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

 

박두진(朴斗鎭)의

 

‘난(蘭)과 수석(水石)’

 

 

일시:2004년 12월 18일

장소: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인원:문우회 및 계수회 회원 45명

사회:변해명

정리:최순희

 

 

 

<본문>

 

蘭과 水石

 

                                                                                   

난蘭을 좋아하다가 돌을 좋아하게 되었다. 난을 그만두고 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난과 돌을 다같이 좋아하게 되었다.

난은 난대로 좋고 돌은 돌대로 좋아서 각각 좋아하게 된 것이지만 난을 좋아하다가 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극히 자연스러운 일, 으레 그래야 할 일,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진다.

물론 꼭 그래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법은 없겠지만 난을 좋아하다가 돌까지를, 그리고 그 난과 돌을 다같이 좋아할 수 있게 된 것은 나로서는 다시없는 청복淸福, 다시없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난을 난대로만, 돌을 돌대로만 아는 것으로 그쳤다면 어쩔 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을 알았기 때문에 돌을 더 알 것 같고 돌을 앎으로써 난을 더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러한 느낌이다.

이 자연의 정수精粹이자 놀라운 순수純粹, 한 뿌리 풀로서의 난과 한 덩이 돌로서의 수석水石은 서로 서로 완전히 이질·대조·대척적對蹠的이면서 그 극極, 고고孤高와 초연超然에서 근원은 하나에 있다.

난이 정情의 극치라면 수석은 의意의 극치, 난이 부드러우면서 의연毅然하다면 수석은 강剛하면서 지혜를 감추고 있다. 아니 난의 고고와 어질음에 대해서 수석은 불기不羈이면서 차라리 성자聖者롭다.

난이 청초淸楚, 고아高雅, 순미純美한 품격品格이라면 수석은 뇌뢰낙낙磊磊落落 고古하고, 괴怪하면서도 관용자수寬容自守한다. 기寄하되 가볍지 않고, 항抗하되 오傲하지 않고, 하나의 완벽한 개성으로 한 개 작은 수석이 능히 기세로도 아아峨峨한 태산준령泰山峻嶺이 필적한다. 수수투루綏瘦透漏, 누천만만년屢千萬萬年의 시련과 열력閱歷이, 그 대자연의 오묘하고 주도한 조형적造形的 배려가 하나의 응고된 결정結晶, 멀리 인지를 초월한 예술의 일품逸品으로 우리 앞에 있는다.

수석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그 수석을 찾아 나서고 찾고 발견하고 캐내는 과정으로 달리게 한다. 태산준령을 그 봉우리와 능선을 걸어서 넘고 경계景槪와 정기精氣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맑은 물 강변 역력礫礫한 돌밭을 곡괭이를 들고 헤매며 바로 태산준령의 또 하나의 응결체凝結體, 변화무쌍하고 정교·웅혼雄渾하기 이를 데 없는 소자연小自然의 경이를 탐색 발굴해 내는 것이다.

형태와 규모, 질과 색에서부터 경景 상형象形 상징象徵 추상抽象으로 가려보면서, 수석을 캐는 사람 자신이 하나의 조형造形 예술가의 특유하고 개성적인 심미적審美的 자질과 능력을 구사하면서 무사無邪한 동심의 세계로까지 몰입한다. 단양丹陽, 울산蔚山, 울진蔚珍, 옥천沃川, 점촌店村, 양수兩水, 덕소德沼에 이르는 북한강·남한강·금강·오십천五十川 어디에나 수석은 그 만고의 신비와 미를 간직한 채 숨어 있다.

여기에는 고괴古怪해서 그 앞에 미전米顚이 무릎을 꿇고, 하배下拜했다는 옛 기위寄威한 돌을 방불케 하는 돌을 만날 수 있는가 하면, 아주 세련된 초현대적인 조각으로 저 에밀 지리오리나 앙리 아담, 잔 아르푸나 아몽드롱의 작품을 갖다 놓은 것 같은 순 칠오석漆烏石 추상작품을 캐어낼 수도 있다. 대자연의 비장秘藏의 작품은 그 찾아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고, 또 실지로 드러나 있다.

난이나 수석을 사랑함은 다 속기俗氣를 벗어나 초연한 경지에 다다르는 하나의 길일 텐데 요즈음 나는 너무 수석에 마음이 이끌려 도리어 속기에 빠져들어가는 것이나 아닌가 스스로 경계하며 있다.

<1972. 1. 23.>

 

 

 

사회:안녕하십니까. <계간 수필> 제39호, 2005년 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작품은 혜산兮山 박두진(朴斗鎭)(1916~1998) 시인의 수필 ‘蘭과 水石’입니다. 이 글은 1972년에 쓰여진 작품으로, 그분의 수필집 가운데 『언덕에 이는 바람』(서문당, 1973)에 수록된 것을 텍스트로 삼았습니다.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한 박두진 시인은 1939년 정지용 시인의 추천을 받아 <문장>지로 등단했습니다. 조지훈·박목월 시인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출발하여 작고하기까지 20여 권의 시집과 『생각하는 갈대』, 『그대 가장 고독할 때』, 『언덕에 이는 바람』 등 3권의 수필집과 20여 권의 산문집 및 전집을 남겼습니다.

그는 1970년 무렵부터 수석에 열중하여 『수석열전』, 『속 수석열전』, 『돌과의 사랑』 등의 시집과 수석에 대한 수필들을 썼는데, ‘난과 수석’은 ‘돌을 위한 오브제’란 연재물을 <心象>지에 연재하던 당시의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오늘 토론자로는 유경환·김수봉·홍혜랑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합평 순서는 먼저 소재로서의 난과 수석이 주제를 이끌어내는 데 어떻게 작용했나 하는 점을 살펴보고, 이어 토론자들이 읽어 오신 수석에 대한 수필들을 통하여 작가의 수석에 대한 열정과 이를 통해 그분이 하고 싶은 이야기, 즉 주제에 접근해 본 다음, 마지막으로 시 ‘해’와 수필인 ‘난과 수석’에 공통적으로 드러난 문체의 특색을 통해 그분이 우리말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수필은 1970년대 작품치고는 어려운 한문투가 매우 많습니다. 합평을 위해서도, 또 잡지에 수록되었을 때 다른 독자들을 위해서도 좀더 이해가 쉽도록 중간 부분의 ‘난이 청초, 고아, 순미한…’에서부터 그 단락 끝의 ‘…우리 앞에 있는다’까지 허 회장님께서 평이한 문장으로 풀이해 주셨으면 합니다.

허세욱:‘뇌뢰낙낙(磊磊落落)’은 그 글자 속에 보이는 것처럼, 돌들이 첩첩 쌓여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이분은 한문에 능숙하여 사자성어를 매우 애용하고 있지요. 뇌뢰낙낙, 관용자수, 수수투루, 태산준령, 천만만년 등이 다 그러한데, ‘기(寄)하되 가볍지 않고, 항(抗)하되 오(傲)하지 않고’도 ‘기이불경(寄而不輕)하고 ‘항이불오(抗而不傲)하고’를 풀어 쓴 것입니다. 즉, ‘남에게 붙어 있긴 하되 무겁게, 점잖게 붙어 있고, 남에게 저항은 하되 결코 오만하지 않고’의 뜻으로, 대구對句입니다. ‘아아(峨峨)한’은 ‘높을 峨’ 자니까 ‘높고 높은, 혹은 우뚝 솟은’ 정도의 쉬운 뜻이지요. 그 다음 ‘수수투루(綏瘦透漏)’는 웬만한 사전에는 안 잘 나오는 까다로운 말로서 ‘수수(綏瘦)’는 ‘안태지모(安態之貌)’, 즉 ‘편안하고 편안한 모습’을 말하고, ‘투루(透漏)’는 ‘투루지모(透漏之貌)’, 즉 ‘투명하게 드러내는 모습’을 말합니다. 합쳐서 ‘편안하면서도 모든 것을 투명하게 다 드러내는 모습’을 말하는 거지요.

 

사회:감사합니다. 그러면 이제 소재로서의 난과 수석이 주제를 어떻게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홍혜랑:이 글을 몇 번씩 읽어도 제게는 수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석이란 소재가 특수해서 제가 이해 못하는 건가 했으나, 수필집 『언덕에 이는 바람』에 실려 있는 ‘수석 도(道)’, ‘수석 기연(奇緣)’, ‘수석의 미’, ‘수석의 색채미’, ‘수석에 묻혀 살며’ 등, 수석에 관한 나머지 5편의 작품을 모두 읽고 나니 비로소 보편성이 보이면서 이해가 되더군요. 여섯 편의 작품을 하나로 보면 이해가 된다는 뜻이지요.

소재의 특수성 이외에도 다른 장애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문장과 어휘가 어려워서 턱턱 걸리는 부분이 많다는 점과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무게와 용량에 비해서 글이 너무 짧은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의 전개가 너무 대승적이었달까, 이 작품 하나만으로는 근기 낮은 독자가 쉽게 공감하거나 주제를 끌어낼 수 없는 거리가 생긴 듯합니다.  

김수봉:제목 자체가 곧 소재라고 봅니다. ‘수석’은 대개 ‘목숨 수(壽)’ 자의 ‘壽石’으로 쓰는데 이분은 ‘水石’으로 쓰신 것이 특이합니다. 글을 써 나간 순서를 짚어보면 난을 좋아하다가 돌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리 된 이유를 서두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설명이 좀 장황하고, 수석 수집 취미가 선비의 고결한 품격을 드러내던 그 시절과 상당히 대중화된 지금과는 다소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글은 난과 수석의 순수미와 자연미를 발견해가는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이어 그 둘에서 미적 기품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말하고 뒤이어 예찬하는 단계로 넘어가는데, 여기서 수석이나 난의 모습을 그림 그리듯 보여주기보다는 관념적인 어려운 어휘로 너무 장황하게 나열해 놓았기 때문에 앞서 주제나 수석의 모습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홍 선생님의 말에 동감하게 됩니다. 탐석을 위한 편력과 채집 중에 횡재에 가까운 작품도 만나는 기쁨을 말하다가 ‘…너무 마음이 이끌리다 보니 도리어 속기에 빠져드는 것 아닌가 경계한다’라고 한 결미에서 주제가 드러난다고 봅니다. ‘수석은 만고의 신비와 미를 간직하고 있다’면서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데, 수석을 좋아하게 된 경위가 장황하고 한문 수식어가 남용되어 오히려 주제의 초점이 흐려진 감이 있습니다.

유경환:원래 합평 작품 선정은 사회자의 몫이나 저와 박두진 선생의 인연을 알고 계신 탓에 사회자께서 제게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혜산 박두진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그분과 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비교적 많았습니다. 언젠가 선생에게 시 말고 산문 중에서 “이것이다” 하며 스스로 좋아하는 작품은 어떤 것이냐고 여쭈었더니, ‘난과 수석’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이 작품을 합평 작품으로 고르게 된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소재가 곧 주제인데, 이 말은 현학도 궤변도 아닙니다. 혜산에게는 이 글이 곧 자신의 삶의 양식이며, 삶의 방법론이고, 삶에 대한 정의(定義)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사셨고, 사람 자체가 이러했어요. 무겁지 아니한 그림자를 뒤에 무겁게 끌고 굽은 등으로 수석을 찾아 땡볕의 강변을 걸어가는 뒷모습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겹쳐지는 혜산 선생의 인상입니다.

선생은 82세까지 사셨고, 61년 동안 글을 쓰셨습니다. 시집과 수필집을 포함하여 50권 이상을 쓰셨는데, 그 중에서 이 한 편을 고르셨다는 것은 곧 이 글이 가장 자기다운 글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회:소재를 통해 주제를 말해 주십사 했는데, 결국 주제를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주제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습니다만, 다른 수필들과 함께 읽어보면 그분이 수석에 대해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탐미해가는 과정인가를 말한 글이더라는 말씀도 나왔습니다. 또 속기를 벗어나 초연한 경지에 다다르는 하나의 길이라는 말씀도 있었는가 하면, 소재가 곧 주제라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그 이외 다른 의견이 있으면 객석에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이태동:문체 때문에 논란이 있으나, 저는 이 글은 이렇게 한문으로 쓰지 않았으면 가치가 없었을 거라고 봅니다. 난은 청초, 고아, 순미한 품격을 지녔다고 짧고 단순하게 표현했으나, 수석은 그 생김새를 한문으로 조형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剛)하고, 견고한 의지의 극치로서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굴하지 않고, 의연하고 등의 수석의 특질은 한문으로 쓰지 않으면 표현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세대는 한문을 잘 모르니 글이 잘 전달되지 않을 우려가 있긴 합니다만, 그 때문에 이 수필이 살아 있는 거지요. 문체는 주제를 비쳐주는 거울인 동시에 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기 때문에, 한문 표현을 통해 괴석이라든지 수석 풍장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다고 봅니다.

유경환:앞서 김수봉 선생께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壽石’이라고 쓰는데 혜산 선생은 왜 ‘水石’이라고 썼을까 하셨는데, 1956년 혜산 선생을 처음 뵈었을 때 제가 한 첫 질문이 그것이었습니다. 왜 ‘물 水’ 자를 쓰시는가 여쭈었더니, 그분의 대답이 당연히 ‘물 水’ 자다, 라는 것이었어요. 자연, 즉 돌은 물에 의해 형상이 이루어진다, 자연에 의한 마모이기 때문에 그 형상화에 신비가 깃들고 신의 의지가 나타난다, 바위 틈에 스며든 물이 얼면 팽창된 물의 압력에 의해 돌은 깨지고 물이 산꼭대기에서 강 하구까지 흘러내려오는 동안 수없이 부대끼고 부대끼며 마모되는 삶을 지켜본다, 그것이 인간의 삶과 똑같지 않은가, 영혼의 마모는 자연에 의한 것일 때 가장 아름답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수석(水石)’으로 쓴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넓은 이마에 두꺼운 안경테의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ㄱ 자로 날카로운 턱뼈를 한 이분의 얼굴은 곧 바람·물·자연에 의해서 마모된 수석과도 같은 인상을 풍깁니다. 이렇게 사람 자체와 생활이 수석과 꼭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요.

홍혜랑:이태동 선생님은 묵직한 한자들이 제자리에 놓였다고 말씀하셨으나, 5편의 다른 작품들은 이 수필과는 스타일이 달랐고, 제겐 그 글들이 훨씬 더 교감이 쉬웠어요. 제가 의문을 갖는 점은 이 수필이 수석에 대한 글들 중 가장 먼저 쓰인 작품이더라는 것이지요. 내용은 다분히 철학적이지만 좀더 쉽게 풀어 쓴 다른 글들이 오히려 나중에 나왔다는 얘긴데, 어찌하여 이렇게 거꾸로 되었나 의아합니다.

허세욱:순서로 볼 때는 비록 처음 쓴 글이라 해도 이 글은 수석에 대한 총론식 글이 아닌가 합니다. 먼저 난의 덕을 이야기하고 이어 수석의 덕을 이야기했는데, 그것이 점점 층차를 보이다가 자신은 난을 좋아하다가 수석을 좋아하게 되었고, 결국 그 둘을 다같이 좋아하게 되었다면서 그 둘을 연계한 데에 이분의 차원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공통점은 고고함과 초연함이라는 두 가지로 집약이 되고 있지요.

유경환:연세대 퇴임 강연에서 그분은 자신은 학사도 석사도 박사도 아니라서 ‘선비 사(士)’의 ‘士’ 자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이 대학에서 15년간 강의하게 해 준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선생은 평소에도 이태백의 시를 줄줄 외웠고, 글도 이런 식으로 쓰셨습니다. 뒤에 글이 쉬워졌다면 한글 세대를 위한 것일 테고 원래는 이렇게 쓰셨습니다.

공덕룡:나는 결미에서 ‘…너무 수석에 마음이 이끌려 도리어 속기에 빠져들어가는 것이나 아닌가 스스로 경계하며 있다’는 대목에 주목했습니다. 수석을 수집해서 진열해 둔다는 것, 바로 그것이 속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들은 얘깁니다만, 선생이 이사를 가는데 보니 서재 안이 발 디딜 틈 없이 온통 수석이더랍니다. 당시에는 한국에 수석 수집이 유행했으나, 나는 돌은 자연 속 있는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두는 것이 자연을 사랑하고 돌을 사랑하는 것이지 왜 굳이 그것을 모아 전시하고 인간 임의의 주관적인 해석을 붙이고 하는지 우스꽝스럽게 여겨집니다. 서양인들은 돌을 모아서 집안에 들이지 않는데 동양인, 특히 한·중·일 사람들은 정원을 수석으로 장식하는 등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스스로 ‘속기’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그분 자신도 이를 인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회:난과 수석이 소재로서 어떻게 주제를 이끌어내는가 하는 문제로부터 문체 이야기까지 흘러왔군요. 앞서 소재가 곧 주제라는 말씀이 나왔지만 이 중 수석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수석은 단지 말 그대로 수석일 뿐인가, 아니면 작가가 평소 드러내고 싶은 어떤 삶의 깊이 혹은 의지 등으로 재해석할 수는 없겠는가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분의 시 ‘해’가 벅찬 광복의 기쁨을 상징하듯이, 수석이 그분의 삶에서 갖는 의미를 도출해 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는데요.

김수봉:‘난이나 수석을 사랑함은 다 속기를 벗어나 초연한 경지에 다다르는 하나의 길이다’고 말했는데, 곧 이어 ‘요즈음 나는 너무 수석에 마음이 이끌려 도리어 속기에 빠져드는 것이나 아닌가 스스로 경계하며 있다’고 했단 말이지요. 좋아하는 것도 너무 지나치면 속기에 빠져버릴 수 있다면서 자신의 수집벽을 재고해 보는 자기반성이 익살스럽게 드러나 있다고 봅니다.

홍혜랑:수석이 이분의 삶에 무슨 의미일까, 왜 이토록 심취했을까 하는 점이 저는 사실 제일 궁금했습니다.

‘수석 道’라는 글에 보면 ‘시를 쓴 지 30년이 되지만 스스로 시인이라고 자처하거나 의식해 본 일이 없다. 이것이 정말 시일까, 이것을 시라고 해서 옳을까 하는 회의를 가져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는 말이 나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시인이라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왜 시인이라 자처하지 못했을까요? 그분은 시를 통해 언어로 형상화 해낼 수 없는 자신의 광활한 정신세계를 바로 수석에서 본 것이 아닐까요. 수석을 만난 것이 아니라 침묵하는 자신의 시어들을 만났고, 시에서 못다 한 부분을 거기서 보완하려고 수석을 찾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경환:혜산 선생은 1950년대에 시간강사로 시작하여 타의로 학교를 떠났다가 몇십 년 후 복직, 통산 15년간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세상의 모순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인간으로서 매우 고뇌했고, 타협을 모르는 성품 때문에 박 정권 초기부터 비판적이었으며, 뒷날 한일수교에 반대하는 87인의 문인들 중 1호로 서명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에게 있어서의 수석은 그냥 광물질의 돌이 아니고 부조리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신과 대화할 수 있는 그러한 대상이었던 겁니다.

 

사회:수석을 곧 시인 자신이 갈 수 있고 할 수 있는 최대 정점으로 본 거지요.

김진식:박두진 시인은 청록파 시인으로서 자연에 귀의하려는 정신이 강했습니다. 자연이 갖고 있는 소박성이 그의 귀의의 대상인데, 그는 난과 수석을 자연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자신과 자연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었으나, 하다 보니 거기 집착하고 예속되고 따라서 그 자신은 속물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는 얘기지요.

김시헌:나는 글이 왜 이리 추상적이 되었는가에 관심이 갑니다. 일반적으로 수필가들은 구체적인 사실과 체험을 토대로 이를 의미화 하는 글을 쓰는데, 이분은 시인이라서 그런지 체험의 사실화와 형상화 노력을 생략하여 결과적으로 추상적이고 실감이 별로 나지 않는 글이 되었다고 봅니다.

 

사회:이제 문체와 문장을 짚어보겠습니다. 이분의 시 ‘해’를 보면 ‘해야 솟아라’라는 구절이 한 연에 4번이나 반복되지요. 내재율에 산문화한 시어로 반복을 거듭하는 만연체의 문장으로 쓰여진 시입니다. 이처럼 반복에 의해서 되울리는 언어의 효과, 의성어와 의태어가 문장 속에서 조응하는 기능은 우리말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인 좋은 표현의 보기로 보입니다. ‘난과 수석’도 산문이지만 그런 이질적·대조적·대척적 극을 통해 하나의 근원으로 귀결됨을 이끌어내려고 한 문체는 같다고 봅니다. 그 문체를 통해 이 글에서 시인이 추구한 것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봉진:운율을 살린 점이 좋습니다.

김수봉:저는 ‘난을 좋아하다가 돌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 맨 첫 문장부터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돌까지’ 좋아했다고 해야 난과 돌을 둘 다 좋아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전달된다고 봅니다. 1972년에 쓰인 글이라면 현대 문장과 큰 차이 없을 텐데, 이분의 개성이긴 하겠으나 문장이 간결하지 못하고 과장된 예찬에 한자어 수식을 남용하여, 이런 어휘나 문투가 오늘의 젊은 세대와 뒷사람들에게 읽힐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또 ‘멀리 인지를 초월한 예술의 일품으로 우리 앞에 있는다’라든지, 맨 끝의 ‘스스로 경계하며 있다’에서 보는 것처럼, 어법도 부자연스럽지요. 실례의 말이지만 자신의 해박함을 과시하려는 듯한 현학성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홍혜랑:문체는 다른 분들이 많이 말씀해 주셔서 저는 관심이 많은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분의 다른 글 ‘수석의 색채미’를 보면 작가는 수석이 갖는 자연적 조형미가 인간의 창조미를 능가하는 점에 의문을 가졌어요. ‘자연 자체는 어떤 의미나 의도가 없이 그냥 되어진 결과인데 어떻게 인간이 영혼을 다 바쳐 만드는 창조성을 능가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지요.

작가 스스로 발견한 답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리스의 고전적 조각으로부터 현대의 전위적 조각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수없이 많은 예술의 변천사를 겪어왔다. 무슨 주의 무슨 주의 등 제 아무리 많은 이름을 붙여 시대의 특징을 구별하지만 이 모든 예술적 전형은 이미 자연 속에, 수석 속에 다 들어 있다. 인간의 창작활동은 결국 자연 속에 이미 들어 있는 조형미를 재현하고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입니다.

유경환:명절 때 찾아뵈면 선생은 두 시간을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말은 두 마디 이상이 없으셨어요. 대화가 없이 이심전심으로 느낄 수 있는 구도자의 자세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예술 작품이 자연이 만든 조형미를 능가할 수 없다는 얘기는 이 글 전체를 흐르는 정신이기도 하고, 평소 그분이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돌은 자연에 의한 마모를 순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 형상화된 결과가 그토록 아름답고 인간이 추적할 수 없는 심오함이 거기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세속적인 욕심 때문에 자연에 의한 마모를 거부한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은 자연에 의한 마모로 돌이 갖게 되는 형상미만큼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쓰는 글은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것을 우리 식에 맞춰 쉽게 썼으면 하는 것은 무리지요.

이태동:워즈워스의 경우를 보면 아주 간결한 시가 있는 반면에 매우 복잡한 시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써야 하는가 하면 주제와 내용이 복잡하기 때문에 간결한 시어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내용을 시가 아닌 산문으로 쓰면서 간결·평이하게 쓰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글이 죽어버리게 됩니다. 칼라일의 문장도 상당히 길고 복잡한데, 각자의 사상과 스타일을 무시하고 무조건 간결성만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 수필계에서 과대평가되고 있는 분으로 피천득 선생의 예를 들 수 있겠는데, 그분의 글은 간결한 문장 대신 내용이 없지 않습니까.

 

사회:반복되는 문장에 의해 되울리는 언어의 효과를 작가는 어떻게 의도적으로 표현해 냈는가, 또는 문장 속에서 조응하는 기능은 어떤 것이었는가를 여쭤보고 싶었는데 다른 방향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명예회장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김태길:이 자리에서 박두진 시인과 연배로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제가 되겠는데, 글에서는 거리감을 맛보기 때문에 맨 마지막에 말한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저는 그분과 공석 상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은 있으나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습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는 그분은 이런 분일 것이다, 라는 그림이 거의 떠오르지 않았었으나 지금은 떠오르는군요. ‘수필은 문장으로 그린 자화상이다’라는 상식적인 얘기를 바탕으로 할 때, 이 글은 박두진 시인이 상당히 잘 나타난 글이라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분과 대등한 품격을 지닌 분에겐 참고가 되겠지만, 나처럼 속기가 많은 사람들은 함부로 흉내 내거나 본받기 어렵겠다는 경계를 하면서 읽었습니다.

 

사회:이것으로 오늘 합평회를 마치겠습니다. 참여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