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달

 

                                                                                               유경환

그때 우리들의 겨울 놀이터는 빈 논바닥이었다. 논바닥이 얼기를 기다려서 썰매를 탔다. 햇살이 찌르르 미끄러지는 얼음판은 유리처럼 반들거리며 쩌억쩌억 금이 갔으나 갈라지지는 아니했다.

썰매는 철사 썰매다.

통나무를 반으로 가르고 반원으로 동그랗게 굽은 등에 굵은 철사를 대어 만들었다. 철사를 구하느라 가을부터 길을 다니면서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심부름거스름이나 세뱃돈을 모아 대장간에서 만든 썰매 밑쇠를 사게 되면 뛸듯이 좋아했다.

겨울 한철 썰매를 타기 위해서는 벼 그루터기가 잠기도록 빗물을 모아야 했다. 추수가 끝나면 바로 논둑을 트고 물길을 만들어 빗물 모으는 일을 하고 다녔다. 논주인은 우리들의 이런 일을 눈감아주었다. 아마 논주인도 어렸을 적에 우리와 똑같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리라.

봄기운이 돌면 논바닥 얼음이 먼저 녹았다. 논바닥 얼음은 두꺼울 수 없는 것. 먼 산을 보며 봄기운을 감지하는 대신, 논바닥 얼음을 보고 봄기운 도는 것을 낌새로 알아차렸다. 더이상 썰매타기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부턴 논두렁의 메를 캐어먹는 일이나 불놀이를 생각하였다.

얼음이 풀리기 시작하여 부드러워진 논둑이나 양지짝 논두렁을 파헤치면 검은 흙 속에서 하얀 메뿌리가 드러났다. 가늘고 길게 뻗은 메는 새콤새콤한 맛을 입 속에 남겼다. 바지자락이나 소매에 몇 번 문지르고 입에 넣어 먹는, 그것은 그대로 봄을 씹는 느낌이었다.

정월 큰 보름날.

둥근 달을 보면서 불통을 휘두르는 불놀이. 이것은 그 시절 우리가 할 수 있던 가장 신나는 놀이로서 불장난과 다름없다. 사실 불놀이만큼 ‘기가 막히게’ 즐거운 놀이는 없었다.

이토록 흥겹고 신나던 불놀이도 큰 보름날을 지낸 뒤 한 주일쯤 지나면 시들해졌다. 달이 무너지기 시작하여 차차 눈썹달로 줄어들기까지, 논물에 달빛이 풀어지면 우리는 추운 줄도 모르고 여우 우는 소리를 내면서 밤을 즐겼다.

논두렁을 따라 걸으면 따라오는 눈썹달이 언제나 둘이었다. 하나는 머리 위에 있고 다른 하나는 발 아래서 눈을 흘겼다. 논물이 일렁이면 눈썹달은 매섭도록 차게 부서져 퍼졌다. 풀어진 달빛은 물주름을 탄 요정이었다. 작은 요정들은 기름기처럼 반들거렸고, 때로는 흔들리는 천장 무늬로 보이기도 하였다.

달빛은 얼마나 차고 매서웠는지, 곁눈질로만 바라본 뺨살 고운 누이들 눈초리를 떠올리게도 했다. 아무런 조명시설이 없던 그때, 논바닥에 어리던 반사광은 황홀한 꿈의 공장 불빛이었다.

 

이런 겨울 정서가 내게 언제까지나 지속된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떠나야 했다. 그렇게 신나던 고향의 겨울은 끝을 보였다. 그 뒤로 다시는 그곳에 가지 못했다. 38선이라는 것이 그어질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다. 그것은 전쟁 뒤 휴전선으로 이어졌다.

육십 몇 년이 지났다.

번뜩이던 고향의 겨울 논바닥은, 가슴살을 누르는 것 같은 아픔 비슷한 아쉬움을 안겨주곤 하였다. 입춘대길이라는 굵은 먹글씨를 대문에 써 붙이던 기억까지도.

피곤을 쉬 느끼게 된 삶에 위로받는 것은 오로지 그 시절의 회상뿐이다. 잔잔한 미소처럼 유년의 기억은 편안하게 다가와 준다. 내게는 퍽 행복한 선물이다.

지금 내가 거처하는 곳에선 일부러 마음먹고 한참을 걸어 나가야만 겨우 겨울논을 볼 수 있다. 어느 화가가 그려놓은 화폭처럼 정겨움이 서려 있는 겨울논. 이런 풍치의 겨울논을 반갑게 만나도 달빛이 풀어져 요정처럼 반질거리는 겨울논을 만나기는 매우 어렵다. 어쩐 일인지 요즘엔 빗물도 괴지 않은 마른 논바닥일 뿐이다. 그래서 더 삭막하다.

어쩌다 반쯤이라도 물이 괸 겨울논을 만나면 못 만났던 것이 억울한 일인 양 가슴 저리도록 깊은 한숨이 나온다. 왜냐하면 내가 지닌 즐거운 기억마저 지워질 것 같은 슬픔이 일기 때문이다.

내 유년의 겨울놀이가 자랑스러운 것은 못 된다. 그러나 그것은 소박한 것이었다. 내 기억이 지닌 값은 소박한 아름다움에 있다. 가공되거나 각색되지 아니한 정겨움. 소박한 것을 소박한 대로 좋아하는 것은 요즘 같은 세상에선 귀한 덕목이리라 싶기도 하다.

내가 간직해온 이런 정겨움은 우리 또래만의 추억일 것인가. 그것은 더이상 공유될 가치가 없는, 아니 가치상실의 항목이 되는 것일까. 세월이 흘러가면 사람의 성정도 달라지는 것이려니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눈썹달 이야기도 이런 글에나 겨우 남게 될 것이다.

판화처럼 내 마음에 찍힌 유년 시절의 눈썹달 정서는, 칠십 평생 나의 모든 그림의 밑그림 노릇을 하여왔다. 그래서 눈썹달에 대한 ‘상실’이 아픔 비슷한 아쉬움으로 가끔 되살아나는 것이다.

보름달이든 반달이든 눈썹달이든 또는 초승달이든 달의 크기는 전연 문제가 아니다. 다만 달빛을 받아들이는 물의 수용 상태가 어떠냐의 문제이다. 가늘게 비치는 눈썹달 달빛도 넉넉한 겨울논물에선 더없이 매력적이다

밑동 자른 통무를 물그릇에 담아놓고 푸른 무청 싹을 키우는 그런 아이들을 보거나, 태엽 감는 새시계처럼 그렇게 재잘대는 아이들을 보거나, 나는 그들의 내면에 어떤 정서가 어떤 식으로 틀잡혀 있는지 그것이 자못 궁금하다.

‘할아버지 어릴 때’ 이야기라면 고개를 외로 트는 아이들.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나는 더 고립되고 그래서 겨울논을 찾아 나서게 된다.

물이 겨우 절반쯤 고인 겨울 논바닥을 만나 반색을 하다가도, 체념의 달빛을 보게 될 때엔, 유년의 겨울이 보석처럼 그리워진다. 마음이 보석이어야 달빛도 보석이 되는 것을 어찌 모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