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죽음

 

                                                                                            孔德龍

 

‘사람은 죽는다(Man is mortal).’ ─ 세상에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하나 언제 어떻게 죽느냐 ─ 이것은 확실치는 않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를 제외하곤…….

언제 어떻게 죽느냐 ─ 몰라서 다행이다. 만일 안다면 불안 초조에 시달려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암 말기의 코미디언은 의사로부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아니 벌써…”라고 호들갑을 떨었다지만 코미디언도 별수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나도 내 뜻은 개재하지 않았고 죽을 때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운명론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공자님은 “아직 생生(을) 모르는데 어찌 사(死)를 알리오”라고 했다던가. 물어본 제자도 대답한 스승도 속 편했을 것이다.

일본의 겐코(兼好) 법사라는 중은 “사기(死期)는 서(序)를 기다리지 않는다.” 또 “죽음은 앞으로 오지 않는다. 뒤로 다가온다”고 하였다. 그럴듯한 견해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뒤로 살짝 다가와서 등을 떠밀면 그것으로 만사가 휴(休)하다면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케이스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떠밀리는 것도 문제가 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주정꾼이 비틀거리다가 등을 떠밀었다고 하자. 바로 횡사다. 이런 끔찍한 횡사가 며칠 전에 있었다지 않은가. 나는 횡사하기는 싫다.

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두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첫째번은 중학교 일 학년 때이다. 스케이트를 처음 사 들고 춘천 교동에 있는 큰 연못에 얼음을 지치러 갔던 것이다. 초겨울이라 결빙이 굳지 않았고, 그 날따라 다사로운 햇빛이었다. 나는 신이 났다. 사람 몸무게를 받아 지날 때면 표면이 파상(波狀)을 지었다. 파상을 서핑 하듯 두어 바퀴 연못을 돌았을까. 얼음뿌리에 걸려 나동그라졌다. 고장난 잠수함같이 가도오도 못하는데, 얇은 얼음판은 서서히 꺼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팔다리를 휘젓고 깨진 얼음판 모서리를 잡으면 얼음판은 풍덩 꺼졌다. 그러기를 몇 번, 얼음판 구멍은 점점 커지고 나는 맥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기슭은 멀었다. 사람이 필사적이 되면 지혜가 솟아나는 것일까. 서까래 끝에 밧줄을 동여매고 얼음판 위에 밀어내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서까래 다른 한 끝에 몸을 싣고 끌려나왔다.

또 한 번은 6·25 남침 며칠 만에 북한 공산군은 수도를 점령하였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서울역 앞으로 나아가 보았다. 정문 입구에 두 대의 트럭이 나란히 있고, 트럭 위에는 대공기관총이 하늘로 뻗쳐 있었다. 사수로 보이는 병사도 있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한강 저쪽에서 폭격기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리는가 싶더니 용산역사 상공에서부터 고개를 숙여 소형 폭탄 몇 발을 뿌리면서 서울역사 위를 질풍같이 스쳐갔다. “펑…….”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땅에 던졌다. 두 손 엄지손가락은 두 귓구멍을 막고 네 손가락씩 눈을 가리고……. 참으로 놀라운 순간적 대처였다. 내 등 위로 큰 나무토막 같은 것이 떨어졌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폭풍을 맞고 날아온 사람의 몸뚱어리였다). 나는 폭연 속을 무작정 달려서 무슨 전기학교 옆길로 빠져 한 병원으로 뛰어들었다. 머리는 아스팔트 분말을 뒤집어쓰고 호주머니마다 분진이 그득 차 있었다. 귀, 눈 모두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민첩하게 몸을 내던지고, 눈, 귀를 막은 응변의 재치는 해방 전, 미군 공습에 대비하여 평소에 훈련을 쌓은 덕이었다. 몸에 익힌 동작이었으므로 반사적으로 그리 하였으리라.

나는 궁금해서 서울역 광장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보았다. 초연이 걷힌 뒤 폭격 자리의 참상이라니……. 대공기관총을 실은 트럭 두 대는 사람을 태우고 날아가 버리고 전차 선로는 엿가락같이 휘어서 하늘을 찌르고 2등대합실 입구 앞에는 큰 웅덩이가 파여 있었다. 내가 엎드렸던 자리는 거기서 몇 미터 거리였다. 등 뒤로 떨어진 시체도 그대로였다.

나는 구사일생의 재앙을 두 번이나 겪은 뒤 한 깨달음을 얻었다. ‘여생은 덤으로 살자’고.

덤으로 사는 인생이란 좀 억울한 일이 있어도 ‘그때 죽은 셈치고…’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기를 당해도 재산을 날려도 ‘그때 죽은 셈치고’ 접어두면 속 편했다. 화(禍)와 복(福)은 꽈놓은 새끼오라기 같은 것이라고도 했겠다. 어제의 재앙이 내일의 여복(余福)이 될 수도 있는 일…….

한국인 남자 평균수명이 72세 때, 내 나이 72세가 돼 있었고, 74세로 늘어나니 74세가 되고, 최근 76세로 치달았는데 내 나이는 평균수명을 훌쩍 앞질렀다. ‘여복’이라고 해 두기로 하자.

짐승 가운데 미리 죽음의 예징(豫徵)을 알아채는 동물이 있을까? 코끼리란 놈은 죽을 때가 되면 무리를 떠나 숲 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뼈가 산더미같이 쌓인 가운데서 죽음을 기다린다던가? 꽤나 영물 같은 죽음인가 싶었다. 코끼리의 죽음은 로만적으로 인식하였다 ─ 어렸을 때 읽었던가, 영화에서 보았던가 했는데,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별 신통한 죽음도 아니다. 역시 ‘코끼리의 죽음’이다.

사람다운 죽음이란 어떤 죽음일까? 한 고승은 죽을 날을 미리 짚어놓고 그 날이 되니 태연하게 단좌(端坐)한 채 숨을 거두었다지 않는가. ‘생사여일(生死如一)’의 경지이다. 하나 범인은 바라지 못한다.

누군가와도 같이 3·1 빌딩 옥상에서 투신한 케이스도 있었다. 이런 죽음은 스릴 만점이겠지만 너무도 끔찍하다. 낙하 도중에 “나는 아직 살았다!”고 한 마디 남겼다면 훌륭한 유언으로 기록될 것이다.

파뿌리 될 때까지 부부 구생(俱生)한 케이스는 요즘 같은 고령화 사회에선 흔한 일이겠지만, “나도 곧 갈게” ─ 한 마디는 먼저 가는 사람에게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 “당신 먼저, 아니 나 먼저” ─ 하고 선수권 아닌 선사권(先死權)을 다툰 부부가 있었다던가?

생명에 관한 한 ‘천명’을 믿는 것이 속 편하다. 태어나고 죽는 게 모두 주님의 섭리라고 믿으면 죽음의 두려움도 희석되지 않을까.

티베트에서 쫓겨난 고승 달라이라마 14세(1935년생)는 확실한 사생관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에 관해서는 종교, 철학, 전통에 따라 다른 해석과 이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나같이 불교에 귀의(歸依)한 사람은 재생, 전생(轉生)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종교적 전통에 서면 ‘죽음’은 단순한 ‘이 생명’의 끝이요, ‘현세’의 종말에 불과하다. 이 경우 ‘죽음’은 옷을 갈아입는다는 정도의 의미를 지닐 뿐이다. 내가 입고 있는 법의(法衣)가 찢어지고 터져서 더 입지 못하게 될 때, 나는 이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게 된다. 즉 보편적 존재가 낡은 육체를 버리고 새 육체에 깃들게 되는 하나의 대나무 마디(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인간의 대응은 공포와는 아주 딴판으로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죽음에 임할 때 마음에서 공포를 제거할 수가 있을 것이다. 정신적 수양을 쌓은 사람이라면 죽음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마음은 넉넉하고 평온하고 그러면서도 기쁨에 차 있을 것이다.

혹시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음을 생각지 말아라. 그러다 현실적으로 죽음이 다가오면 술이라도 마시며 남은 시간을 즐겨라. 곧 인생과 더불어 공포도 끝난다.”

이런 사생관은 ‘저승’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하지만, 나 같은 회의주의자엔 역시 오리무중이다. 공자님 말씀대로 ‘삶도 잘 모르는데…’ 죽어서 남길 글 ─ 묘비명을 포함해서 ─ 에 관심이 가서 뒤져본 일이 있다.

영국의 작가 R.L. 스티븐슨(1850~1894)의 무덤은 남태평양의 한 고도에 있는데, ‘작가의 무덤(The Tomb of Tusitala)’에는 스스로 지은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넓고 별빛 찬란한 하늘 아래

무덤을 파고 나를 눕혀다오

즐겁게 살다가는 한평생 기쁘게 죽어서

기쁨으로 여기 누웠노라…….’(이하 생략)

 

그는 45세에 죽었다. 스코틀랜드의 지체 높은 가문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병약하여 겨울에는 ‘이불 속의 삶’을 보냈다. 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불행한 짧은 인생을 살았다. 한데 그는 ‘즐겁게 살다가는…’이라고 하고, ‘기쁘게 죽어서…’라 하였다. 달관한 사생관이다.

그는 글쟁이답게 1894년 12월 3일 아침, 『허미스턴의 둑(Weir of Hermiston)』을 집필하다가 졸도해서 이튿날 아침, 홀연히 저승으로 떠났다.

그의 묘비명은 한 깨달음을 일깨워준다. 즐겁게 산 사람만이 기쁘게 죽을 수 있다는…….

‘취생몽사(醉生夢死)’란 말이 있다. 선생님은 나태한 인생의 본보기쯤으로 경고하였던가 싶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앞에서 인용한 달라이라마의 한 마디 “죽음을 생각하지 말라. 그러다 현실적으로 죽음이 다가오면 술이라도 마시며 남은 시간을 즐겨라”가 떠오른다. ‘취생몽사’의 긍정적 해석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술의 양도 음주의 빈도도 줄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카치 위스키를 실컷 마시고 잠들겠다. 깨어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