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일기

 

                                                                                               박범수

시카고 시내에서 차로 이삼십 분 거리에 딸 내외가 새 집을 마련하였다. 가족행사도 있고 새 집 마련을 축하도 해 줄 겸 이 집에 짐을 풀고 머문 지 이십 일이 되어간다. 삼월 중순경 도착할 때만 해도 겨울 색이 완연하여 현관 앞 꽃밭이 폐허 같더니 어느 새 수선화 싹이 길게 올라와 노란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고 있다. 새벽에 오리나 기러기가 와서 뜯어먹었는지 싹 자리가 뭉개져 잘려나간 것도 있다.

애비인 나는 인정치 않지만 제 딴에는 명색이 디자이너라고 자처하는 막내딸도 시카고 시내에 살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두세 번 이곳에 와 봤으나 시카고의 별명(Windy city)에 맞게 바람이 많고 날씨가 고르지 못하여 정이 가는 도시가 아니다. 비행장에서 지문까지 찍어가며 지루하게 세워두는 깐깐한 입국 심사에서도 방문자의 감정은 편안치 않다. 산책 겸 몇 번 주변을 걸었으나 거리에는 바쁘게 달리는 자동차만 있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 마치 기계들 속에서 외톨이가 된 느낌이다. 식당이나 마켓에 들어가야 사람들이 보인다.

이렇게 낯설고 인정머리 없어 보이는 곳인데도 새나 짐승들에 대한 배려가 대단하여 이곳 사람들의 인심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산토끼가 가정집 주변에서 빈둥거리고, 오리나 기러기는 사람이 가까이 가면 두어 발짝 거리를 둘 뿐 놀라는 기색이 없어 마치 우리나라의 집토끼나 집오리를 보는 것 같다. 기러기가 도로를 가로질러 뒤뚱뒤뚱 건너가면 달리던 자동차도 기러기가 다 지나갈 때까지 달리는 것을 참아준다. 다람쥐들도 마치 집에서 키우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특히 아침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서로 목청을 뽐내기라도 하듯이 지저귄다. 봄이 되어 짝을 찾느라고 노래에 더 열을 올리는지도 모르겠다. 저녁 무렵에는 비둘기일 것으로 여겨지는 새가 한국의 비둘기와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더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어, 우리나라 것과 유전인자가 아주 다른 것인가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언젠가 영국에서 사람의 손에 얹은 먹이를 먹으러 날아오는 참새를 보고 한국에 돌아와 참새와 친해 보려고 애써 본 적이 있다. 한국의 참새는 어찌나 의심이 많던지 먹이를 멀리 던져주어도 결코 날아와 먹으려 들지 않았다. 인내를 갖고 삼 개월쯤 계속하다가 너무 진전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한국의 참새는 아예 영국의 것과 유전인자가 다를지도 모른다. 하기야 의심이 적은 참새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진작 참새구이가 되었을 것이 아닌가.

일설에 의하면 유전인자란 같은 행동을 삼천만 번쯤 되풀이하면 형성되는 성격 요인이란다. 한국인이 김치를 좋아하는 인자는 조상 대대로 삼천만 번 이상 김치를 즐겼기 때문이며, 만일 김치의 입맛을 잃어버리려고 작정하면 앞으로 500년 가량 김치를 입에 대지 않는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누가 500년간 실험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북에 그 조상의 뿌리를 가진 내 외손자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냉면을 즐기는 것을 보고 그 이론에 신뢰가 가기도 한다.

뉴욕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미국의 개는 서로 으르렁거리고 싸우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한 번에 열 마리 정도를 함께 데리고 다녀도 개들이 싸우는 것 때문에 불편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얼른 사람 쪽으로 생각을 옮겨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의 성격을 비교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미국 사람들은 대개 처음 만나는 사람이면 얼굴에 웃음기를 보이거나 “하이”, “헬로우” 하며 손을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오랜 사귐이 없으면 웃거나 손을 들어 인사하는 행위는 조롱으로 오해받을 지경이다. 승강기 안에서도 미국에서는 먼저 탄 사람이 다음에 타는 사람이 가는 층을 부르는 대로 눌러준다. 7층에 간다고 하니 “하이, 럭키 세븐” 하면서 7층을 눌러주던 일이 생각난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 뒤에 타는 분에게 서비스를 하려고 몇 층에 가시냐고 했더니, 대답도 않고 자기 손으로 가는 층을 눌러서 무안을 당한 적이 있다.

나라마다 고유한 문화가 있고, 한국인에게는 쉽게 보이지 않는 깊은 속이 있음을 안다. 더구나 한두 가지 일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미국인을 추켜세울 일은 아닌 줄 알지만, ‘삼천만 번 되풀이해서 형성되는 유전인자’설을 계기로 한국인들의 기초적 생활태도도 바꿔볼 생각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느껴진다.

 

서울교대 명예교수.

저서 『쇼펜하워의 생애와 사상』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