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욘의 미소

 

                                                                                              김국자

캄보디아의 씨엠레아프(Siem Reap), 시티 로열 호텔 앞에서 안내원의 말이 “중국인은 떼로 몰려가고, 일본인은 줄을 맞추어가며, 한국인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흩어져서 다닌다”며 보물찾기 현장으로 떠나자고 했다. 보물찾기 현장이 바로 앙코르의 유적지이다.

앙코르 시대는 9~15세기, 크메르오아조의 황금기로 광대한 영토와 많은 역사 유적을 남기고 사라졌던 왕국이다. 이 사라진 왕국을 1860년 프랑스의 여행가 앙리무오가 정글 속에서 찾아냈다. 그리고 1908년부터 정글을 제거하여 역사의 유적으로 다시 태어나서 세계문화제로까지 인정받은 것이다.

일행이 처음 찾아간 곳이 앙코르 톰(Angkor Tom)이다. 톰은 도시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 변이 약 3km인 정사각형의 성곽도시로 자야바르만(Jayavarman) 7세에 의해 12세기 말 조성된 불교 사원이다. 이 사원의 성벽 높이가 8m 정도인데, 그 둘레를 폭 100m의 해자로 싸고 그곳에 악어를 키웠다고 한다. 그 일대에는 승려, 관료, 군인들이 약 100만 명 정도 살았다고 하니 규모가 대단했던 것이다.

앙코르 톰에는 5개의  문이 있는데 우리는 남문 쪽으로 갔다. 울창한 숲을 지나 남문을 바라보니 문 위로 4개의 얼굴을 가진 불상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은은한 미소로 반기었다.

해자를 건너는 다리 양쪽으로 108개의 신들이 도열되어, 오른쪽으로는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54개의 악신, 왼쪽으로는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신이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안내의 말로는 이 108개의 조각이 바로 백팔번뇌를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남문을 지나 숲길로 1.5km 걸어가면 거대하고 아름다운 불상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바이욘(The Bayon) 사원이었다. 대승불교의 사원으로 12세기 말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서 건립되었고, 앙코르 톰 중앙에 위치하며 메루 산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사원 안에는 54개의 탑이 있다. 그 탑들의 사면에는 불상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었다. 초기에는 이 얼굴이 힌두교의 창조신인 브라마의 얼굴이라고 믿었으나 후에는 설립자인 7세 자신의 얼굴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216개의 얼굴이 높은 곳에서 각각의 묘한 표정과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거대한 불상들의 미소를 보는 순간 숨이 탁 막히는 것 같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어 찬찬히 올려다보니 참 신비스럽게 보였다.

새벽 동트면서 받기 시작한 빛의 변화에 따라 달리 보이는 미소를 보기 위해서 화가들은 몇날 며칠을 그곳에서 애를 쓴다는 것이다.

나는 화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충남 서산에서 본 삼존마애불의 미소, ‘백제의 미소’를 떠올려보았다. 이 본존불의 미소는 밝고 쾌활한 인간의 미소였다. 부처의 웃음 중에서 가장 인간의 웃음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풍만하면서도 차분한 얼굴에 번지는 순수하면서도 단순하고 원만한 한국인의 미소였다. 그런데 이 사원의 불상들의 미소는 말로, 글로 표현하기 힘든 인간의 생로병사가 그 미소 속에 응집되어 있는 듯 보였다.

시름을 감추고 슬픔을 머금은 듯 지그시 감은 눈, 꾹 다문 입술에서 세상의 호화스러움과 번뇌를 쓸어안고 조용히 묵상하면서 잠깐 피었다 사라질 듯한 미소. 이렇게 수천 년을 미소지으며 불상들은 그곳에 있었다. 아니 정글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사암이 풍화작용과 더불어 역사의 혼동 속에서 이루어낸 흔적이 퇴색된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로 장엄한 아름다움을 이룬 2백여 개의 불상들이 사는 신들의 사원에서 한참을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안내자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 다시 사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특히 이 사원의 벽면에 새겨진 1,200m나 되는 벽화는 불가사의한 종교의 힘과 강력한 왕권이 이루어낸 찬란한 불교문화인 것이다.

안쪽 본체의 벽에는 신화적 장면들이 부조되어 있었다. 특히 압사라 춤의 벽화는 캄보디아 문명을 대표하는 벽화로 맨발의 유연한 포즈와 오묘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나뭇잎새와 꽃무늬의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외부 복도 벽면에는 크메르 인의 일상과 전쟁사의 기록이었다. 크메르 장수의 전투 장면, 많은 숫자의 일산(파라솔)을 받친 자야바르만 7세가 코끼리를 타고 있고, 왕녀들의 말을 타고 있는 장면, 야자수를 넘나드는 원숭이의 그림, 중국 상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래서 이 벽화를 자야바르만 7세의 자서전이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사진을 찍어 현상해 보니 내가 눈으로 직접 본 벽화보다 더 선명하게 사진으로 찍혀 나왔다. 그 섬세한 아름다움이 그저 놀랍다. 불가사의한 종교의 힘과 강력한 왕권이 이렇게 찬란한 역사를 이룬 점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인류 역사의 유적지를 돌아볼 때마다 인간 능력의 한계에 불가사의한 점을 생각해 보게 된다. 특히 2백여 개의 불상의 입술에 응축된 미소는 인간이 이루어낸 심오한 불교문화와 역사가 그 속에 깃들여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