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쇼처럼

 

                                                                                         조한숙

바쇼처럼 배낭 하나 짊어지고 세상 구경 한 번 나서고 싶다.

매화도 목련도 만개한 하늘을 우러르며 꽃그늘 속으로 숨어버릴 게다.

방랑미학의 실천자, 마츠오 바쇼(芭蕉:1644~1694)는 인생을 여행에 비유했다. 그에게 인생은 곧 여행이었고 여행이 곧 그의 인생이었다.

‘해와 달은 영원한 여행객이고, 오고 가는 해(年) 또한 나그네이다…’라고 했다.

우리의 삶을 여행에 비유하며 그 덧없음과 허무함을 노래한 작가가 어디 바쇼뿐이랴. 이 세상 모든 시인 묵객들이 인생의 무상을 읊었을 것이다.

이백도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이미 읊었다.

‘대저, 천지는 만물이 쉬어가는 나그네의 집이요, 세월은 영겁을 두고 흘러가는 길손’이라고. 바쇼가 이백과 두보를 좋아했고, 노자, 장자 등 중국 문학을 섭렵했으니 그들의 사상에서 영향 받지 않았겠는가.

일본의 고전 시가, 하이쿠를 완성하여 시성(詩聖)으로 칭송받는 시인, 바쇼는 무소유를 지향하며 은둔과 여행으로 살아갔다. 삿갓 하나, 봇짐 하나,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고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어느 오두막에서 잠시 머물고 다시 길을 떠났다는 방랑시인이다.

 

‘한 해 저무네

 머리에는 삿갓 쓰고

 짚신을 신으면서’ ─ 바쇼

‘여행용 바지의 헤진 곳을 깁고, 삿갓 끈을 새로 달고, 무릎 아래 경혈에 뜸을 뜨는 등 여행 채비를 하고 있자니, 마음은 어느새 예로부터 아름답기로 이름난 마츠시마 섬(松島)의 보름달에 먼저 가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살던 집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바쇼는 그가 살던 오막살이를 새 주인에게 내주며 긴 여행길에 오른다. 그 집으로 이사 오는 여자아이를 생각하며 오래 살던 집과의 이별의 정표로 시 한 수를 바쇼암 기둥에 걸어두고 떠난다고 했다. 3월 3일에 열리는 히나마츠리라는 인형 축제를 염두에 두고 지었으리라.

 

‘오막살이 초가도

 주인이 바뀌는 세상이어라

 히나 인형의 집’ ─ 바쇼

 

하이쿠는 17자의 짧은 시 형식이다. 대상의 어느 한순간을 포착해서 표현한 독특한 단형 시가이다. 독자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그 생략된 표현의 틈새를 보충하여 완성하는데 묘미를 느낀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 틈새의 묘미를 몰라 하이쿠의 진수를 제대도 감상하지 못한다.

‘해 묵은 연못이여,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개구리가 풍덩 뛰어들고 난 뒤의 그 여운을 느껴보라고, 하이쿠 강의를 하시던 이어령 교수의 감성이 나에게는 전달되지 않아 그 시간이 지루하기도 했는데 그때가 나의 20대였다. 이제야 하이쿠의 묘미를 조금 느끼고 있으니 두 나라의 정서가 다른 건지 내 감성이 무딘 건지.

작년 4월, 일상에서 일탈하려 잠시 일본에 갔었다. 말이 일탈이지 문우들과 함께 했으니 일상의 궤도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바쇼와 그의 제자 소라(曾良)가 함께 다녀갔다는 마츠시마 섬에도 잠시 들렀다. 그 아름다움이 중국의 서호와 동정호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4월을 맞은 섬의 자태는 향기로웠다.

서암사(瑞巖寺)로 들어가는 길 입구, 어느 상점 앞을 지나가는데 상점 앞 평상에 바쇼가 쉬고 있었다. 그의 제자 소라는 없었고.

반가움에 옆에 가서 털썩 앉았다. 그의 모습은 듣던 대로 소박한 스님의 행색이었다. 하얀 도복에 하얀 모자 눌러쓰고 지팡이 옆에 놓고 한유롭게 앉아 있었다. 잠시 쉬다 떠날 듯한 나그네의 모습이었다. 그가 말은 안 했어도, 말을 건네 오지는 않았어도 하이쿠의 여운이 전해졌다. 그가 오래 머물던 오막살이를 떠날 때, 쓸쓸한 마음으로 하이쿠 한 수 짓던 그 감성이 전해져 왔다.

이번 봄, 나는 바쇼를 생각했다. 나도 이 봄에 오래 살던 아파트를 떠나왔다.

20년 살던 아파트를 뒤로 하고 이사 오던 날, 내 마음은 옛집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데 식구들도 가구도 나도 강아지도 새 아파트에 와 있었다. 그 집에는 20년의 가족사가 남아 있고, 이웃도 경비아저씨도 정든 슈퍼도 그대로 있는데 우리 가족만 떠나왔다.

바쇼같이 배낭 짊어지고 방랑시인처럼 살고 싶다고 큰소리치면서도 집으로 향하는 안주인의 마음을 어쩌란 말인가. 지금도 그 집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산수유 피고

 매화 만개한데

 주인 없는 옛집’

 

바쇼처럼 하이쿠 한 수 짓는 것으로 옛집과의 이별을 고할까 한다.

 

<수필공원>으로 등단.

현 수필산책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