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관하여

 

                                                                                               엄정식

우리는 독서의 중요성을 모두 인식하고 있다. 독서를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폭넓은 지식을 얻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것을 계기로 해서 삶 그 자체를 풍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는 여행과 비슷하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여행을 통해서도 우리는 낯선 고장에서 낯선 풍물을 만나고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동안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삶과 존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놀라웁게도 독서는 비록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일구어내는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그 폭과 깊이에 있어서, 그리고 그 수준과 지속성에 있어서 여행을 훨씬 넘어선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 여행을 주로 지각적 경험에 의존하지만 독서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상상력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서는 우리에게 무엇이며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선 독서는 일종의 만남을 의미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독서를 통해서 우리는 여행에서처럼 낯선 고장의 낯선 풍습과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하여 그들의 이질적인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접하게 되고 그것을 이해하고 또 거기에 적응하려고 애쓴다.

사람들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의 사랑과 출세와 몰락을 만나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나누며,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지닌 고뇌에서 인간의 역설적인 상황을 배운다. 우리는 그들이 당면한 특수한 상황과 시대적인 배경, 문화적인 이질성을 함께 겪음으로써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문화적 보편성과 인간성의 본질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독서는 이러한 만남을 만남 그 자체로 머물러 있게 하지 않는다. 그러한 만남을 통해서 독서는 우리를 창조의 세계로 인도한다. 석가나 예수, 공자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성현들이 남긴 지혜를 배우며 많은 것을 깨닫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것을 우리의 현실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시대와 문화를 창조한다. 만약 독서의 방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먼 옛날의 깊은 가르침을 만날 수 있으며, 그것을 근거로 해서 새롭게 의미 있는 삶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여행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또 하나의 여행을 계획하게 하듯, 독서가 인간의 내면적 세계를 끝없이 방황하게 하는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독서는 내면의 황무지를 끊임없이 개척하여 마침내 새로운 옥토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창조는 동시에 인류문화의 진보를 의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우리가 창조한 것이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나 다른 문화의 내용과 차별화되는 것에 그치고 좀더 진전되는 것이 아니라면 구태여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러므로 가령 우리는 단군신화로부터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할 뿐 아니라 분단의 시대에 어떠한 방식으로 새롭게 ‘민족적 자아’를 창출해야 하는지 가늠해야 하고 또한 우리의 민족과 조상에 자랑할 만한 조국을 실제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분명히 독서는 우리를 아득한 과거와 머나먼 고장, 그리고 낯선 풍습과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여기서의 새로운 삶과 의미를 창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동시에 진보를 의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독서의 의미를 좀더 차분하게 음미하고 그것을 화초처럼 정성껏 가꿀 마음을 먹어야 한다. 독서는 어느 특정한 개인의 지적 작업이며, 그렇기 때문에 각자 자기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서적을 선택해야 하고, 그것에 접근하는 적합한 방법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독서는 비로소 하나의 만남일 뿐 아니라 창조이고 진보의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누구의 만남이고 창조이며 진보인가. 결국 이 모든 것은 독자인 나 자신의 주체성과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서는 간접 경험을 통해 우리를 넓고 깊은 세계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망원경이나 현미경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분명히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통상적으로 얻을 수 있는 범상적 경험들은 아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별을 발견할 때처럼 황홀해 하기도 하고, 세포들의 오묘한 작동을 목격할 때처럼 충격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독서를 생활화하면 결국 그러한 황홀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며, 충격으로부터도 쉽게 헤어날 수 있게 된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의 저편에 있는 세계가 점차 일상적 세계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서를 통해 경험하게 된 이념과 추상 혹은 관념과 공상의 세계가 저절로 구체적은 현실의 세계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독서는 객관적으로 평가된 양서(良書) 못지않게 주체적 식견을 갖춘 독자를 필요로 한다.

책은 아무리 현실에 관해 구체적으로 쓴 것이라도 그것을 체계화하거나 단순화해야 하고 혹은 형상화하거나 일반화해야 하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 점은 반드시 전문적인 이론적 서적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철학이나 역사, 과학이나 수학은 물론 문학의 여러 장르까지도 예외일 수 없다. 만약 우리가 독서에 몰입해 있는 동안 주체성을 잃는다면 어느 새 자신이 현미경이나 망원경 저편의 세계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방랑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독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넓고 깊게 펼쳐진 새로운 세계에서라도 아르키메데스의 점으로서 나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일이다.

독서를 게을리 하면 수준 높은 간접 경험의 기회를 잃기 때문에 항상 좁은 현실의 세계에 갇혀 있게 되고, 사고의 폭이 좁아져서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독서를 많이 하더라도 그 간접 경험의 내용을 주체적으로 수용할 능력이 없으면 근거 없이 현실을 비판하거나 무용하고 심지어 위험한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서 낯선 나 자신을 만나고 새로운 나를 창조하며 좀더 나은 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독서는 꿈의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