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박영란

엽서가 왔다. 옥동자를 낳았으니 산후조리를 잘 하라는 일단의 축하였다. 그다운 입담에 웃고 말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잘 하라’는 말 속에 뼈가 있음을 알았다.

산후조리를 잘 못하면 그 후유증은 오래 간다. 비가 오거나 몸이 좋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증상은 때론 골병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산모는 몸이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삼칠일까지 대개는 아랫목에서 자리보존을 하게 된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옆에 두고 햇살 가득 넘치는 방에 누워 시간도 잊고 세상도 잊었던 그 진공상태가 문득 그리움처럼 다가온다. 아기의 젖 냄새, 친정엄마의 부산함, 물리지 않던 미역국, 그 노곤한 잠 맛. 그때의 안식과 평화는 여성이 모성으로 탈바꿈되는 완충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셋째를 받았다. 첫째와 둘째도 분만 예정일이 한참 지나서 나오더니 이놈도 그렇게 나를 애태웠다. 첫 상면의 순간 나와 맞닥뜨리는 그 이미지와 느낌은 ‘됐어’라는 안도의 한숨으로 새어나왔다. 내 생애에 이런 기쁨을 주는 자식도 있다니! 남편에게 덥석 안긴다. 반가워는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표정은 아니다. 같은 피가 흐르지 않는 이질감이랄까, 남편은 아무래도 셋째로서의 충족이 되지 않나 보다.

첫 수필집은 그렇게 왔다. 쓰다듬고 뒤적이고 읽고 가만히 응시하는 게 고슴도치가 제 자식을 예뻐하는 꼴 같다. 무수한 시간과 노력의 결정체를 바라보는 느낌. 감회에 젖는다. 그 순간 심호흡과 함께 어디선가 따뜻한 기운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이렇게 책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결국은 못난 자식이건 잘난 자식이건 다 내가 품어야 하는 몫이 되는구나 싶었다. 어쨌든 책도 세상에 버티고 살아 남아야 하는 경쟁력을 가지고 태어나야 하는데, 좋은 책이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울림을 주어야 한다. 지식을 주던, 정서를 주던, 감명을 주던 그 속에는 읽는 맛을 주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 모든 것에서 작가의 함량이 여지없이 저울질된다. 그럼에도 내가 애써 책을 출산한 이유는 뭘까.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말은 있다는데. 나의 아들과 딸은 아직 훌륭하지는 않지만 착하니 아마 셋째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믿어 보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도 있지만.

내 품에 있을 때 자식이지 책이라는 이름으로 막상 세상에 내 보내니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 같았다.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대접을 받을까, 사랑은 아니어도 책으로서의 대접은 받을 수 있을지, 그런 애연한 마음으로 하나하나 떠나보냈다. 부실한 아이를 만들어 이 치열하고 살벌한 세상에 책임 없이 내보내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산더미 같은 책들이 빠져나간 뒤의 이 허함은 또 무엇일까. 탯줄을 끊어버린 만삭의 배처럼 내 정신의 혼이 빠져나간 듯한 진공상태. 무기력에 빠진다.

산후조리를 잘 하라는 선배의 충고에는 확실히 뼈가 있다. 그렇다. 뼈만 남기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의식을 다 떨어내어야 하는 탈바꿈의 시기다. 사람에게는 그런 기회와 때가 있듯 자신에게도 지금이 완충의 시기다.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수필을 써야 한다는 강박감이 어쩌면 새로운 글을 찾지 못할 것 같은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그걸 알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격려와 축하를 보낸다. 잘 했다라고, 수고했다라고. 그런 덕담은 따뜻한 햇살에 몸과 맘이 펴지듯 위안이 된다. 위안만큼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래저래 자식은 애물이다 싶어 다시 책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둘째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다.

“엄마 둘째가 좋아, 셋째가 좋아?”

아우를 본 누이의 시샘일까. 셋째가 나올 때 둘째는 Y대학교 합격 소식을 받았는데 엄마의 관심이 몽땅 셋째에 가 있는 것처럼 보였는지 영 못 마땅한 표정이다.

확실히 셋째를 얻었나 보다.

 

   출생 신고서

 

·출생일 ─ 2004년 11월 30일

·출생지 ─ 청조사

·체중 ─ 390그램

·키 ─ 14.5㎝, 22.5㎝

·성별 ─ 돌연변이

·이름 ─ 바람이 데려다 주리

 

<에세이 문학>으로 등단(2001년). 전북 중앙신문 신춘문예 당선(2003년).

수필집 『바람이 데려다 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