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이 그리울 때

 

                                                                                          김시헌

한때 나는 경북 의성읍에서 5년의 세월을 보낸 일이 있다. 대구와 안동의 중간에 있는 의성은 나에게 고향의 감정을 주기도 하고 객지의 감정을 주기도 했다. 나는 안동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른 것 다 두고 여학교의 뒷산에 올랐다. 산중턱에서 발을 멈추고 눈을 사방으로 돌리면 앞에 낙타 등 같은 구봉산이 보이고, 그 아래에 수량은 적지만 강물이 흐르고 그 건너에 의성읍이 행복하게 자리잡고 있다. 고향 같은 정취에 취하다가 다시 발을 옮기면 토끼 길 같은 산길이 이어지면서 산정에 이른다. 그곳에는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벗이 하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밝고 가장 원만하고 가장 기운찬 아침 해이다. 한 번도 나에게 우울한 표정을 보인 일이 없는 아침 해는 나에게 영원한 광명이었다.

“오, 벗이여!” 하고 외쳐 보기도 하고, 팔을 크게 벌려 끌어 안아 보기도 한다. 그러면 더욱 밝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면서 충만과 곽막과 위대를 던져준다. 그때 나와 해는 하나가 된다. 태양같이 크게 살리라. 태양같이 꽉찬 마음으로 살리라 하는 다짐이 기운으로 교환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10년 전부터 서울 사람이 되고 있다. 아침에 올림픽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면 그곳에도 동쪽 하늘에 아침 해가 솟아오른다. 의성의 여학교 뒷산에서 보던 그 해가 여기까지 따라와 주었다는 우정을 느낄 때가 있다.

직장에는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정을 깊게 나누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나는 의성에서 깨달았다.

아침 직원회가 끝나면 나의 발길은 어느덧 서무실로 옮겨간다. 그곳에 나를 항상 반겨주는 동료 한 사람이 있다. 세무과장인 K씨이다. 늘씬한 키에 구긴 데 없는 시원한 표정인데 한문(漢文)의 대가이다. 나무를 보면 나무와 관계되는 명시(名詩)를 줄줄 외우고, 가을 하늘이 파라면 하늘에 대한 명시가 나온다. 그리하여 어느 시대의 아무개는 어떤 일로 이 시를 지었단다 하고 해설을 붙인다. 문득 풍자와 해학이 나오면 듣고 있는 옆사람의 가슴을 틔워준다.

“말씀 낮추십시오.”

그는 때때로 불쑥 이런 말을 한다. 연령에 10년쯤 차이가 있는 그것뿐인데 그는 동양적인 겸양을 갖추고 있었다.

어느 해 봄, 나는 발령을 받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새 임지까지 따라가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극구 사양했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듣지 않고 기어이 동행이 되었다. 버스로 대구에 이르고 다시 차를 타고 새 임지로 이르렀을 때 외로운 곳에 따라와 준 그의 인정이 새삼 소중해졌다.

점심을 같이 먹고 길거리에 나가 그를 보내는 차를 기다리면서 나는 또 다른 감정을 체험하고 있었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 더 만날 수 없는 사람처럼 떨어지기가 싫은 마음,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감정이 그와 나를 묶어 매고 있었다.

지금은 그와 나 사이에 천 리에 가까운 거리가 가로놓여 있다. 멀어질수록 정은 더 그리워진다고 했던가. 의성의 하늘 아래에 있는 그의 생활과 얼굴이 궁금할 때가 가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