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들어간다

 

                                                                                            이상규

얼마 전에 갑작스런 심한 복통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복통에 물 한 방울 넘길 수 없고, 그렇다고 변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입원하고 보니 장폐색증이라는 진단이 나고, 결국 긴급 수술을 받게 되었다.

장폐색증이 된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장이 막혔으니 먹은 것이 내려갈 수 없고, 내려가지 못하니 음식물이 들어가지 못할 것은 뻔한 노릇이다. 밤중에 긴급 수술을 받기 위해서 수술실로 실려가는 침대에 누워 생각하니, 사람의 육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의지할 만한 가치 있는 것이 못 되는지를 실감할 수 있게 하였다.

사람의 형상인 육신을 지탱하고 기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음식을 섭취하고 공기를 호흡해야 한다는 것은 어린애들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그 소중한 음식을 섭취하면 반드시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 또 음식을 받아들인다. 맛이 있는 좋은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내보내지 않고 속에 담아두고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만일 속에 담아두고 있다면 병이 되고 새로운 음식이 들어가지 않는다. 호흡도 마찬가지이다. 살기 위해서는 호흡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 분이나 한 시간 분을 한꺼번에 들이킬 수 없음은 물론, 들숨을 쉬면 반드시 날숨을 쉬어 내보내야 한다. 날숨을 쉰 다음에야 다시 들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평범한 진리이다. 마치 바닷가의 파도와도 같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탐하는 재물도 마찬가지이다. 재물이 귀한 것이라고 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으기만 하고, 적절하고 값 있는 쓰임이 따르지 않는다면 곧 수전노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남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 결국은 재물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게 된다. 사람의 육신이 순환을 기본으로 하는데, 사람이 만들어낸 재물인들 크게 다를 이가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은 서로 어울려 순조로운 순환을 전제로 하여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순조로운 순환의 리듬이 깨지면 탈이 나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사실은 적당히 부족하다는 것처럼 간편한 것이 없다.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서 물질적인 편의를 앞세우는 오늘날, 없으면 우선은 불편함을 느끼게 되겠지만, 많다는 것 자체가 짐이 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있으면 관리해야 되는 번거로움이 있음은 물론, 없어질까 걱정이요, 더 늘리고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욕구에 시달려야 하며, 남과 견주어 괜히 질시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적으면 그만큼 생활이 간소하고 잡일이 없어지며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쓸 필요가 없어진다. 그렇기에 선현들은 이구동성으로 소욕지족少欲知足을 강조했던 것 같다.

그러니 들어오면 반드시 비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채우기만 하고 비우지 않으면 더 들어올 수도 없고, 결국은 파국을 맞게 된다. 마치 밀려온 파도가 빠지지 않고 계속 밀려오기만 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난데없는 입원 수술이 안겨준 산 교훈이다.

 

변호사. 행정법학자. 불경학자. 환태평양변호사협회(PBA) 회장.

저서 『행정법』, 『환경법론』, 『부처의 가르침』(아함경전), 『금강경의 세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