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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용서

 

                                                                                            백시종

까마득한 이야기입니다. 열두 살,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지금부터 꼭 사십팔 년 전 일이로군요. 그때 나는 기차의 마지막 역이 있는 항구 도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귀환민이 많이 사는 역전이었습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도시 학교 치고는 운동장이 넓었습니다. 원래 자기네 자녀들을 수용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공들여 지은 학교입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일본인들이 쫓겨 간 뒤인데도, 목수를 겸한 수위가 가족과 함께 학교 구내에 살고 있었습니다. 늘 망치와 못주머니를 차고 사는 아저씨는 키가 크고 깡마른 사람이 다 그렇듯, 아주 신경질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한번도 얼굴을 펴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친한 친구 셋과 함께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돌팔매질을 잘못하여 교장실 유리창을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쨍그렁’ 소리와 함께 “누구얏!”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바로 그 아저씨였습니다. 모두가 고무신을 벗어 양손에 쥐고 다리야 날 살려라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재수에 옴이 붙었는지, 아니면 그 중 행동거지가 느렸는지 나는 미처 벗어들 겨를 없이 달리다가 그만 고무신이 벗겨지고 말았고, 신발 없이 집에 들어갔다가 무슨 경을 맞을지 몰랐으므로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친구놈들은 벌써 교문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어제도 두 장이나 깨고 도망쳤는데, 바로 네놈이었구나!”

목수아저씨는 드디어 범인을 잡았다는 듯이 의기양양했습니다. 나는 오늘이 첨이라고 우겼고, 또 유리창을 깨트린 것은 내가 아니고 친구 민석이라고 울면서 고자질했지만, 그는 일단 그렇게 추정한 자기 생각을 바꿀 기미가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내일 아침에 유리창 세 장 값을 물어준다는 확약을 받고 나는 어둑어둑해졌을 때 풀려났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리를 깬 민석이와 놀이를 같이 한 장근이, 용발이와 의논하여 유리 값을 4등분하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해결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장근이나 용발이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유리를 직접 깨트린 민석이까지도 “네가 안 잡혔으면 유리 값을 물어줄 이유가 없는데, 왜 잡혀가지고 말썽이냐. 그건 잡힌 네가 잘못이니까 혼자 해결해라. 우리는 모른다”고 잡아 땠습니다.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습니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나는 무섭게 대들었지만 아무도 내 주장에 귀 기울이는 녀석은 없었습니다. 더구나 세 놈 다 같은 입장이었으므로 내가 항변하면 할수록 더욱 똘똘 뭉쳤고, 마침내 나는 외톨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를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등교가 무서웠습니다. 목수아저씨가 교문을 지켜 섰다가 내 멱살을 치켜들곤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손이 발이 되게 빌어 두 달의 기회를 얻었고, 용돈과 사친회비 낼 돈을 합쳐도 모자라 어머니 지갑을 몰래 뒤지는 도둑질까지 감행, 억울한 유리창 값을 간신히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앙당 물었습니다. 내 친구 세 놈과는 절대로 상대하지 않겠다고. 실제로 나는 녀석들을 가능한 멀리 했습니다. 아니, 나는 ‘감기나 콱 걸려라. 넘어져서 무릎팍이나 까져라’ 식으로 놈들을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공교롭게도 48년이 지난 지금 세 친구들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한 친구는 암으로 죽고, 한 친구는 교통사고로 죽고, 또 한 친구는 젊은날 군대에서 사고로 운명을 달리 했습니다.

나는 한때 내가 그들을 저주한 탓으로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 잠을 이루지 못하고 회한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또 나 역시 세 친구를 진즉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나는 내 아들이나 손주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작은 이익을 위해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은 절대로 삼가라. 어쩌면 큰 벌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소설가. 1967년 동아일보,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

<현대문학> 소설 추천(김동리 선)으로 문단 데뷔. 오수영문학상, 채만식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이과수』, 『서랍 속의 반란』, 『아버지 어깨』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