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천료>

 

이력서

 

                                                                                        이설우

 

지하철 창동역 부근 고가 밑에 야적장이 하나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구겨진 폐지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매일 꽤 많은 양이 쌓여 이름 그대로 야적장이 된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보도블록 옆 공간이어서 구청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당당하게 터를 잡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민들이 그곳으로 지나다니지 않는 것도 아닌데 폐지더미가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원래 그곳은 고가 밑이라 햇볕을 가릴 수 있고 바람이 잘 지나는 곳이어서 여름이면 노인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더위를 식히며 소일하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 노인들과 폐지가 섞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라보기도 민망스러운 풍경이었다. 노인들이 그저 멍청하게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폐지라도 모으며 일하는 삶을 가져보려는 그들의 생각이 그런 장소로 변하게 된 것 같았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면 폐지와 씨름을 하는 노인들을 한참씩 지켜본다. 노인 몇 명이 둘러앉아 분리작업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분리된 폐지를 손수레에 실어 어디론가 실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그곳에는 항상 헌 박스며 신문지며 혹은 잡다한 종이 조각들이 널려 있고, 또 폐지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쌓여가거나 커다란 박스에 가득 담겨지기도 했다. 그런 작업을 눈여겨보면 폐지들이 그저 덩어리져서 묶이는 것이 아니었다. 재활용할 수 있는 깨끗한 종이 박스는 깨끗한 것대로, 구겨지고 찢기고 재활용을 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대로, 때로는 생선 비린내가 나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야채 조각이 뒹굴기도 하는 것들은 쓰레기로 분류되는 것이었다. 마치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옥황상제가 각양각색의 일을 하던 사람들을 살아온 이력에 따라 구별하여 천당과 지옥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같은……. 옥황상제가 이승을 하직하고 오는 사람의 얼굴만 보고도 그가 살아온 역정을 다 꿰어보고 심판하듯이 그 노인들도 폐지의 상태를 보면서 그 폐지의 이력을 알아보는 듯했다. 그 폐지들을 상태별로 정리하여 쌓아놓은 것을 보면 아마도 그 상태에 따라 값도 다르게 매겨지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하여 노인들이 소일도 하고 용돈도 벌어 쓰곤 하는 모양인데, 그 광경을 보던 나는 폐지도 살아온 이력에 따라 마지막 삶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폐지조차도 등급이 먹여져서 분류된다는 것이 무슨 화두처럼 내 머리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처음 그들을 보면서 거의 노숙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신분도, 사는 곳도 알 수 없지만 그들 얼굴에는 깊게 패인 주름과 야윈 얼굴이며 남루하고 초췌한 행색으로 보아 생활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정리된 박스며 폐지들을 마디 굵은 손으로 묶을 때는 그들이 과거에 무슨 일에 열중했나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끔 폐지를 고르던 손을 멈추고 담배를 피워 무는 모습에서는 여유로움까지 느껴지기도 했으나 석양빛을 받아 길게 내뿜는 담배 연기 저편으로 보내는 시선에서는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회한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지금 저들의 나이라면 따뜻한 아랫목에서 한창 자라는 손자들의 재롱을 받으며 안락한 노후를 보내야 할 때다. 그런 나이에 찬바람을 맞아가며 폐지를 분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가 살아온 이력은 필시 기구한 사연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손이 없거나, 아니면 젊은 날을 허송하며 열심히 일하지 않았거나 방탕한 생활로 평온한 가정을 이끌어오지 못했을 게다. 그리하여 한없이 구겨진 저 폐지처럼 그의 마지막 생의 말미가 형편없이 구겨져 보이기도 했다.

내가 저들을 바라보며 느낌만으로 살아온 날들을 분류하려 하는 것처럼 누군가도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날 때마다 마음 속으로 내 10년 후 아니 20년 후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돌아보면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젊은 시절을 군에 몸담으면서 젊은 패기 하나로 꿈과 야망에 벅차 세상을 호령하던 날도 있었다. 그때는 누가 보아도 당당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제 빈주먹뿐인 오십 나이로 돌아와 한 줄 새로운 이력서를 써보려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내 모습은 그 패기가 지워진, 어깨가 굽어진 모습이다. 그리고 보면 언젠가는 사회 뒷전으로 물러나 저들과 같은 주름진 모습으로 파고다공원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나를 어느 쪽에 세울 것인지. 성공한 사람? 혹은 실패한 사람? 아니면 행복해 보이는 사람? 초라하고 외로운 사람…….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새삼 폐지 한 장 한 장을 소중하고 정성스레 다루는 노인들이 건강한 삶을 엮어가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비록 남루한 노숙자의 모습이지만 오늘을 살아 있는 모습으로 보듬어가려는 그들의 성실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쓸모없이 되어버린 헌 상자가 새로운 모습으로 꽃다울 수 있기를 바라는 그들의 마음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래야 내일을 위한 용기도 새로워질 것이 아니겠는가.

야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먼 훗날 내 생의 마지막 한 줄을 장식할 이력서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본명 이경우)

강원 원주 출생.

육군 중령으로 제대. <원주문학> 동인.

 

 

<천료 소감>

 

가을 밤비에 젖어가며 철책선을 순찰할 때, 하얗게 내려쌓인 눈길을 힘겹게 부대가 이동할 때, 눈과 비는 정말 우리의 작전임무 수행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로만 생각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봄날, 내 안에도 연둣빛 이파리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비로소 치악산 자락을 물고 도는 강변에서 소 풀을 뜯기며 키우던 문학의 꿈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오랫동안 너무나 단단하게 굳어버린 그 시간의 껍질을 벗겨내기 위해, 눈 떠 있는 동안 나는 문학만을 생각할 것이다.

 

이제 다하지 못한 시간들을 수필 속에 담으려 한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정말 좋은 한 편의 수필로 보답할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