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선생님께

 

                                                                                           허창옥

문화예술회관 계단을 뛰어오르면서 제 가슴은 마구 뛰었습니다. ‘헤르만 헤세’ 대구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지역에서 선생님에 관한 모든 자료를 전시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갈래머리 소녀가 되어 한스와 싱클레어를, 싯다르타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실물 크기의 흑백사진으로 서 계신 선생님의 만년 모습이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그렁하게 고였습니다. 둥근 안경테 너머 깊이 모를 눈빛, 주름진 얼굴에서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숭고한 인간에 대한 떨리는 외경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소년, 작가, 평화주의자, 화가, 자연주의자, 노년, 말년의 헤세 선생님을 차례로 만나고 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데미안』을 처음 읽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무엇을 이해했을까 싶습니다만, ‘새’, ‘알’, ‘세계’, ‘신’, ‘아프락사스’에 대한 상념에 젖곤 했습니다. 『페터 카멘친트』, 『수레바퀴 아래서』, 『지와 사랑』, 『싯다르타』 소설 속의 인물들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막연한 그리움에 젖고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던 소녀에게 선생님의 주인공들은 보이지 않는 연인 같은 존재로 자리했습니다.

청소년기의 꿈과 현실, 회의와 반항, 일탈의 유혹과 방황을 그들과 함께 겪고 이겨내고 아파했습니다. 특히 ‘싯다르타’는 한동안 저를 뒤흔들었습니다. 갈증으로부터, 욕망으로부터, 꿈으로부터,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사문의 길로 들어서는 아름다운 청년 싯다르타는 제게 순결한 삶에 대한 동경을 갖게 했습니다. 또한 그 길에서 무한히 괴로워하고, 무한히 참아내며 마침내 죄인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부처를 발견하는 싯다르타를 보면서 저는 진리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주인공들과 도서관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게 싫었습니다. 하지만 갖고 싶은 책을 살 수 있는 그런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몇 년이 더 지나 대학에 다니면서 어찌어찌 용돈을 아껴서 다섯 권으로 된 전집을 7천 원(그게 지금의 얼마쯤인지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에 사서 제 방에 들여놓았습니다. 1973년의 일입니다. 비로소 저는 선생님의 분신인 한스와 싱클레어와 카멘친트… 그들을 제 곁에 불러모았던 것입니다.

지금의 시력으로는 읽을 수 없는 깨알 같은 글씨가 세로로 빽빽하게 박힌 그 책들은 종이가 바래어 붉게 변한 채 여전히 제 서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권에 게재된 연보는 1961년(84세) ‘계단’ 간행으로 끝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영면하신 1962년, 저는 아홉 살이었습니다. 그렇듯 선생님과 저는 이 지상에서 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동시대였다 하더라도 동양과 서양의 거리며, 그 동서양이라는 거리보다 더 크게 벌어진 사람의 크기 차이로 역시 연이 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오래된 작품집들을 실물로 보고 선생님께서 그린 작은 마을, 호수, 산, 구름들의 고요한, 잠자는 듯한 수채화들을 대하는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리신 자전적 인물들 때문에 소년 헤세, 젊은 작가 헤세가 더 반가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게 아니었습니다. 만년의 선생님 모습을 담은 사진들, 해설들 앞에서 저는 오래 서 있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소녀도 젊은 여인도 아니기에 자연에 은거하기 시작할 무렵의 선생님 표정에서 참으로 많은 의미를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마른 체구에 헐렁한 양복을 입고 모자를 쓴 채 나무 곁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 정원에서 토마토를 돌볼 때의 표정은 참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웠습니다. 끝없이 탐구하고 한없이 고뇌하던 젊은날들이 있었기에 그리 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무엇보다 창 밖을 바라보는 노년의 모습은 울림이 컸습니다. 여생을 조용히 보냈을 그때 선생님의 시선에 잡힌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랑과 이별, 방랑, 회의, 그리움, 슬픔, 밝고 어두운 세계, 자연과 정신을 그리며 일생을 보낸 대작가는 창 밖을 내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이 지상에서의 삶을 끝내는 날 이르게 될 천상을 바라보며 『유리알 유희』의 저 유명한 글귀 ‘오래도록 무거운 짐을 진 자, 그 짐을 부리도록 허락을 내린다. 그것은 감미롭고 근사한 일이다’를 되뇌고 계셨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리워하던 소년을, 인간에게 정신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신 고귀한 스승을 만나고, 뵌 기쁨 가슴에 안은 채 하오의 햇살에 물든 문화예술회관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