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탈쟁이

 

                                                                                          정부영

나는 환절기를 싫어하는 편이다. 그 절기는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의 접경지대, 중간층이다. 절기의 골짜기 같다고나 할까, 이어주는 다리라고나 할까. 색깔로 말하면 혼합색이고 파스텔 톤인데 내겐 부드럽고 환하지가 않고 탁하고 가라앉은 색깔의 절기다. 양쪽을 포개놓은 계절의 모호함으로 나의 계절병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의 변환에 쉽게 적응을 못하고 맥을 못 추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알레르기 비염이 더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코가 간질거리는 신호와 함께 재채기가 줄서서 나오고 곧이어 눈물과 콧물로 강을 이룬다. 그런 통과의례를 치르고 나서 몽롱한 의식이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고통 같지 않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니 당해 보지 않으면 그 고충을 모를 것이다. 언제였더라, 30대 중반부터 이런 의식을 치르기 시작했다. 덜하기도 하고 심해지기도 하면서.

수면으로부터 의식상태로 깨어나는 전환이 왜 이렇게 뚜렷이 나타날까. 잠과 의식을 갈라놓는 완충의 선이 있는 것일까. 그 선을 넘는 의례행사가 까탈스럽고 야단스럽기도 하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인데, 손바닥을 뒤집듯이 쉬운 줄만 알았더니 하나의 장벽을 넘는 것같이 힘들 때가 있으니 우습기도 하다. 빛과 어둠, 의식과 무의식, 잠과 깨어남이 하나의 선상에 있을 텐데 말이다. 손등과 손바닥으로 이루어진 손처럼 온전한 ‘하나’일 텐데 무엇으로 획을 긋는단 말인가. 괘씸하기까지 하다.

통과의례는 다른 얼굴로도 나타난다. 오감으로 치러진다.

봄철만 되면 눈이 부시다. 아지랑이같이 아물아물할 때가 있다. 처음에는 햇살이 쏟아지고 꽃이나 나무 순, 초록 잎이 생동을 해서 볼거리가 많아 일어나는 현상인 줄 알았다. 봄날의 나른함이 겹쳐 눈동자가 생기를 잃은 줄 알았다. 그러나 꽃가루 같은 미세가루, 먼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원인에 의한 나의 과민반응이었다. 한번씩 겁을 주고 찬란한 봄을 맞게 하는 짓궂은 장난이었다. 겉으론 둔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내면의 무엇이 까탈스러워 예민한 촉각을 곤두서게 하는 걸까.

내 속에 있는 까탈쟁이는 온도 변화도 싫어한다. 시원한 맥주 한 잔도, 얼음 넣은 냉커피도 어느 때는 거부해 버린다. 그렇다고 체온인 36.5도 가까운 미적지근한 물만 마시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장소도 가리지 못하고 재채기를 하니 나의 실수인지 불찰인지 분간이 안 간다.

입추가 지나고 초가을로 접어들면 소슬바람이 산들산들 불어 온몸을 간지럽힌다. 그 바람에는 빛깔도 있고 향기도 나는 것 같다. 열기를 잠재우는 녹두색 같기도, 마음을 안정시키는 연한 베이지색 같기도 한 바람이 불어오면, 녹차 향기나 갈잎 같은 냄새가 덩달아 묻어온다. 이럴 때 분위기를 못 맞추는 푼수가 내 안에 있다. 그렇지만 내 의도는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다. 웅크리고 있는 까탈스러운 인자, 방어벽이 없는 바보스런 항원 때문이라고 민망스레 밝히곤 한다.

몇 개의 얼굴을 가진 까탈쟁이는 오래 전부터 숨어 있었다. 중학교 때인가, 두드러기가 심하게 솟곤 했다. 등푸른 생선이 몸에는 그지없이 좋은데 이것만 먹으면 움실움실하고 끝내는 실뱀 같은 두드러기가 못살게 굴었다. 옆에서 보는 사람까지 안쓰럽게 했다.

어느 날 외할머니는 나를 부엌 구석으로 데려가서 모두 벗긴 채 어디서 구했는지 지저분한 몽당 빗자루를 가지고 온몸을 쓸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까탈쟁이가 몽달귀신을 보고 무서워 숨죽이기를 바라는 의식을 치른 것이다. 오히려 내가 더 무섭고 황당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잠잠했던 적이 있었다. 어른들 말씀이 음양이 합해지면 체질이 바뀔 수도 있다는 얘기가 위로의 말만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말 우연하게 두드러기는 사라져버렸다. 그동안 새 생명의 잉태와 탄생의 가족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생명의 보존이라는 숭고하고 거룩한 행사 앞에서 고개를 감히 쳐들지 못하고 백기를 들고 만 것이다. 과연 생명의 탄생은 경이롭고 위대해 보였다.

수유의 시절이 다 지나고 몇 년 후 신체의 저항력이 약해졌을 때, 그것은 비염이라는 도깨비 모습으로 고개를 들었다. 피부라는 촉각에서 코라는 후각 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감각의 길로만 돌아다닌다. 차라리 시작과 끝이 화끈했으면 낫겠다. 병 같지도 않은 지지부진한 행태가 마음에 안 든다.

알레르기는 현대병이 아닌가 싶다. 대기가 오염되고 토양이 산성화되며 식생활의 변이가 체질적으로 예민한 사람에게 반응하나 보다. 언젠가 등에다 항원 검사를 했더니, 잘 듣지도 보지도 못한 꽃가루가 원인으로 나왔는데 그것은 주위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생소한 물질이었다. 사는 게 복잡한 만큼 원인도 다양하니 우리가 풀어가야 할 수수께끼이지 않은가.

이제는 까탈쟁이와 화해의 손을 잡고 더불어 지내련다. 그러려니 내 안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짜증을 덜 내야 되겠다. 수용하는 자세로 바꾸는 수밖에 없고, 나이가 들면서 매사에 인내와 체념의 버릇을 조금씩 익혔기 때문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오겠지 하면서.

혼입해 오는 공기 속 바이러스와 같이 뒤섞여 지내야 하듯이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과도 맞받아들이며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는 무엇에나 짜증이나 예민한 반응으로 살아가기보다 수용하면서 너그럽게 베푸는 나날로 채워가야 할 것 같다. 무엇이든지 자주, 오래 일어나면 그 나름의 적응방법과 체득이 생기듯이 세상사에는 안 좋은 점이라도 다 버릴 것만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핸드백 속에는 휴지와 거울이 언제나 들어 있다. 빼놓을 수 없는 소지품 중의 하나다. 내게는 환절기를 말해 주는 신호탄이 있어 계절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고 지낸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