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땅

 

                                                                                              이오라

“독도에 편지가 배달되게 하려면 단순히 ‘독도 앞’으로 하지 말고 수취인을 적어야 한다.”

신문을 보다가 그만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그렇지. 독도 문제를 두고 다시 한일 양국이 첨예한 갈등을 빚자 시민들이 독도에 편지 보내기 운동을 하는 모양이다.

 

나는 보관하고 있던 동해 표기 분쟁 기록물을 꺼내 본다.

기억은 2001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베를린에서 연수를 받고 있었을 때, 짬을 내어서 근처 초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베를린은 다른 지역과 달리 초등학교가 6학년제였다.

3학년 어린이들이 조별로 연극을 하는 수업을 본 뒤 최고 학년인 6학년 학급에 들어갔을 때였다. 문학 수업을 하던 선생은 우리가 남 코리아의 수도 서울에서 온 교사라고 소개하더니, 우리의 방문을 좋은 기회로 삼아 지리 공부를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지리부도를 꺼내게 하여 전체 대륙에서 아시아로 또 동북아시아로 범위를 좁혀가며 코리아를 찾게 하였다.

나는 한 아이가 지리부도에서 한국을 찾는 것을 도와주다가 한반도 옆 바다에 ‘일본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지도가 잘못 되었다.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이다” 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 학생은 한국에서 온 교사의 말이라 신뢰해서인지 ‘일본해’를 죽죽 그어버리고는 ‘동해’라고 고쳐 써넣었다. 옆의 학생들도 따라서 고쳤다. 그 모습을 본 독일 여선생이 당황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잘못된 지도를 수정해 주었다는 자부심으로 그 여선생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애국가를 부르며 자란 나로서는 동해를 일본해로 부른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껏 이곳 사람들이 이런 지도를 보고 자랐다면, ‘일본해에 있는 섬이라면 독도도 당연히 일본 것이지’ 하고 오히려 우리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할 게 뻔하지 않겠는가. 도대체 우리 외교부는 무얼 하고 있는가. 나는 그만 마음이 조급해졌다.

귀국하자마자 나는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그 사실을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그럴 리가. 그 나라가 지도를 잘못 만들었구먼” 하고 대수롭잖게 받아넘기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답답해서 인터넷으로 동해 지명에 대해 탐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독일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영국 등 무려 전 세계의 97%의 나라가 ‘동해’가 아닌 ‘일본해’로 표기된 지도를 쓰고 있다는 것과 6, 70년대에 해외 유학생들이나 특파원들이 나처럼 외국에 나가서 세계 지도상에 동해가 일본해로 바뀌어 표기된 사실을 알았지만, 그때 국가적인 대응은 없었다는 점 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국제수로기구(IHO)라는 기구가 50여 년에 한 번씩 『해양의 경계』라는 책자의 개정판을 발간하며, 각국의 지도 제작자들이 이 『해양의 경계』를 국제표준으로 인정하여 지도를 제작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를 감동시킨 시민단체는 사이버 외교사절단인 ‘반크’였다. 이제는 텔레비전에 공개적으로 활동을 광고하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니 그 이름을 밝혀도 무관할 것이다. 반크가 동해 지명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열심히 민간 외교활동을 하고 있어서 나는 그들의 행보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2002년 8월 한국과 일본 양국의 언론이 동해(일본해)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였을 때 나는 동해 표기 문제가 해결되리란 기대감으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동해를 찾으면 독도도 저절로 찾게 되는 것이니까.

그 해 9월 베를린에서 열린 유엔지명표준회의에서 우리나라는 ‘동해`-`일본해 병기 표기’를, 일본은 기존 명칭인 ‘일본해’를 주장하며 치열하게 외교전을 벌였다.

그런데 국제수로기구(IHO)는 처음에는 ‘일본해를 삭제하고 공란으로 발간한다는 최종안을 발표해 놓고, 곧 그 안을 철회했다. 여러 해 전부터 ‘일본해’를 주장하기 위해 외교적으로 체계적인 홍보활동을 해 온 일본 정부가 그때도 IHO 회원국을 상대로 총력을 기울여 철회 로비를 벌인 결과였다.

내 실망은 컸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동해’라는 이름을 다시 찾을 길이 없을 것만 같아서였다. 월드컵 열풍과 최악의 재산 피해를 낸 루사 태풍이 없었더라면 동해 표기 운동이 더 적극적으로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독도 사랑 노래가 다시 불려지고 캠페인에다 서명운동까지 전국이 들썩들썩한다. 정부기관에서 독도 홍보 자료를 보내왔다. 이제야, 쩝쩝, 입맛이 쓰다. 어쨌거나 올해는 관민이 힘을 합쳐서 ‘동해’로 표기를 복원시키겠다는 결의가 대단하다. 이제 해묵은 내 기록장을 버릴 때도 된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뉴스를 보는데,

“재정경제부의 집계 결과, 아직 일본인 명의로 남아 있는 땅이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7.5배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이런, 또 슬며시 화가 나기 시작하는데, 전화가 왔다.

“뭐하누?”

“뉴스 보고 있어요.”

“뭐 특별한 거라두?”

“글쎄, 일제 때 일본 명의로 그대로 놔둔 땅이 독도 면적의 350배나 이른다고 하지 뭐유?”

“그래, 국가 공무원들이 때론 참 한심하지. 그런데도 서울시 관련 공무원이 한다는 말이 ‘좀 늦은 감이 있다고 봐야지요’라니. 60년이 지난 지금이 쪼옴 늦은 거유?”

“그러게. 그런데 네 재건축 아파트엔 언제 입주하지?”

“2년 뒨가 3년 뒨가… 하여간 그래요.”

“몇 평을 무상으로 배정받는 거지? 없다니, 이상하네. 그럴 바에야 팔고 차라리 서울 근처 새 아파트를 일반으로 분양받는 게 낫지.”

“글쎄요, 그게 잘…….”

나는 재건축 계통의 용어조차 낯설어서 우물쭈물할 뿐이다. 혀를 끌끌 차면서 상대방은 전화를 끊는다.

내 기록장에는 먼 땅 이야기만 가득 하고 내 아파트에 대한 기록은 없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선산 명의를 남에게 뺏기고 공동묘지에 계시는 아버지가 생각나서이다.

“대원군이 양반들의 묘지를 축소하게 한 건 잘한 일이지. 지금이야 어디 의원들이 표를 의식해서 장묘 문제를 거론하느냐고. 고속도로 주변 경치 좋은 곳은 으레 잘난 가문들의 호화 묘지들이고, 장마 때마다 토사가 흘러내리는데도 원…” 하고 늘 먼 산 걱정만 하시더니만.

 

<계간 수필>로 등단(97년).

에세이집 『문 밖의 사람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