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갈망(渴望)

 

                                                                                         김현규

 

1. 갈망

꽃은 향기와 빛으로 그가 처한 한 계절을 향기롭고 우아하게 살아가지만, 새들은 고운 깃털과 예쁜 목소리로 그가 사는 숲 속을 기쁨에 넘치고 신선한 세상이 되게 한다.

그에 비하여 이 세상의 영장인 인간은 학문과 기술로 기발한 발명과 발견을 해 내서 세상을 풍요롭고 평화롭게 발전시키며, 예술을 통해서는 인간의 영혼을 더욱 고상하고 평화롭게 승화시켜 행복한 세상을 숨쉬게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도량과 식견이 탁월한 정치지도자는 그가 처한 한 세대를 밝고 깨끗하며, 정답고 보람찬 세상이 되게 하여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세월을 열어가게 한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세종대왕이 그런 임금이시며, 방촌 황희 정승 같으신 분이 그런 재상宰相이시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 같으신 분이 그런 장수이시다.

불행하게도 지난 100년 전의 역사 속에서 정치지도자들을 잘못 만나 우리 민족은 왜놈들의 침략으로 모진 곤욕과 압제 속에서 힘들게 살아 넘어왔다. 그 후 조국이 광복 되고 반세기가 되는 동안 반 동강난 조국의 통일과 민주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서 대통령을 아홉 분이나 선출해 냈지만 한숨만을 가중시킬 뿐 깨끗하고 공명한 정치판을 아직껏 일궈내지 못했다.

그랬으면서도 위대한 정치지도자의 출현을 갈망하며 답답한 가슴을 다독이며 살아간다. 그 답답한 심정을 풀어보려고 여기 어떤 우화(寓話)를 적어 보는 것이다.

 

2. 우화(寓話)

어느 가을날 베를린 교외의 으슥한 별장에서 무솔리니와 히틀러 그리고 스탈린과 처칠이 마주 앉아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커다란 정원수가 울창하게 용립한 그늘 밑에는 꽤 깊고 큰 인조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는 비단잉어가 늠실대며 가을의 평화를 즐기고 있었다. 평소 힘겨루기를 좋아하고 독선적이며 뽐내기를 좋아하는 히틀러가 스탈린과 처칠을 향하여 의기양양한 어조로 싸움을 걸었다. “저 연못 속의 잉어를 잡아내기 시합을 하자”고.

그때 무솔리니가 튀어나오면서 히틀러에게 말했다.

“그만한 일에 형님이 나설 것까지 있겠습니까? 제가 간단히 해치우지요.”

성미가 급한 무솔리니는 허리에 찬 권총으로 비단잉어의 정수리를 향해 마구 갈겨댔다. 포성은 정원의 평화를 흔들고 파란 하늘을 찢어버릴 듯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연못 물줄기가 공중 높이 치솟아 올라갔다. 때문에 평화롭던 연못은 흙탕물로 뒤범벅이 되었고, 비단잉어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무솔리니는 만면에 희색을 띠우고 비단잉어가 물 위에 벌겋게 나동그라져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총성으로 살벌해졌던 정원이 다시 평온을 되찾았고, 헝클어졌던 연못도 맑아져 정원의 평화로웠던 정취는 제 모습을 되찾았고, 투명해진 연못 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뻘겋게 물든 단풍나무 밑으로 비단잉어가 전대로 꽃처럼 늠실늠실 춤을 추듯 노닐고 있을 뿐 총에 맞아서 수면 위로 떠오른 잉어는 한 마리도 없었다.

무솔리니는 계면쩍어 했고, 히틀러는 후끈 달아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허리에 찼던 권총을 뽑아 들고 사정없이 갈겨댔다. 정원의 장엄한 평화는 또다시 깨졌다. 히틀러는 자기의 사격 솜씨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틀림없이 뻘건 잉어 여러 마리가 수면 위로 나동그라져 떠오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흙탕물이 가라앉아 연못은 다시 맑아졌고, 정원과 연못의 평화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맑고 조용한 햇빛으로 가득히 빛나고 있을 뿐 잉어는 한 마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만에 가득한 히틀러의 기대도 빗나간 것이 틀림이 없었다.

음흉한 인상의 스탈린은 하늘을 향해 가가대소하며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경망한 사격 솜씨를 비웃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하고 거만한 동작으로 연못가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허리의 권총을 서서히 빼들고 숨을 멈추고는 제일 큰 비단잉어의 머리통을 겨냥했다. 그의 태도는 자못 진지하고 신중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다른 두 사람의 결과와 다를 것이 없었다. 가을 정원의 평화를 또 한 번 깨뜨리고 흙탕물을 솟구치게만 하였을 뿐 아무 성과도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세 사람의 실패를 향해서 처칠 경은 시거를 입에 문 채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지었을 뿐 말이 없었다. 성미가 오른 스탈린이 “뚱뚱한 섬나라 양반아, 남의 실패를 비웃지만 말고 어서 잉어를 잡아내 보구려!” 하고 힐난했다.

처칠 경은 저주와 비웃음과 독기가 가득한 세 사람의 시선을 뒤로 하고 못 둑 밑으로 내려갔다. 세 사람은 둑 밑으로 내려가는 처칠 경의 뒷모습을 쏘아보며 냉소의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뚱뚱한 영국인의 행동을 측은하고 역겹게 생각하며 독한 위스키를 한 모금씩 마셨다.

그러나 둑 밑으로 내려간 처칠 경은 한식경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궁금증이 발동한 세 사람은 둑 위로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못 둑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처칠 경을 발견했다.

히틀러가 처칠 경에게 “뚱보 양반! 무엇을 하고 있소!” 하고 비웃듯이 말을 건넸다.

그러자 처칠 경은 조용히 “잉어 잡는 일을 하고 있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는 중이오”라고 아리송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처칠 경은 못 둑 밑으로 내려가자, 못으로 물이 유입되는 유입구를 단단히 틀어막고, 반대로 배수구를 활짝 열어놓았다. 그러고는 자기가 마시던 물 컵으로 연신 못 밖으로 물을 퍼내고 있는 것이었다.

 

3. 환상(幻想)

이 우화는 나보다 다섯 살 위였던 서울 S대에 다니던 K형이 왜정 때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나에게 들려주었던 우화이다. 나는 왜 이 우화를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광복 이후 역사의 고비 때마다 위대한 정치적 영도자의 출현을 갈망하며 반세기를 넘겼다. 그 고비 때마다 K형의 우화는 내 머리 속에서 다시 살아나곤 하였다. 처칠 경처럼 도량이 넓고 침착하며 현실을 냉철하게 살펴서 과단성 있게 행동하는 지도자가 환상처럼 떠오르는 것이었다.

지금 북한의 핵문제 때문에 6자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회의는 여섯 나라 대표가 하게 되어 있지만 그 배후에는 미국의 부시,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후진타오, 일본의 고이즈미,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 북한의 김정일이 버티고 있다. 과연 6자 중 무솔리니는 누구며 히틀러는 누구이고 처칠 경은 누구일까 상상해 본다.

하나의 집단인 민족이 실패를 거듭하면 도덕이 무너지고 질서가 없어지며 암흑의 세상을 닮아간다. 그러나 어떤 환상이라도 높이 치켜들고 그것을 향하여 한 집단이 한 덩어리로 뭉치고 열성을 다할 때 초연한 기대치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위대한 정치지도자를 뽑아내야 한다. 세종대왕 같고, 방촌 황희 정승 같으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을 길러내고 뽑아내야 한다. 처칠 경 같은 위대한 정치지도자를 환상처럼 애틋하게 갈망하며 살아가는 한국인이여……. 반만 년의 역사 속에서 빛나는 문화를 지키고 살아온 민족이여…….

 

<수필문학>으로 등단(91년). 수필문학 우수상 수상(95년). 현 수필문학작가회 회장.

수필집 『돌아오는 봄빛』, 『원색감동』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