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카데미 제5회 강좌 요지>

 

사색적인 수필

 

                                                                                          고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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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글을 쓴다는 것은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에 언어를 부여하는 일이고 이것은 바로 사색을 하는 일에 속한다. 사색은 어떤 사물을 조리 있게 깊이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은 평소에 별로 사색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이나, 이전에 얻은 기성관념을 믿고, 습관적인 느낌이나 생각으로, 별로 깊이 반성하는 일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해가고 있다. 그러나 가끔 생경한 일을 만나거나 주변 상황의 현저한 변화를 의식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러한 습관적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 없게 된다. 즉 어떤 문제 상황에 봉착하였을 때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사색을 하게 된다. 글을 쓴다는 일 자체도 일상을 벗어난 하나의 문제 상황과 대면하고 있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글이라도 기본적으로는 사색을 그 밑바닥에 깔고 있다.

그러나 수필을 이야기할 때 흔히 ‘사색적인 수필’과 ‘서정적인 수필’로 양분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硬)수필’이니 ‘연(軟)수필’이니 하는 구분이나 ‘중(重)수필’이니 ‘경(輕)수필’이니 하는 구분도, 외연이 서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략 같은 두 부류의 수필을 두고 하는 구분법이다. 우리가 ‘사색적인 수필’이라고 할 때 뜻하는 것은, 사색의 주 대상을 자기의 정서적인 측면보다는 지적인 측면에 두고, 그것을 서술하는데 사리나 논리 전개에 보다 중점을 두고 쓴 글이라는 비교적 관점에서 붙인 개념이다.

‘사색적인 수필’에서 사색은 어떤 상황 또는 실정(實情)을 인식하는 것을 첫 단계로 해서 그 바람직한 상태를 상정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을 제시하는 과정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색을 거쳐 일정하게 다듬어진 생각을 ‘사상’이라고 부른다. 사상이라고 하면 사회사상이나 경제사상 같은 것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게 거창한 것만이 사상은 아니다. 하나의 생활태도, 예를 들면 청빈사상 같은 것, 또는 어느 곳 ‘간척공사’를 반대하는 주장도 자기 성찰을 거친 것이라면 그 사람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사색적인 수필’은 일상에 매몰되어 있는 자기(自己), 습관적으로 사물을 보고 느끼고 반응을 하며 살고 있는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와 자기 주변을 ‘보다 깊게, 넓게,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 즉 철학하는 것’을 통하여 참된 자기를 찾고 정립하는 일이 중심이 된다. 그러한 수필은 종종 어떤 하나의 사상에 도달하며 그것을 설득적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2

세계 문학사적으로 볼 때 수필은 태어날 때부터 ‘사색적인 수필’이었다. 몽테뉴의 『에세』가 그러했고, 베이컨의 『에세이』도 그러했다. 이렇게 출발한 수필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서정적인 수필’보다는 ‘사색적인 수필’이 세계적으로 주류를 이루어왔고, 또 현재도 그 중심이 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수필 문단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서정적인 수필’이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수필의 명작이라고 불려 인구에 회자되어온 작품들이 ‘서정적인 수필’에 속한 것이 많아, 수필은 이러한 것이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상식이 형성된 탓이라고 본다.

이러한 수필에 대한 기호의 편중 현상은 논리적인 토론 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우리의 오랜 정신적인 전통에 기인하는 바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일을 처리하거나 평가할 때 냉철한 논리나 사리를 앞세우기보다는 우선 격정적인 감정으로 밀어붙이거나 호소하기를 선호한다. 이러한 풍토에서 ‘사색적인 수필’이 왕성하게 자라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색적인 수필’  현재와 같은 소수 집단의 분야로 남겨두는 것은 우리 모두의 지적 열락(悅樂)을 위해서 몹시 아쉬운 일이다.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색적인 수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서, 앞으로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작품들이 더욱 활발하게 발표되고 널리 사랑을 받게 되었으면 한다.

 

3

좋은 ‘사색적인 수필’을 쓰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몇 가지 제안해 본다.

첫째,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할 것이다.

‘사색적인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확장하고 그것을 활용하기 위한 논리적인 세련이 필요하다. 즉 우리의 선인들이 사물을 어떻게 보고 어떤 사색을 했던가? 그리고 사색한 결과를 어떻게 정리해서 남겼는가? 하는 모범적인 사례를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고전과 함께 세계적으로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도 읽어야 한다. 어떤 것을 읽을까 고르는데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우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우리 주변에서 좋은 작품을 찾아 읽어야 할 것이다.

둘째, 여행을 많이 해서 경험적인 지식을 넓혀야 할 것이다.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두루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우리를 습관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하는 살아 있는 교과서를 읽는 일이기도 하다.

셋째, 읽고 보고 들은 것이 제 아무리 많다 해도, 스스로 깊이 다시 생각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자기의 참된 지식과 지혜로 옮겨 놓고 글을 써야 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가장 경계하고 언제나 유의해야 할 일은 ‘도청이도설(道廳而塗說)’의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일이다. 책 몇 줄 읽고 거기 쓰여 있는 것을 미처 소화도 못한 채 그대로 글로 옮겨 놓거나, 한 차례 여행에서 얻은 견문을 자기의 평소 지식이나 되는 양 쉽사리 발표하는 일처럼 스스로를 부끄럽고 가치 없게 만드는 일은 따로 없다.

언제나 자기 속에, 자기와 대립하면서 사사건건 회의(懷疑)하고 부정(否定)하는 또 하나의 비판적인 자신을 두고, 끊임없이 논쟁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