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부엌 아궁이

 

                                                                                          오병훈

 

부엌문을 들어서면 맨 먼저 아궁이가 눈에 들어온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부엌인지라 침침한 실내는 눅눅한 이끼 냄새를 품고 있었다. 눈이 익숙해지면서 연장통이며 비닐 물통, 고무호스 같은 물건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시골에서도 땔감이 석유나 가스로 바뀌면서 난방도 보일러 시스템으로 개량되었다. 그런 까닭에 부엌은 조리와 난방이라는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창고가 되고 말았다. 안방에 딸린 찬방에 싱크대를 설치하는 것으로 입식부엌 구실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아궁이 또한 제 할일을 잊은 지 오래 되었다. 바닥에 턱을 묻은 채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다. 바보처럼 무료한 하품을 토한다. 한때는 이 아궁이도 시뻘건 불을 삼키고 꼬리 쪽 굴뚝으로 연기를 뿜어 올리며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렸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으면 내 어릴 때 모습을 되새기게 된다.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서 일어서실 때마다 “아이구, 이놈의 다리야” 하면서 힘들어 하셨다. 부뚜막에서 상을 차리는 일이며 조리를 할 때도 허리를 굽혀야 했고, 아궁이에 땔감을 한 개피씩 넣을라치면 몸을 최대한 낮추어야 했다. 그래서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는 어머니는 언제나 무릎 관절이 좋지 않으셨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 내게 있어서 아궁이는 유년 시절의 수많은 이야기를 감추고 있는 추억의 장소이다. 어머니는 어린 내게 사내대장부는 부엌에 자주 들어오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불은 살아 있는 짐승처럼 무서운 것이라며 불씨를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곤 하셨다. 불을 지필 때는 맨 먼저 지푸라기 같은 것을 태우고 나중에 나뭇가지를 얹고 불꽃이 일어 잘 타들어갈 때 굵은 장작개비를 넣으라고 일러주셨다. 아궁이 앞에 앉은 내가 못 미더운지 어머니는 일을 하는 틈틈이 밖으로 불길이 나오지 못하도록 땔감을 더 깊이 넣는 것을 도와주곤 하셨다.

고래 속으로 활활 타들어가는 불꽃의 눈부신 이글거림은 두려우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따금씩 얼굴을 확 끼치는 뜨거운 기운 또한 야릇한 흥분을 느끼게 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불꽃이 좋았는지…….

아궁이는 우리 형제를 불러모으는 장소였다. 장작이 타고 나면 잿불에 감자며 고구마를 묻어두었다 꺼내 먹는 맛 또한 잊을 수 없다. 감자보다 고구마가 훨씬 달다. 잘 익은 군고구마는 너무 뜨거워 손을 번갈아가면서 껍질을 벗겼다. 입으로 호호 불어 식히면서 조금씩 베어 물고 혀로 굴리면서 먹으면 달착지근한 맛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구워 먹을 수 있는 것이 어디 감자와 고구마뿐이겠는가. 철따라 밤이나 땅콩에서 옥수수도 잿불에 구워 먹었다. 옥수수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약한 불에 묻어야 하고, 밤은 껍질을 조금 까서 묻어야 폭발을 막을 수 있었다.

어머니가 밀가루 반죽을 밀어 칼국수를 할 때면 옆에서 기다려지게 마련이었다. 방석처럼 넓게 만 반죽을 접어 양쪽 끝자락을 잘라내게 되는데, 펴면 어른 손바닥만큼이나 넓었다. 그 자투리를 국시꼬랭이라 불렀는데 언제나 우리 형제들 차지였다. 아궁이의 잿불을 앞으로 조금 꺼내고 그 위에 국시꼬랭이를 얹으면 금방 살아서 꿈틀꿈틀 부풀어올랐다. 수포 끝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것은 잠시뿐. 이렇게 구운 밀가루 빵은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먹을거리가 귀했던 시절에는 계란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날계란 한두 개를 풀어 실파를 썰어 넣고 소금 간을 해 찜을 하면 온 식구가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계란껍질도 귀한 것인지라 한쪽에만 구멍을 뚫고 속에 든 내용물을 쏟아내었다. 이렇게 얻은 껍질에 쌀을 한 숟가락 넣고 물을 부었다. 굵은 소금 몇 알로 간을 하여 숯불에 울리면 금방 물이 보글보글 끓으면서 쌀이 부풀어올랐다. 껍질 밖으로 밥알이 솟아오르면 꺼냈다. 껍질을 벗기면서 먹는 뜨겁고 고소한 밥. 우리는 한 줌도 안 되는 알밥이었지만 고소한 맛이 좋아 계란밥이라고 불렀다. 그 기막힌 계란밥의 맛을 재현해 보고 싶다.

어머니가 묵을 쑬 때는 내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을 도왔는데 짚이라는 것이 잘 타는 땔감이 아니었다. 너무 많이 넣으면 연기만 날 뿐 타지 않았고, 그렇다고 조금씩 넣으면 불길이 훅 하고 타오르다 꺼져버렸다. 짚을 적당한 몫으로 나누어 계속 넣다보면 어느 새 솥에서는 걸쭉한 도토리 죽이 되고 그릇에 퍼 담아 식히면 묵이 되었다. 아궁이는 짚을 태운 재로 하나 가득 차게 마련이었다. 마당에 커다란 옹기 자배기를 두고 그 위에 나무 삼발이를 얹었다. 그리고 바닥에 짚을 깐 시루를 얹고 재를 가득 채웠다. 시루에 물을 붓고 아래로 떨어진 잿물을 받았는데 노리끼리한 것이 손으로 만지면 가루비누처럼 미끈거렸다. 이 잿물에 이불 호청이며 작업복, 두루마기 같은 큰 빨래를 담그면 때가 잘 빠졌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아껴 쓰시는 분이셨던 것 같다. 장작을 태워 불덩이가 남으면 양철통에 옮겨 담았다. 뚜껑을 덮고 식혀서 숯을 만들면 연기가 나지 않아서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부엌 아궁이가 아이들의 불장난 장소로만 쓰였겠는가. 타다 남은 장작을 꺼내도 이글거리는 불덩이는 그대로 남았다. 불덩이는 농익은 홍시를, 그것도 갈라놓은 속살 빛으로 일렁거렸다. 그 앞에 앉으면 얼굴이 달아오르고 작은 가슴도 덩달아 불덩이가 되어 타올랐다.

불 속에 굵은 철사를 달구어 막대기에 꽂으면 썰매의 쇠꼬챙이가 되었다. 이렇게 만든 썰매와 꼬챙이로 얼음판에서 놀다 보면 짧은 겨울 하루가 아쉬울 따름이었다.

빈 아궁이는 얼마나 오랫동안 불길을 받아보지 않았는지 벽은 흰 곰팡이가 슬어 있고 눅눅한 습기로 한기까지 돌았다. 이 아궁이에 끼니 때마다 불을 붙이고 그 열기로 음식이 익어갈 때면 집 안의 화기도 감돌았다.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하루 세 끼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야 한다며 어머니는 점심에도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김이 피어오르는 솥이지만 뚜껑을 열면 맹물뿐이어서 우리를 실망시키곤 했다. 빈 솥에 불을 지피는 어머니 옆에서 아궁이의 불꽃을 보고 있으면 허기진 마음으로 꿈인 듯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곤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유년의 추억이 서린 아궁이를 살려보기로 했다. 신문지를 구겨서 불을 붙였다. 오랫동안 불을 때지 않은 아궁이인지라 처음에는 불길이 밖으로만 나오고 잘 타지 않았다. 몇 장의 신문지를 태우는 동안 차츰 불길은 고래로 빨려들고 내 어린 날의 허기진 추억들도 불씨처럼 피어올랐다. 아직 아궁이가 남아 있다는 것으로 시골의 정취가 살아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일어서는데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무릎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아이구!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나도 어머니처럼 관절이 나빠진 것일까. 이 집에서 내 어린 세월을 삼킨 아궁이는 아직도 무엇인가 더 달라는 듯 시커먼 입을 더욱 크게 벌리고 있다.

 

<수필공원으>로 등단. 도서출판 ‘생명의 나무’ 대표, 주간.

저서 『꽃이 있는 삶』, 『원예 대백과』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