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도의 숨결

 

                                                                                        宋圭浩

 

“부우─.”

길게 울리는 허스키 뱃고동 소리가 어쩐지 옛스런 정감을 자아내게 한다. 아침 일찍 인천(仁川)을 향해 백령도(白翎島)를 떠난 쾌속선 백령 아이랜드 호가 20분 만에 대청도(大靑島)의 선진포 부두에 다가붙는다.

대청도는 섬 전체가 마치 푸른 숲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인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황해도 장연군에 딸려 있었으나 8·15 광복 이후 옹진군에 편입되어 지금은 인천광역시에 속한다.

어제 하루를 묵은 백령도와는 여러모로 딴판인 큰 푸른 섬이다. 일반적으로 고리타분한 갯비린내 속에 이래저래 지저분한 것이 갯마을의 풍습이련만, 이 섬의 생리만은 유다르다.

더없이 맑고 넓은 하늘과 푸른 산 그리고 잔잔히 빛나는 검푸른 아침 바다… 이 푸른 세계에서 수많은 하얀 물새들이 봄맞이 풍어 축제를 벌이고 있다. 아니다. 일부러 찾아온 나그네를 위한 공중 퍼레이드인 것이다. 그러나 섬사람들에게는 예사로운 아침인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깃배들이 조용히 물때를 기다리는 이 아늑한 항구에는 앞을 다투어 욕심을 챙기려는 떠버리도 없다. 버려진 담배꽁초는커녕 쉬파리 하나 보이지 않는다. 자연스레 되풀이되는 밀물과 썰물처럼 더하고 덜함을 행복으로 조절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백령도의 산마루에는 효녀 심청이가 인당수를 바라보며 서 있다. 그런데 여기 부두의 나들머리에서는 섬사람들의 염원을 나타낸 ‘어부상(漁夫像)’이 눈길을 끈다.

평화롭게 잘 살기 위해 서로 뜻을 모아 힘쓰자는 모뉴먼트이다. 아직은 싸늘한 갯바람 속에 팬티 바람으로 그물을 끌어당기는 세 사나이의 구릿빛 힘살이 믿음직스럽기만 하다.

자그마한 고개를 넘어내린 사탄동이다.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가 크고 높은 언덕을 잇달아 빚어 올렸다. 그리하여 허연 자연의 마음밭에 바람이 그려낸 추상화가 볼수록 신비롭다. 아울러 우람찬 방풍림이 거듭 뒤돌아 보인다.

인구 4백을 헤아리는 자그마한 섬에도 전설은 있다. 느긋이 오르는 이 골짜기가 전설의 신향당골이다. 그 옛날 뭍에서 잘 살던 신향이는 욕심이 빚어낸 의붓어머니의 계략으로 말미암아 옥수동 해변까지 떠밀려왔다. 그리하여 이곳에 우물을 파고 집터를 잡아 살았다는 옛이야기이다.

무성한 억새 속에 이제는 그 집터도 우물터도 알아 볼 길이 없다. 까마득히 흘러간 세월 속에 본디 모습으로 되돌아간 듯한 자연 그대로다.

무엇보다 만나보고 싶은 것은 마음먹고 찾아온 동백나무다. 내동고개에 이르자 동백골로 내려가는 지름길이 구불구불 가파른 계단이다.

여기 널따란 산기슭에 ‘동백나무 북방한계 자생지’라는 안내판이 반갑기도 하다. 이 ‘천연기념물 제66호’는 가장 북쪽 땅에서 저절로 자라는 동백나무 단지다. 까만 곰솔과 붉은소나무 그리고 뜸직한 바위들이 멀리 가까이 눈여겨 지켜보는 배경을 이루었다.

동백은 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중국 등지의 따뜻한 해안지대에 자라는 늘 푸른나무로 알려진다. 요즘 여수 오동도에는 동백꽃이 한창이라는데 이곳은 아직도 꿈속이다. 오므린 꽃망울이 이제 겨우 파르스레 숨타나기 시작한다.

여기 동백은 말수를 아끼는 이곳 사람들처럼 지레 입을 열거나 함부로 웃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람을 멀리 하는 것이 아니다. 동백의 꽃말마따나 오히려 겸손한 아름다움을 가슴 깊이 새겨 안고 기다리는 그리움이다.

대청도의 봄은 바다를 건너오느라고 이리 더딘가. 땅 속에서 솟아나기가 무척이나 힘들겠다. 삼단 같은 머리채에 동백기름 자르르 바르고 봄 언덕에서 나물 캐던 아가씨들의 콧노래도 이제는 전설 같은 옛이야기이다.

중국 옥봉사(玉峰寺)의 명물인 한 그루의 산다(山茶)에는 올해도 2만 송이가 넘는 꽃이 피겠지. 나도(那都) 노인은 아직도 옥룡설산(玉龍雪山)의 남쪽 기슭에서 6백 년 묵은 그 동백나무를 돌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본의 오시마(大島)에는 동백이 4km에 이르는 꽃길 터널을 이루었다. 그리고 김유정(金裕貞)의 ‘동백꽃’은 두 청춘 남녀가 엮어가는 슬픈 사랑 속에 피고지곤 했었다. 약쑥과 더덕을 먹고 사는 저 놓아먹인 흑염소 떼가 어찌 보면 부러울 것도 같다.

수많은 밤을 기다리며 사연도 많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어디선가 들려온 듯한 해발 343m의 삼각산 허릿고개이다. 소박하면서도 깔끔한 전망대가 섬사람들의 몸차림과 마음가짐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다.

대청도에는 신선대와 선녀탕 같은 명소가 따로 없다. 모란이 꽃의 여왕이라면, 옹진군의 눈꽃인 해당화는 화중신선(花中神仙)이다. 그리하여 섬을 둘러싼 갯가와 산기슭 어디서나 꽃이 피고 열매 맺는다.

 

높은 하늘, 푸른 바다와

평생을 함께 하는 사람들

시들지 않고 지는 동백꽃같이

신선의 얼이 담긴 해당화처럼

자연의 숨결 따라

한결같이 살아간다

이슬 먹고 자라는 풀꽃 또한

일부러 지어낸 전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