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초회>

 

오빠의 독감

 

                                                                                         김민숙

 

신문을 접는다. 경기 침체가 마치 농민의 탓이기라도 하다는 듯한 논조가 속을 뒤틀리게 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한다지만 오빠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신호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웬일로 오늘은 집에서 전화를 다 받으세요?”

“좀 쉬려고.”

“감기 걸렸어요?”

“좀 그러네. 벌써 달포가 지났는데.”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어투였다. 항상 말하는 쪽은 나였고, 말수가 적은 오빠는 대답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오빠가 무언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고 왠지 나는 두려웠다. 지명을 넘긴 지도 여섯 해가 되었으니 한 번쯤 쉴 때도 되었다는 얘기를 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체구는 작지만 좀처럼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던 다부진 오빠였다. 온 나라가 닭, 오리, 메추리까지 독감에 휩싸여 술렁이니 오빠도 지금쯤은 감기를 앓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말은 쉽게 했지만 가슴이 아리다.

대학의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유럽에서 자동화 기술을 익히고 돌아온 오빠는 우리를 설레게 했다. 선진화 기술로 승부하겠다고 맨손을 걷어붙였다. 그가 계획한 청사진을 담은 슬라이드 영상은 우리의 가슴을 부풀게 했다. 자동화된 농법은 좁은 땅을 가진 나라에서 최소한의 공간에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여 국제적으로도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농후계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상당했다. 담당 공무원들이 당신 같은 젊은 공학도가 있어 이 나라를 살릴 것이라고 오빠를 추켜세울 때는 오빠가 거인이 된 듯했다.

가끔 오빠의 농장을 갈 때는 소풍날만큼이나 즐거웠다. 신축된 계사에서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생산 라인을 바라보는 것은 뿌듯한 일이었다. 제 시간에 맞춰 물과 사료가 차례로 케이지 속의 닭들에게 분배되었다. 생산된 달걀들이 벨트를 타고 돌아 저장소까지 옮겨져 무게에 따라 선별되어 포장되었다. 계분 역시 벨트로 창고까지 옮겨지고 자동으로 건조되어 나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케이지 속의 닭들이 진정 생물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농장은 축산대학생들의 실습 현장이 되었고, 늘 많은 사람들로 붐벼 활기찼다. 능력만큼이나 오빠의 양계농장은 비대해지고 1차 산업도 기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투자가 늘어날수록 생산량에 가속도가 붙었다.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생산을 더욱 늘려야 한다며 오빠는 산란계에서 육계와 종계로 범위를 넓혀나갔다. 농장에서 건설 현장으로 바뀌는지 갈 때마다 새로운 시설들이 들어서고 때로는 건설 인부의 수가 농장 인부의 수를 능가했다.

가파른 성장이 약간의 두려움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문도 파다했고, 빚이 너무 많다는 걱정스런 풍문도 들렸다. 저리(低利)로 농어민을 위해 풀린 막대한 정책자금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무능의 반증이라는 것이 오빠의 변(辯)이었다.

독감이라는 것이 사람만의 전유물은 아닌 모양이다. 처음에는 남의 일이거니 했다. 대수로운 병명病名 같지도 않았다. 동남아에 비상이고 홍콩과 중국, 미국까지 비상이라니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세계화의 대열에 합류했음이 틀림없다.

텔레비전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걸리면 치사율 95% 이상이며 변형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될 수도 있음을 주지시킨다. 화생방전이라도 하는지 완전무장한 살殺 처리 반원들의 작업 모습이 매시간 방영된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익혀서 먹으면 괜찮다는 관계 종사자를 위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멀쩡한 닭들이 구덩이로 들어간다. 자식처럼 기른 생명들이 늘어난 빚만큼 포대에 쌓여 구덩이 속으로 처박힌다. 오빠의 노력과 능력이 구덩이 속으로 함께 묻혀간다. 썩은 냄새가 땅 속을 파고들고 다시 가슴 속 깊이 파고들어 치유할 수 없는 통증이 된다.

쉬어야 하리. 오빠도 한 번쯤은 쉬고 싶을지도 모른다. 대낮처럼 불 켜진 밤을 낮으로 속아서 알을 낳고, 날갯죽지를 퍼덕여보지도 못한 자동화 시설 속의 닭과 오리도 한 번쯤 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요술피리를 불어주면 그들도 따라가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구덩이 속으로 나들이 가듯 걸어 들어가고 말았다.

모처럼 텔레비전 화면이 밝다. 네 차례의 시도 끝에 한국과 칠레 간 자유무역협정 국회 비준안이 통과되었다. 국회의장이 두드리는 의사봉 소리가 경쾌하다. 여당대표와 거대 야당대표의 환한 표정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온 나라가 승전보를 받은 듯 춤춘다. ‘한국산 차車, 휴대폰 무관세’라는 신문 머리기사가 대문짝만하다. 남미와의 수출길이 열릴 것이라 한다.

힘차게 돌아가는 공장의 전자제품 생산 라인과 선적을 앞둔 자동차들이 번들거린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니 수출이 잘 되어야 모두가 산단다.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斥和碑가 우리에게 얼마나 값비싼 희생을 요구했는지를 은근히 상기시킨다.

비교우위의 논리를 오빠라고 모를 리가 없다. 지난 해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를 자동차로 달리면서 종일을 달려가도 끝이 나타나지 않던 푸른 들판을 보고 오빠에게 메일을 보냈다.

‘불모지였던 사막조차도 인공 수로를 이용한 거대한 옥토로 바뀐 현장을 지나면서 공포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오빠 생각에 목이 멥니다.’

그때 오빠는 ‘그래서 내 땅을 버리고 캘리포니아에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야 하겠느냐?’는 답신을 보내왔다.

국회 밖에서는 분노한 농민들이 죄 없는 전경을 걷어차고 뒤편에서는 정치인의 모형(模型) 화형식이 있는지 군데군데 검은 연기가 치솟는다. 조간신문엔 ‘정부 올 예산 1조 575억 농촌 지원’이라는 새 당근이 가득하다.

오빠는 아직도 독감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