고 걸어야 하는 시간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계간 수필>로 등단(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