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달리는 열차

 

─ 한흑구 선생의 제題를 빌어

 

                                                                                     권민정

저녁 여덟 시, 부산을 떠나서 서울로 달리는 밤열차 속에 나는 자리하였다.

기차를 타면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나는 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서울역에 도착하면 10시 50분이 된다. 그 시각이면 지하철을 타고 집에까지 갈 수도 있다. 늦은 시각에 서울역에 내려 마땅하게 타고 갈 차편이 없어 난감해 한 적도 있었는데……. 얼마 전에 개통된 고속철도 덕분이다.

열차 안에는 역방향 좌석은 좀 비어 있었지만 정방향 좌석은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언뜻 보니 가운데 탁자 두 개 중 한 곳에 40대로 보이는 남자 네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내 자리는 그들과 대각선으로 정방향쪽 뒷좌석이었다.

기차 여행의 가슴 설렘, 기차를 탄 기쁨은, 그러나 불행히도 같은 열차를 탄 이 네 명의 남자들 때문에 곧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그들은 술이 많이 취해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크고 말이 무척 거칠었다. “우리는 친구 아잉가” 하는 말이 여러 번 들렸다. 영화 ‘친구’ 속의 주인공들같이 듣기 거북한 욕설도 예사로 했다. 탁자 위에 맥주 깡통이 늘어가며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열차 안의 다른 사람은 이미 안중에 없는 듯 시끄럽게 떠들고 낄낄댔다.

듣기가 괴로웠다. 책을 꺼냈다. 읽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여전히 시끄러웠다. 다시 눈을 떴다. 창 밖은 이미 캄캄했다. 별 하나 안 보였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설레던 가슴에서 차츰 울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그때 허리에 권총을 찬 보안승무원이 그들에게 다가가더니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하라고 했다. 아마 항의가 들어간 것 같았다.

“우리 부산 사람이 목소리가 본래 큰데, 우짤끼요.”

그들은 막무가내로 떠들었다. 보안승무원은 주의만 주고 갔다. 열차 안에는 부산 사람도 많이 있었을 텐데, ‘나도 부산 사람이지만 목소리가 크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지요’하고 나서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객차 안의 승객들은 그 질펀한 욕설들을 고스란히 앉아서 듣고 있어야 했다. 동대구역에서 사람들이 새로 탔다. 젊은이 두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가 역방향의 좌석이 자기 자리라고 말했다. 그들은 일행이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하며 역방향 좌석 중간쯤을 가리키며 그곳과 바꾸자고 하였다. 그 두 사람은 조용히 물러갔다. 한 노인이 올라왔다. 그들에게 다가가 정방향 좌석이 자기 자리라며 비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앉은 좌석 중 하나도 자기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일행이 있으니 양해해 달라며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노인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조금 후 노인이 여승무원을 데리고 왔다. 그들의 좌석 표를 본 여승무원이 말했다.

“여긴 12호 객차인데 손님들은 11호입니다. 앞 칸으로 옮겨주십시오.”

어떻게 될까 하고 숨을 죽이고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승객들 좌석 이곳저곳에서 일시에 비웃음 섞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제서야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앉았던 좌석과 탁자 위는 온통 쓰레기투성이었다. 한 사람이 느릿느릿 그것을 치우려고 하자 노인이 됐다며 그냥 가라고 했다. 그들은 떠들썩하게 물러갔다. 물러가면서 그들 중 한 사람이 20년도 훨씬 더 연장자인 듯한 노인에게 어깨를 툭툭 치면서 손을 내밀며 “아제요, 미안하게 됐소” 하며 악수를 청했다. 불호령이 날 줄 알았는데 노인은 그 무례한 사람의 손을 잡았다.

그들이 가고 난 뒤 여승무원이 탁자 위와 바닥을 쓸고 닦았다. 쓰레기장을 만든 당사자에겐 그냥 가라고 한 노인이 그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여승무원에게 노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나라 고속철도 수준이 이것밖에 안 돼? 객차 안을 이렇게 난장판이 되도록 그냥 놔두다니. 승무원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어. …요즈음 나라꼴하고 꼭 같군.”

이어서 한 아주머니가 여승무원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가 그것을 왜 치워요? 그 사람들이 치우게 해야지. 나도 부산 사람이지만 부산 사람 망신은 저런 사람들이 다 시키고 있다니까.”

그때까지 직접 대고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사람들이 그제서야 입을 열고 한 마디씩을 했다.

열차는 시속 250km로 달리고 있었다. 그 열차 안에는 혀를 차는 노인과 뒤늦게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과 울화가 목까지 치밀었으면서도 한 마디 말도 못한 내가 타고 있었다.

캄캄한 밤이었다.

 

<계간 수필>로 등단(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