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飛行雲)이 지워진 빈 하늘

 

                                                                                            변해명

 

옛날에, 불씨를 담은 질화로를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씨가 얼마나 소중했던지 불돌 밑에 꼭꼭 눌러 묻어두고 불씨가 사위지 않기를 빌었었지요. 그러고도 행여 누가 불씨를 훔쳐갈까 봐서 질화로를 깊이 감추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 했지요. 내 불씨를 남들이 시샘해서 훔쳐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해서요. 그 질화로를 지키는 불안은 컸지만 그것은 가슴 벅찬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질화로에 불씨가 꺼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날 외할아버지는 몹시 화가 나서, 조상님에게 죄를 지었다며 몸둘 바를 몰라 하셨습니다. 불씨가 꺼진다는 것, 즉 불씨를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조상의 넋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의미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에서 불씨를 얻어오는 것은 수치라고 내색도 못하게 했습니다.

부시로 몇 번인가 부싯돌을 때려 부싯깃에 붙은 불꽃 하나로 다시 아궁이에 불은 타오르고 질화로에는 숯불이 가득 담겨졌지만, 그렇게 쉽게 불꽃을 만들 수도 있는데, 대를 물리는 불씨를 꺼뜨린 행동은 그렇게 쉽게 넘겨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때는 아궁이에서 장작이 다 타고 나면 질화로에 불을 담고 그 불 위에 재를 덮고 불돌을 눌렀지만 그 날만은 불돌도 재도 얹지 않고 화로를 마루에 놓고 사위어가는 숯불의 불꽃들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불씨는 집안에 대를 물려가는 넋이다. 아무 불씨나 묻어두는 게 아니지. 가슴 속에 불씨도 꺼지지 않아야 화로에 불씨도 꺼지지 않는다.”

가슴에 불덩이 하나 깊이 묻어두지 않으면 다시 불꽃을 피워 나무를 태울 불길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그 넋의 불씨. 언제부터 이어져온 것일까. 그 날 나는 생각을 해 보다 내 가슴 속 불씨 하나가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의 불씨를 보고 있으면 어느 만큼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어요. 겨울을 질러가지 못하는 몸짓으로 홀로 서 있는 소년, 고향 언저리를 떠도는 나그네 같은 소년은 언젠지도 모르게 질화로의 한편의 불씨처럼 꼭꼭 숨어 드러나지 않은 온기로 내 가슴에 숨어 있다가 나를 장작삼아 태우려 했지요. 그 소년의 눈빛이 질화로의 불돌 밑 불씨처럼 가슴 밑바닥에 눌려 시나브로 사위어가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 아픔을 보듬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긴긴 겨울밤 눈밭에 서서 그의 창의 불빛을 지켜보면 추위도 잊고 무서움도 잊었지요. 그만큼에 서서 밤을 보냈지요. 조그만 불씨 하나가 내 몸을 태우고 불꽃이 사위어 차디찬 재가 되고 불씨조차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나는 홀로 피고 지는 동백꽃이었어요.

어느 날 꺼진 불씨로 아파하는 외할아버지처럼 나는 스스로 마음의 불씨를 끄고 아파했어요. 가슴에 불덩이 하나 깊이 묻어두지 않으면 다시 불꽃을 피워 나무를 태울 불길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요.

 

지금 그 소년은 비행기 조종사로 남아 있어요.

비행기 조종사는 모를 거예요. 자신이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하늘에 남기고 사라졌다는 사실을.

비행기는 이미 하늘에서 멀리 사라졌는데 비행기가 날며 그려놓은 비행운은 푸른 하늘에 선명히 남아 비발디의 선율처럼 감미로운 여운의 꽃떨기로 다가왔어요. 바라보고 있으면 자꾸 가슴이 설레었지요. 너무 아름답고 너무 눈이 부셔서요. 그 아름다움이 이내 사라지면 슬퍼질까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 비행기가 지나간 빈 하늘에 비행기가 만들어놓고 간 비행운을 보면서 옛날의 내 모습으로 서 있는 나를 발견했지요. 질화로에 꺼진 불씨를 찾고 있는 내가 문득 놀랍기도 했지만, 그보다 꺼진 불씨가 어느 불돌 밑에 숨어 있기라도 하듯.

 

며칠 밤을 앉아 있었어요. 허위허위 넘기는 하루 해질녘이면 빈 잔을 앞에 놓고 시를 생각하듯. 후렴구같이 몰려올 여운에 이끌려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한 채.

하늘에 여운이 모두 잦아들고 노을이 물들어올 때, 흔적도 없이 사라진 비행운을 쫓던 내 마음도 재로 사윈 불돌 밑의 불씨처럼 연기가 되어 먼 하늘로 사라져 가겠지요.

비행운은 푸른 파도의 물거품처럼 하늘에서 출렁이다 사라지는 것을. 구름 한 조각 그리움으로 피워 올랐다 바람이듯 지워져가는 것을.

영원처럼 다가왔던 구름 한 줄기, 지금은 비행운이 지워진 빈 하늘, 불씨를 잃어버린 빈 화로처럼 빈 하늘, 신비한 영혼의 집이었던 내 마음 속 질화로는 한낱 여운의 집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고 있습니다.

바람도 없는 날 큰 강을 건너는 구름 한 조각 새삼 빈 가슴에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