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아이

 

                                                                                            최순희

위와 같은 제목의 짤막한 외신을 접한 것은 작년 연말께였다. 얼굴이 없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무엇이 그런 병을 초래하는 것일까. 그 부모는 아기를 눈물겨운 헌신과 사랑으로 돌보고 있다는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그럴 수가 있을까.

이 가족의 이야기가 국내 한 텔레비전을 통해 소개된다는 예고에 방영 날짜를 손꼽아 기다린데는, ‘얼굴’로 대변되는 외모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우리 문화에 대한 우려와 혐오감과 함께 이런 궁금증이 짙게 깔려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플로리다 잭슨빌에 살고 있다. 엄마는 25세, 아빠는 35세이며, 예쁜 다섯 살바기 언니도 있다. 문제의 아기 줄리아나는 현재 22개월. 트레처 콜린스 증후군이라는 병으로 얼굴뼈의 절반이 없이 광대뼈와 눈의 형태만 있는 상태로 태어났는데, 그런 환자들 중에서도 가장 장애가 심한 경우에 속한다. 지금까지 총 14번의 수술을 했으나, 귓구멍이 없고 오른쪽 눈만 희미하게 보이는 상태이며, 호흡장애로 숨쉬기도 힘들다.

의료진은 앞으로도 30~40번의 수술을 통해 잘못된 얼굴 부분의 위치를 먼저 잡아주고 태어날 때 없었던 부분을 만들어 줄 계획인데, 운이 따라주면 단순사고를 입은 정도로 눈·코·입이 제자리를 잡을 것이란 소견이다.

 

내가 가장 먼저 알고 싶었던 것은 태아의 병명이나 기형 가능성에 대해 부모나 의료진이 몰랐는가 하는 점이었다. 답은 ‘알고 있었다’였다. 의료진이 중절 의사를 물었으나 부모는 단 한번도 중절을 고려해 본 적 없으며, 그 결정을 후회해 본 바도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출산 후 아기의 상태가 의료진도 예상 못했을 정도로 심각함을 알았을 때도, 가능한 모든 치료에 임할 뿐 아기를 포기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부부는 줄리아나가 정상 아기보다 훨씬 더 많은 축복을 그들의 인생에 가져다주었으며,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기가 태어난 후 부부는 어린 언니와의 만남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충격을 받거나 동생을 멀리 하지 않도록 먼저 사진을 보여주며 점차 익숙해지게 한 다음 만나게 했다. 동생과 대면했을 때 어린 캔드라가 처음 한 말은, 하느님이 내 동생을 만드셨고, 얘가 남다르게 생긴 만큼 더욱 특별히 사랑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부의 일상은 당연히 180도 달라졌다. 염증이 없도록 하루에 두 번 음식물 투입용 튜브를 소독하는 일에서부터 4시간 거리의 아동병원까지 자동차와 경비행기를 갈아타고 가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이 특별한 아이를 다루면서 서로 많이 결속되고 강인해졌다.

줄리아나는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호기심 많은 여느 22개월짜리나 다름없는 사랑스런 아이다. 아주 큰 소리만 들을 수 있어 냄비 뚜껑을 맞부딪쳐 소리내는 것을 좋아하고, 균형감각이 부족해 걷지도 못하면서도 엄마를 따라 거울을 보며 빗으로 머리 빗는 것을 좋아한다.

자칫 호흡장치가 멎으면 숨을 못 쉬기 때문에, 밤이면 전문 간호사를 고용하여 침대맡을 지키며 돌봐주게 해야 한다. 눈을 감을 수 없어 안구가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간호사는 아이가 잠자기 전 눈에 비닐랩을 덮어주는 일부터 한다. 음식물은 배에 구멍을 뚫어 위로 직접 투여하는데, 입으로 맛있게 음식을 먹을 날이 오는 것이 이들 모두의 희망이다.

이들 가족은 현재 다같이 수화를 배우고 있으며, 줄리아나는 언어치료와 물리치료도 함께 받고 있다. 또 언니를 유치원에 데려다 줄 때면 부러 줄리아나를 함께 데리고 들어가 다른 아이들을 만나게 한다. 언젠가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부딪쳐야 하는 아이가 그들에게 익숙해지고, 다른 아이들 또한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줄리아나를 그들 중의 하나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하느님이 줄리아나를 보낸 것은 사람들에게 모든 생명은 다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남들과 다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더욱 사랑하고 가까워지게 하기 위해서라고. 장차 십대가 된 줄리아나가 외모로 인해 친구도 없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못 받는다고 느낄 때 읽으며 위로받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엄마는 이 아이의 사연이 공개된 후 세계 각지로부터 날아든 2천여 통의 편지들을 고이 모아두고 있다…….

 

참으로 감동스럽고 마음 숙연해지는 사연이 아닐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던 날 아침 신문에서, 아파트 복도에 며칠씩 쓰레기처럼 방치되었던 상자에서 죽은 신생아가 발견되었다거나 비닐랩에 싸여 남의 집 문간에 버려진 채 죽어가던 신생아 이야기를 읽은 다음이라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태아의 이상을 알면서도 단 한번도 임신중절을 고려해 본 바 없다는 부모의 확신에 찬 태도는 생명존중 원칙과는 별개로, 내겐 선뜻 찬성이나 찬사를 보낼 수 없는 그 무엇을 강하게 남긴다. 무조건 중절을 했어야 한다는 얘기까지는 물론 아니다. 원래 나는 무릇 모든 새 생명은 계획되고 준비된 임신을 통해 축복으로 맞이해야 하며, 부득이 그렇지 못할 상황일 때는 적극 피임을 하도록 하고 무분별한 중절은 절대 삼가야 한다는 입장인 터다.

그런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기가 살아가면서 겪어내야 할 엄청난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비용을 생각할 때, 비록 엄연한 생명체라고는 하나, 글쎄, 내 관점으로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직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태아를 중절이라는 필요악의 선택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토록 확신에 차서 낳는다는 것은, 아기에게는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한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사랑과 헌신으로 보살핀다 해도 아이 스스로 평생을 통해 겪어야 할 고통은 극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인 그들 자신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지만 아이가 장차 겪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기 그지없다는 엄마의 말대로, 미안해야 할 이유가 다분하다고 여겨져 분노마저 맛보는 것이다. 일단 태어난 다음이라면 몰라도, 그 전에 아직 태중에 있을 때의 선택이 과연 아기 자신을 위해 최선의 것이었는지 나로선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천만 다행스럽고 부러운 것은, 그 나라에서는 간호사 비용을 포함한 대부분의 의료비가 아마 보험으로 커버되리란 짐작이다. 환자인 아이와 그 가족은 경제적 고통 이외의 나머지 고통만 부담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어린 줄리아나가 의료진들의 조심스런 예측대로 모든 수술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쳐서 최대한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길 빈다. 아울러 사회생활을 통해 필경 부딪쳐야 할 남다른 외모로 인한 시련들을 잘 극복하고 참다운 인간 승리의 기록을 남겨주길 비는 마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