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목사와의 대화

 

                                                                                            李應百

 

내 연구소 옆에 박 목사란 이가 살고 있다. 언젠가 연구소 앞을 지나다가 들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얼굴이 편안하게 생겨 별 부담감이 없었다. 중국 청도(靑島)대학에 한국어과가 일본어과에 부설돼 있었다고 했다. 도서(圖書)가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목사는 한국어 관련 도서를 열심히 모아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 문제라면 나도 돕겠다고 국어국문학 관계 책과 내게 보내온 수필·시조 관계 책을 모아서 주었다. 그 뒤 한국어과가 독립됐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재작년이던가, 한국어과 교수가 서울에 온 길에 내게 인사를 하겠다 했는데, 공교롭게도 시간이 어긋나 만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 뒤로도 책을 모아 놓으면 박 목사가 들러 가지고 가곤 했다. 내 이름과 내게 보낸 이들의 이름이 아울러 적힌 책이 배에 실려 연방 중국으로 가는 것이다. 좋은 글들이 그쪽 한국어과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읽히고, 날로 글의 힘이 신장(伸張)될 것을 생각할 때 마음이 흐뭇해진다.

내가 전에 회장으로 있던 대학 동창회 여직원이 시집을 간다고 했다. 목사의 부인이 된다고 했다. 어느 날 약혼자와 동창회 사무실에서 만날 때, 우연히 나도 자리를 함께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목사의 부인이 될 여자 직원에게 한 마디 당부를 했다. 목사란 직분은 신도 앞에서 언행에 혹 실수가 가지 않을까 늘 긴장상태가 지속될 것이므로, 가정에 돌아왔을 때에는 마음이 느긋해질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 내조자(內助者)의 도리라고 했다. 공자孔子는 나이 70에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규칙을 넘는 일이 없다(不踰矩)고 했다. 이 경지에 도달하려면 많은 수양이 쌓여야 할 것이기에, 긴장과 이완(弛緩)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가정에서는 목사이기에 앞서 하나의 자연인으로 돌아가 느긋한 심정을 만끽(滿喫)할 수 있게 하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도 박 목사에게 들려주었다.

어느 날 박 목사가 연구소에 들렀다.

“오늘은 내가 목사님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개신교의 목사들은 제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남의 딸이나 며느리에게 제사 음식을 만들거나 제사에 참여하지 말라 한다는데, 제사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한국에서 행해져 내려온 하나의 전통이므로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요. 각 가정에는 나름대로 전통이 있으므로 그 전통을 부정하면 불협화음不(協和音)이 일어날 것이죠. 아버지의 아버지가 할아버지, 그 아버지가 증조할아버지이듯 조상이 실제로 살아 계셨던 분들이지 결코 우상(偶像)이 아니기 때문이죠. 따라서 여자들이 일단 그 집안식구가 되면 그 집 전통에 화협(和協)할 것이지, 따로 돌아 이질감(異質感)을 자아내서는 안 될 것이지요.”

그 말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안 했으나, 적어도 집안의 큰 행사에 베도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라 한 데 대해서는 그의 인품人品으로 보아 동감했으리라 여겨진다.

나는 본관(本貫)이 전주(全州)인 관계로 최소한 직계의 능제향(陵祭享)에는 참사(參祀)를 한다. 그런데 금년 제향 때는 홀기(笏記)를 읽어 진행을 맡아보는 이의 입에서 국궁사배(鞠躬四拜)할 때 뻣뻣이 선 채 허리를 굽히지 않는 지적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일반 사람들이 기독교식으로 진행하는 혼례식에서 찬송가를 따라 부르듯, 제례(祭禮) 행사에서 그 흐름에 따라 절을 할 때에는 절을 해야지, 유표(有表)하게 이질적인 행동을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려면 아예 참사를 하지 않을 일이다. 조상을 위해 참사는 했지만 절은 교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안 한다는 생각은 독선적이 아닐는지.

올 여름에 사무실 정리가 필요해 책 정리를 많이 해 연구소 옆 공간에 상당량의 책을 쌓아놓고, 박 목사 댁 입구에다 ‘책을 내 놓았으니 가져가시지요’라고 써 붙여 놓았다. 전화를 몇 번 걸어도 받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이 어느 날 보니 싹 비어져 있었다.

그런 지 얼마가 지난 뒤 박 목사가 연구실에 들렀다. 일본에 몇 달 동안 갔다 왔으므로 집이 비었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책은 다른 사람이 가져간 것이 적실하다. 아마도 그 쪽지를 보고 대리행동을 한 게 아닌가 여겨진다. 그것을 유효하게 썼다면 그런대로 눈 감을 수 있겠으나 휴지로 처분했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박 목사도 그것을 걱정하면서 아깝게 된 일이라고 했다.

박 목사는 동경에 머물면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에게 IMF 이후에 노숙자가 생겨 개인이나 단체가 식사제공 등 시혜(施惠)를 하는데, 일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노숙자에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우리와는 아주 다르다고 했다.

그들은 노숙자는 스스로 가져온 결과이니, 그것을 개인이나 단체, 국가에서 도울 필요가 없다는 시각(視角)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시혜는 결과적으로 그 장본인에게서 반성해 고치려는 계기 자체를 빼앗아 영원한 낙오자가 되게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그들 생각은 노숙자는 게으른 것이 주 원인이라고 일괄 처리하고, 다른 사정은 불문에 붙인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그 원인을 여러 모로 분석 파악을 해 적절한 후속 조처를 한다고 한다. 저들이 몹쓸 존재이니 세상에서 빨리 사라져야 할 무리들로 간주(看做)하는 데 비해, 한국인은 동정을 베푸는 마음을 지녔다고 했다. 베푸는 마음, 그러한 마음씨가 언젠가는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외국인들이 처음에는 예절 바르고 친절하게 대하는 일본인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렇지 못한 한국인을 별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나 일인들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금을 그어 더 이상 가까워지기가 어려운데 비해, 얼핏 거칠고 예절 바르지 못한 듯이 보이는 한국인은 깊이 사귀면 간이라도 베어 줄 만큼 정이 깊이 들 수 있어 끝없는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며칠 전에 박 목사가 또 들렀다. 이번에도 동경에 가 그들이 백안시하는 노숙자 돕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책이 생기면 두었다가 자기가 돌아왔을 때 직접 달라고 당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