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의 휴가

 

                                                                                            金素耕

 

겨울철 준비로 며칠 분주해서였는지 잠결에 자명종을 누른 채 숙면을 했다. 그러고 보니 아무도 없이 혼자 맞이하는 아침이다. 대가족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일로 남편과 아들이 잠시 집을 떠나서 내게 3일간의 휴가가 주어진 셈이다. 3일간의 휴가라고 혼잣말을 해 보니 어떤 영화의 제목 같다. 새 소리도 들리지 않고 집안에는 시계의 초침 소리뿐이다. 오늘 할 일을 대강 짚어본다. 넉넉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하루가, 붓을 기다리는 원고지처럼 놓여 있다.

간단한 체조를 하고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아침 준비를 한다. 수란을 만들고, 토스트에 바를 꿀을 내놓고 과일도 보기 좋게 담는다. 문우가 여행지에서 가져온 냅킨도 꺼낸다. 혼자 먹는 아침이지만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가정에서 아내의 건강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을 크리스털이듯 관리하는 것은, 그것이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주인이 없을 방을 둘러보고, 읽을 책을 고르면서 커피를 준비한다. 멀리서 보내온 에스프레소 ─ 코냑에 볶는다는 이 커피 맛은 풋콩 같은 나이에 만난 입술처럼 다가와 내 나이를 잊게 한다. 아침 커피를 마실 때면, 귄터 그라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양철북’의 난쟁이 여자가 말벗이 되어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커피 없이 하루를 시작할 수 없다면서, 북을 두드려대는 연인과 떠나려던 트럭에서 내려 노점으로 뛰어간다. 거리에서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트럭을 향해 환한 표정을 짓는 순간, 그녀는 공습으로 목숨을 잃는다. 오래 전에 본 영화지만, 그 커피에 대한 그녀의 갈망이 내 손 안에 모아진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자유가 아닐까.

몇 년 전에 독일 뤼벡에 갔을 때 어느 집에서 한 남자가 나오면서 내게 미소를 짓고 지나갔는데, 후에 알고 보니 그가 귄터 그라스였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거리를 걷던 중이었는데, 참으로 가벼운 아쉬움이 남는 만남이었다.

이런 상념 속에서 마시는 아침 커피는 온전히 나를 만나게 해 준다. 편한 옷을 입은 것 같은 마음으로 부족한 내 모습도 보이고, 때로는 좋은 글을 읽었을 때와 같은 전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여유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찻잔을 들고 내다보는 빈 뜰 ─ 가을걷이를 끝낸 뜰이 노모의 가슴처럼 안겨든다. 며칠 전에 네댓 접이 되는 감을 따서 나눠주었다. 감나무를 바라본 이웃에서부터, 감봉지가 오십 개쯤 나간 것 같다. 정원사의 손을 빌려서 수확을 하고 나누는 일도 수월치 않다. 그래도 연례행사처럼 하는 것은, 도심에서는 흔치 않은 나눔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뜰 동편에 묻어놓은 김장독으로 초겨울 햇살이 머문다. 엊그제 김장을 하면서 소를 버무리던 함지박도 편안하게 놓여 있다. 농사지은 김장감이 넉넉하게 와서 양념거리도 만만치가 않았다. 갖가지 양념이 어우러진 소를 버무리면서, 이것도 화합의 장場이구나 싶었다. 항아리 안에서는 지금, 알맞게 소를 안은 배추들이 참맛을 내기 위해 어우러지고 있을 것이다. 마치 음악회 전에 악기들이 튜닝을 하듯이.

가끔 음악회에 갈 때면 튜닝 하는 것을 보려고 조금 일찍 자리에 앉는다. 어떤 명기도 연주자와 한몸이 되기 전에는 제 소리를 내지 못한다지 않는가. 참소리를 얻기 위해 연주자가 악기의 음을 고르는 모습을 보면 아름다움은 수고로 빚어지고, 그 안에는 겸손이 모여진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럴 때는 아들이 유학 시절에 지도교수에게서 들었다고 전해 주던 말도 떠올려 본다. 아들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얻은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제출하면서, ‘세계 최초’라는 문구를 넣었다고 한다. 교수는 최초라는 단어를 지우면서, 그 논문을 읽는 사람들은 최초의 연구 결과임을 안다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나는 아들의 논문 못지않게 그를 참사람으로 이끌어준 스승과의 만남이 고마웠다.

가을걷이를 끝낸 뜰에서는 나무들이 겨울잠에 들어가고 있다. 가지를 흔드는 바람도 없고 햇살은 입춘 무렵 같아 보인다. 그래도 머지않아 감나무나 장독대에는 햇솜 같은 눈이 쌓일 것이다. 계절은 어김없이 오고, 나무들은 그 안에서 정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3일간의 휴가 ─ 첫날은 뜰을 바라보면서 그런 나무들의 침묵을 닮아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