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의 생(生)

 

                                                                                                우희종

오늘은 곡우(穀雨)다. 차밭에서는 신차를 마련하기에 바쁠 때이고, 흩날리는 벚꽃 잎은 눈 내리는 봄을 만들어준다. 흐드러지게 핀 목련꽃도 벌써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른한 오후, 마침 소년원에 있었던 경자의 전화를 받았다. 퇴원해서 한동안 편지를 보내더니 요즘 들어 연락이 없어 걱정했는데, 지금은 부산에서 미장원 일을 하며 좋은 남자친구도 생겼단다. 소년원에 있을 당시 대인관계도 어려웠고, 더욱이 아버님이 돌아가는 상황도 있어서 여러모로 걱정되던 경자다. 전화기로 들리는 목소리는 무척 안정되어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안심하게 만든다.

꽃은 때 되면 피고,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삶 속에서 자신이 지나온 세월의 무게를 하나하나 등에 업고 살아간다. 이렇듯 교정 가득히 채운 꽃들도 조만간 곧 질 것을 생각하면 누군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단 한 번뿐인 삶이며, 결코 다시 돌아가거나 반복할 수도 없는 데에 비극이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비록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옛말도 있긴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훌륭히 크는 아이들도 있고, 좋은 환경 속에 자라서도 주위에 폐만 끼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힘든 과거 속에서 어렵게 자랐음에도 훌륭히 될 수 있다는 것은 마치 콩이 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팥이 나왔기에 그것은 그가 지금의 자신의 삶으로 그의 과거를 바꾼 셈이다.

사람은 단순한 동식물과 달리 과거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과거의 삶이 현재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스스로의 삶에 대한 고민을 통해 새롭게 달라진 것이 지금의 삶이라면 현재가 단순히 과거만으로 이루어진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결국 지금의 삶이 과거의 모습으로부터 예상할 수 없도록 변화했다면 그는 자신의 과거를 변화시킨 것이며 동시에 미래의 모습도 바꿔버린 것이 된다.

자신의 선택으로서 지금의 삶이 과거를 변형시키고 그래서 지금의 삶이 변화하고, 이 변화된 지금의 삶이 미래에 영향을 미치면서 동시에 또다시 변화된 자신의 과거를 새삼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이란 결코 과거, 현재, 미래의 단선적(單線的)인 것이 아니라 매우 능동적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얽혀 변화하고 동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결국 나의 삶은 지극히 중층적이며 나는 지금 여기에서 여러 다른 생을 동시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끊임없이 변화하여 가는 것이 삶의 모습이라면 나의 지금의 삶은 내가 취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삶 속에서 어떠한 나의 선택과 경로를 거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혹시 나는 삶은 오직 한 번뿐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것으로 받아들여 체념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가 있고, 바람이 있으며, 따라서 나를 과거 현재 미래의 틀 안에 갇히지 않게 하는 것은 바로 너와 나의 서원(誓願)이 아닐까 한다.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경자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금 창문 밖에서 흩날리고 있는 꽃잎 속에는 머언 옛날 황산벌에서, 광한루에서 그리고 총성이 난무하던 철마고지와 민중의 함성 속에 흩날리던 광주의 꽃잎이 동시에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음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경자의 삶이 그저 지난 시간의 연장으로서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의지로 인해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변화하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며, 또한 머언 옛날부터 내려온 나의 여러 삶이 그녀와 더불어 바람에 흩날리며 내리는 꽃눈(花雪) 속에 어우러져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것 역시 인연 속의 또 다른 나의 생(生)이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 교수.

조계종 생명윤리 연구위원회 위원. 법무부 보호 소년 지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