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지고 있는 것

 

                                                                                       黃小芝

 

친구가 집에 찾아왔다. 나이가 들어 몸이 옛 같지 않다고 하자, 친구는 단전(丹田)호흡을 배워볼 것을 권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깊은 명상 속에서 하는 단전호흡인 줄로만 알았기 때문에 난 손사래를 쳤다. 친구는 그것은 일종의 생활스포츠로 생각하라며, 내 손을 잡고 단전호흡 수련장엘 데리고 갔다. 그곳엔 수련생들이 어깨 넓이로 다리를 벌리고 무릎은 약간 굽힌 채 허리에 손을 얹고 천천히 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수련하고 있었다. 저렇게 쉽고 간단할 수가! 호흡으로 병도 고친다. 병이란 약과 수술로만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에게 그걸 믿으라 했다. 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단전(丹田)은 배꼽으로부터 3~4㎝ 아래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해부학으론 그 밭을 찾아내지 못했다. 서양의학은 철저히 실증적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해부해서 보이는 것만을 믿는다. 그러나 동양의학은 보이지 않는 걸 있는 것으로 믿고 체계를 세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기氣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그 효능 때문에 그 존재를 서양의학에서도 인정하고 활용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없는 것이라고 우겼던 게 무식한 거였다.

이미 인증된 것마저도 받아들여 나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거듭 태어남’의 어려움을 새삼 실감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믿는다고 떠들어도 비로소 내가 믿게 되었을 때, 바로 그때 나에게 사건이 되는 것이다. 인류 탄생 이후 인류의 수만큼이나 많은 연애사건이 있어 왔지만, 바로 내가 사랑에 눈떴을 때, 그것은 똑같은 연애사건의 반복이 아닌, 첫 사건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항상 인류의 수만큼 있어 왔고, 깨닫는 순간, 그 깨달음은 처음으로 나의 몫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모든 이는 똑같이 처음으로 깨닫는 것이다.

나는 주관(主觀)의 무서움에 놀랐다. 내가 죽어 없어진다고 한들 내일 태양은 뜰 것이고, 세상 그 무엇 하나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객관적 사실이 나를 허무에 빠지게 했었다. 하지만 내가 눈을 감자, 나에게 세상은 그 순간 없어지고 만다. 없어진 세상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그러자 나는 나의 무게가 이 우주만큼 무겁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죽으면 이 우주가 죽는 것이다. 나의 주관적 세상에서는.

나는 단전을 배우면서 내 몸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내 몸이 있어, 나에게 우주는 존재하는 것이니까. 하루 24시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도 호흡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모르고 살아왔다. 보통 숨쉬기는 가슴으로 얕게 한다. 단전호흡은 단전까지 숨을 들이쉬니 공기의 양이 많아 산소의 양도 많고, 단전에 있는 숨을 내쉬니 탄산가스도 많이 배출시켜, 우리 몸속의 탁한 기운을 많이 배설할 수 있다. 조용히 앉아 깊게 천천히 단전으로 숨을 마시면 마음의 안정을 찾아 너그러운 마음이 되고 정신이 통일되며 뱃심이 생겨 자신감이 생긴다. 얕은 호흡은 참을성이 없어 쉽게 화를 내기도 한다. 호흡과 동작을 함께 하면서 아주 천천히 목운동, 팔운동, 다리운동을 크게 정확하게 하면서 단전에 모은 기(氣)를 의식적으로 몸 구석구석 아픈 곳으로 보낸다. 살아오면서 이때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몸의 근육을 움직이는 것이다. 뼈는 우두둑 소리를 내며 바른 자세로 교정(矯正)이 되고, 굳어져 있던 근육은 통증을 가져오고 몸살이 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몸속의 막혀 있던 기혈(氣血)이 뚫려 순환되고 근육이 이완되어 유연하게 된다고 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이 몸속에 굳어져 있어 병을 일으킨다니, 아주 잘 알고 있는 내 몸인 줄 알았다가 스스로 무지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어느 세미나에 갔을 때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잔뜩 얻으려는 기대에 차 있는 내게 강사는 “오늘은 새로운 것을 더 받아들이기보다 지금까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해서 실생활에 활용해 보자”고 했다. 그렇다. 비록 자기가 소유하고 있다고 하나 그것을 쓰지 않는다면, 그것을 가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가진 것을 유용하게 쓰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데도 난 지금까지 허기진 채 새로운 것을 찾아 내 것으로 소유하려고만 했었다. 지식 하나를 더 얻으면 그만큼 정신의 부자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설픈 앎이란 나에게 독선과 아집만 키워줄 뿐인데도.

재능이나 물질도 저축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그 저축은 잘 쓰기 위한 것이다. 소유만 했을 뿐, 빛나게 쓰지 못한다면 막혀 있는 기혈처럼 병고를 일으켜 자신을 해롭게 한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살았을지라도 그의 삶은 그림자처럼 산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나는 젊었을 때 몸을 하찮게 생각했다. 지성과 정신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육체는 돌보지도 않았다. 차츰 건강이 나빠지자 육체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한 육체야말로 인간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기본인 것이다.

몸! 살았다는 것은, 몸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살아서 생각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 그것은 신이 인간생명에게 내린 축복이다. 숨쉬고 있으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하늘을 탓한다면 그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아픈 몸을 통해 나는 또 하나의 삶의 지혜를 깨닫게 되었다.

 

<수필공원>(현 에세이문학)으로 등단(92년).

수필집 『작은 행복은 가까이에』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