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王道)와 노도(老道)

 

                                                                                             朴籌丙

옛날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신하들과 함께 어느 날 저녁에 주연을 베풀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좌중은 취기가 돌고 배반이 낭자해질 무렵, 어쩌다가 방안의 촛불이 꺼져버렸다. 한 신하가 그 틈을 타서 장왕의 총희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놀란 총희는 얼결에 그 자의 갓끈을 뜯어 쥐고 장왕의 귀에 대고 나직이 종알거렸다. 갓끈을 받은 장왕은 껄껄 웃으며 호탕하게 외쳤다.

“여러분, 불을 켜지 마오. 분위기가 더 좋지 않은가. 자, 모두들 갓끈을 뜯어서 이리로 던지시오. 갓끈이 붙어 있는 자에겐 벌을 줄 터이니.”

장왕은 신하들의 갓끈을 한 손에 모아 쥐고 자신의 갓끈도 뜯어버렸다.

“자, 이젠 불을 켜시오.”

턱이 허전해진 좌중은 서로 바라보며 뜨악해 있을 뿐 무슨 영문인지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후 장왕은 적과 전투를 하다가 포위를 당하여 꼼짝없이 죽거나 사로잡힐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저만치서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달려들어 간신히 퇴로를 여는 한 장수가 있었다. 어렵게 장왕을 호위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 갓끈은 소신의 것이었나이다.”

후세 사람들은 이 고사를 두고 ‘장왕의 고사’니 ‘절영지회(絶纓之會)’니 하는 것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면류관(冕旒冠)에는 다섯 색깔의 구슬을 꿴 끈이 여러 가닥 드리워져 있었다. 또 면류관의 양쪽 잠(簪) 끝에 노란 솜으로 만든 구형(球形)인 주광(黈纊)이라는 귀막이가 매달려 두 귀 옆에 늘어뜨려져 있었다. 군왕은 마땅히 비리(非理)를 보지 않고 참언(讒言)을 듣지 않아야 한다는 상징적인 뜻이라고 한다. 눈을 가리고도 형체 없는 것도 볼 수 있어야 하고, 귀를 막고서도 소리 없는 것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또 다른 상징적인 뜻이 있다고 한다. 『주역』이 말하는 ‘용회이명(用晦而明)’이랄까. 지나치게 살피지 않고 지나치게 듣지 않음으로써 대상을 포용할 수가 있다면 이야말로 군왕으로서 천하를 완벽하게 살피고 남김없이 듣는 길이라고 할 만하다.

나라를 맡은 사람이 무형(無形)을 보고 무성(無聲)을 듣는 경지에 이르고서도 나라가 어지러워졌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초나라 장왕은 면류관을 제대로 쓸 줄도 알고 주광도 잘 챙겼던 모양이다.

면류관이나 주광 같은 것은 아무나 바랄 수가 없지만 뜰 앞에는 나무 몇 그루를 심어 놓고 방 안에는 병풍을 쳐놓고, 그리고 가끔은 합죽선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어험, 어험, 헛기침이나 하며 나는 그렇게 늙어 가리라. 늙으면 눈도 침침해지고 귀도 먹먹해지는 건 꽤 뜻이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고놈의 양기가 입으로 올라오니 탈이다.

 

철학박사. 한국주역학회 회원.

영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및 환경대학원, 대구 가톨릭대학교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