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하늘

 

                                                                                           김형진

볼일이 있어 고향 면사무소에 갔을 때다. 담당 직원을 찾으니 출타 중, 한 시간쯤 뒤에나 돌아온다고 하다. 면사무소 일 말고는 다른 볼일이 없어 그저 막막해지다. 면사무소 안에는 안면 있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옛 살던 마을에 들러 오기엔 시간이 부족할 듯. 느닷없이 주어진 빈 시간에 갇혀 잠시 궁리하다 떠올린 게 장터 옆 옛 어판장(魚販場)이다. 고향에 올 적이면 가끔 생각은 났지만 여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데다.

줄포면(茁浦面) 면소재지에 있는 초·중학교에 다니면서도 어판장 부근은 늘 낯선 곳이었고, 지금까지도 가슴 안에 특별한 곳으로 각인되어 있다. 살던 동네가 고개 너머 십리길인 농촌이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동네 어른들로부터 포구 사람들은 언행이 거칠어 면대하기 두려운 존재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인지도 모르다. 기회가 날 때마다 언덕빼기 운동장 가에서 거무죽죽한 어판장 지붕 앞에 늘어선 어선들의 펄럭이는 오색 깃발에 눈을 팔아본 적은 많으나 직접 포구에 가본 적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다.

면사무소에서 정문을 나서니 두 시 방향 언덕빼기에 서 있는 중학교 건물이 시선에 잡히다. 서쪽을 향해 느릿느릿 걷기 시작하다. 얼마지 않아 북쪽으로는 보안면을 행하고 남쪽으로는 장터로 통하는 삼거리가 나서다.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역시 느릿느릿 걷다. 낡은 주택 몇 채를 지나니 서쪽이 훤히 트이며 널찍한 빈터가 나타나다. 빈터 너머는 부안경찰서 줄포지서 앞마당인데 낮은 담장이 경계를 이루다. 예전엔 커다란 느티나무 몇 그루가 경계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휑해 보이다. 빈터 남쪽은 수문통거리에서 네거리를 지나 부안으로 나가는 구도로다. 먼지를 뒤집어쓴 트럭 한 대가 금세 출발할 듯이 빈터 입시에 서 있는 게 눈길을 잡다.

와 볼 때마다 이곳이 비어 있다는 게 이상하다. 아무리 시골이라 해도 도로변의 이만한 터면 상가든 주택이든 본새 나게 세울 법도 한데 예나 이제나 늘 비어 있는 게 참 이상하다. 중학교에 다닐 때 이곳 천막 극장에서 ‘춘향전’을 관람한 생각이 나다. 뒤이어 눈앞에 낡은 필름 같은 장면이 떠오르다. 길가에 도열해 손국기를 흔드는 초등학교 4학년생들 앞에서 하얀 바탕에 태극기가 선명한 머리띠를 매고 군용트럭에 오르는 장정들. 트럭에 오른 장정 하나가 우리 쪽을 향해 손을 흔들다. 트럭이 부르릉거리며 움직이자 무어라곤가 소리를 지르며 트럭 뒤로 달려가는 사십대 적 어머니. 트럭은 어머니를 뿌리치고 부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금세 모습을 감추다. 빈터 쪽에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이마를 훑고 지나가다.

네거리를 건너 장터로 가다. 건어물상과 국밥집과 지물상(紙物商)과 포목점이 늘어서 있던 장터 북쪽 변두리는 새로 난 아스팔트길에 묻혀 흔적도 없다. 씽씽 바람을 몰고 달리는 자동차를 조심하며 신도로를 건너다. 장터엔 네 기둥에 판자 지붕만 덜렁한 빈 가게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가게 사이사이마다 북새통을 이루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다. 말뚝 하나 보이지 않는 쇠전을 지나니 포구에서 젓갈 도가가 즐비하던 언둑거리를 향해 난 구도로가 앞을 막다. 도로는 아직도 예전 그대로이다. 이 갯벌 흙은 논두렁 밭두렁 밟고 자란 농촌 태생에겐 아직도 낯설다.

서먹한 마음으로 포구를 향하다. 눈앞 저만치 검은 판자벽에 검은 지붕 어판장이 보여야하는데 보이지 않다. 걸음을 조금 빨리 하다. 휑한 어판장 터에 쓸데없는 잡초만 우북하다. 어판장 앞 비린내 축축하던 부두는 푸석한 회색 둑이다. 부둣가에 늘어선 어구상(漁具商)과 목로주점 터에는 울타리 없는 집 몇 채가 초췌하다.

오색 깃발 펄럭이는 어선들이 일렁이던 바다를 향해 서다. 동발 짧은 바지게에 생선을 가득 지고 낭창거리는 널빤지를 건너오는 인부들. 인부가 건너온 널빤지를 잰걸음으로 오르는 푸성귀 그득한 함지박을 인 어머니, 고물에서 서 있는 수염 짙은 어부에게 다가가다. 어판장 안에서는 굵직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뒤엉켜 윙윙거리다. 처질거리 생선을 함지박 가득 담아 이고 잽싸게 내려오는 어머니. 그 처질거리가 저녁상 올라 입맛을 돋우던 시절이 기억나다. 그러나 지금 눈길에 잡히는 건 흉터 같은 남새밭과 쓰레기더미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잡초 무더기다. 사위가 한순간에 소리 없이 꺼져 내린 듯 적막해지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작은 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할머니 한 분이 둑 아래 남새밭으로 가다. 할머니가 들어선 남새밭엔 잎이 꼬깃꼬깃한 상추와 야위어 보이는 쑥갓이 주종이다. 상추밭머리에 쪼그리고 앉은 할머니의 새하얀 머리에 시선이 붙잡히다. 초여름 한낮의 강렬한 햇빛에 교란 당한 시신경 탓인가. 머리가 어찔하며 눈앞이 온통 하얀색 범벅이 되다. 하양으로 범벅되었던 시야가 차츰 열리며 빈 하늘 한 자락이 밀려와 가슴을 채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