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자리

 

                                                                                        배채진

 

‘상위’는 전남 구례 산수유 마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아니 ‘산수유 마을’이 상위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상위 마을과 하위 마을을 통틀어 산수유 마을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른 아침에 숙소인 지리산 가족호텔을 나와, 그 길이 산수유 마을 가는 길인 줄도 모르고 들어선 길이 산수유 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길 입구 마을엔 이른 아침인데도 고목나무 아래서 서성대는 두 사람이 있었다. 나무는 내리는 비에 몸을 온통 내맡기고 있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당신은 지금 산 아래 끝닿는 동네로 가고 있다’고 했다. ‘경치가 좋으냐’고 물어봤더니, ‘아주 좋다’고 했다. ‘끝 동네’라고도 했다. 이처럼 우연히 가게 된 산수유 마을이었다.

오르는 길은 상쾌하기만 했다. 포장된 도로는 내리는 비로 인해 말끔히 씻겨진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고, 안개를 휘감고 있는 산은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내려오는 사람도 오르는 차도 없다. 코스모스들만 사열병들처럼 서 있었다. 내가 모는 차는 자기가 사열이라도 받는 것인 양 우쭐대듯 고개 쳐들고 달려 올라가고 있었다.

산굽이를 돌아서 저만치 가니 이정표가 기다리고 있다. 집 떠나 먼 곳에서 만나게 되는 이정표는 언제나 반갑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그 얼굴에서 나는 반가움을 읽어낸다. 전라도 길 이정표는 전라도 얼굴이고 강원도 길 이정표는 강원도 얼굴이다. 충청도 이정표는 충청도 말로 말 건네고, 경상도 이정표는 경상도 말로 내게 말 건넨다.

도착해서 보니 상위는 산 아래 끝 동네였다. ‘이곳이 봄에, 신문에 자주 나는 그 산수유 마을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동네 아주머니의 대답이다. “워디서 오셨능기라?”고 묻기로, “부싼서 왔다”고 대답했다. 산수유 피는 봄에는 고로쇠 물도 많이 나니 그때 오거든 우리 집으로 와서 물 사가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고로쇠 물 때문에라도 봄에 꼭 다시 와야겠다.

버스가 와서 아주머니를 싣고 내려갔다. 아차, 아주머니와 산골 버스를 사진 한 장 찍었어야 하는 건데 그만 놓쳐버렸다. 아쉽다. 늘 이리 동작이 늦다. 동작도 동작이지만 생각이 더 늦다. 버스 가고 난 뒤 손 흔들면 뭐하나. 하기야 요새 차에는 백미러가 있으니 지나간 차 보고 손 흔들어도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진 찍겠다고 손 흔들어 차를 돌릴 수야 없지 않는가. 손 흔들기를 포기했다.

마을 중간에 전망 좋은 언덕이 있었고 그 언덕엔 또 집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하얀 집이었다. 흰색은 산의 푸른색과 대비되어 유난히 돋보였다. 다락 논, 계단식 논들은 유연한 곡선을 이리저리 언덕 앞으로 풀어놓고 있었다. 집에서 나온 젊은 부부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작은 트럭의 시동을 부릉 걸고는 마을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보아하니 농부, 젊은 농부 부부였다. 떠나는 뒷모습이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농부와 하얀 집이 신선한 주제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주인이 떠나고 없는 집 가까이로 한발 다가섰다. 각목 울타리와 대문도 집처럼 온통 하얀 색이었다. 마당에는 거위와 닭이 사이좋게 서성이고 있었다. 거위와 닭의 저런 모습을 노는 거라고 해야 하는 건지, 일하고 있는 거라고 말해야 하는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닭과 거위는 뭔가를 하고 있었다. 땅을 헤적거리기도 하고 쪼기도 하는 거였다. 그러다가 웅크리고 앉아 졸기도 했고.

흰색 가운데서도 우체통만은 그 색이 선명히 붉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우체통이 모양이 좀 다르다. 장난감 집 같은 우체통 안에 항아리가 누워 있는 것이었다. 항아리를 품에 안고 있는 우체통은 처음 본다.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기다렸다가 주인 부부에게 물어보고 떠날까 보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게 되었느냐고 말이다.

과수원이던 우리 집의 항아리들은 주로 밤이나 감의 항아리였다. 간장이나 된장, 김치를 담는 항아리 말고는 말이다. 지금 나는 작은 독을 항아리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항아리의 감은 더러 홍시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떫은 감이었다. 감의 떫은 맛을 제거하기 위해 소금물에 담그는 것이었다.

그리고 항아리의 자리는 대개 장독대였다. 물론 장독대만이 항아리 자리인 것은 아니다. 선반도 항아리의 자리였고, 작은 방 아랫목도 항아리 자리였다. 꿀이나 집안의 문서를 담은 항아리는 선반에 있거나 농 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산수유 마을의 하얀 집 항아리는 대문 앞 우체통을 자기 자리로 가지고 있었다. 우체통은 항아리의 앉을 자리가 아니라 누울 자리였다. 누운 항아리의 자태는 붉은 속옷의 엉덩이처럼 요염하기까지 했다.

문득 엽서 한 장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주소를 적었다. 이번엔 생각도 비교적 빨리 났고 동작도 빨리 한 셈이다. 하얀 집의 주인 농부가 항아리 우체통으로부터 엽서를 꺼내들었을 때, 그 엽서를 쓴 사람이 미지의 사람인데 뜬금없이 쓴 엽서임을 확인하게 되면 그의 심중은 어떻게 박동하게 될까? 안단테? 모데라토? 라르고? 짐작해 보는 내 심중의 두근거림은 동네를 떠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엽서를 보냈다. 아직 답이 오지 않았다.

 

<계간 수필>로 등단(2004년).

부산 가톨릭대 교수. 부산 독서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