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許世旭

출근의 러시가 지난 오전 열 시쯤. 지하철 매표구에 나서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도열해서 표를 샀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경로의 대접을 받는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 행색이 늙수그레한데다 손마다 쥐어진 것은 하얀 차표였다. 두세 사람에 그치지 않고 여남은 사람이었을 땐 왠지 겸연쩍어 뒷통수가 간질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슬그머니 그 대열을 벗어나고파서 그냥 우두커니 서고 말았다. 얼른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들고 냉큼 매표구에 밀어넣고팠지만 그러기에도 쑥스러워 비실비실 맴을 돌다가 매표구가 한산할 때를 기다려 어슬렁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하얀 표 한 장을 주머니에 넣은 날은 내가 몹시 미웠다. 삼십 몇 년 동안 꼬박꼬박 나라에 받친 갑근세의 값이라면 떳떳이 가슴을 펼 법하지만 가슴은 언제나 새가슴, 슬금슬금 눈치나 보는 사람, 갈수록 못난이가 되나보다.

벌써 십 년이 넘게 한 작은 잡지의 편집을 돌보고 있다. 그런데 시장도 넓지 않은 터에 동류의 잡지가 우후의 죽순처럼 늘어났다. 서로가 이름을 알리고 세를 불리느라 아옹다옹이다. 울긋불긋 장정을 고급화하고 도톰두툼 쪽수를 증면하느라 고깃배가 저인망을 끌듯 독자와 필진을 모으는 데 혈안이었다.

잠자코 좋은 글만 모아서 단아하게 꾸미면 그만이라 다짐하지만, 어디 앞 강물 뒷 강물이 소리치며 흐르는데 눈 가리고 귀 막을수야.

남들은 갈수록 영악스러웠다. 이렇게 뜨겁게 달아오를 때 뜻밖에도 35년이나 발행했던 우리나라 유수한 문학지 하나가 자진 폐간을 알려왔다. 글쎄 세상에, 창간이나 당선·개업을 알리는 인사장은 많았어도 스스로 문을 닫겠다는 인사장이 웬 말인가? 세상이 어지러웠다. 그 경쟁의 열차에서 나 혼자만 슬그머니 내리고 싶었다.

세상은 한창 날고 뛰지만 우국우시하는 탄식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철이 화창한 봄날임에도 뒤숭숭하다. 독도니, 북핵이니 거기다 유전이니, 천도니……. 굵직한 톱 뉴스 말고도 어느 애비는 자식에게 버림을 받아 목을 천장에 묶었고, 어느 애비는 폭력을 쓰다가 딸에게 목을 죄여 숨이 끊기는, 그래서 봄날은 슬프다.

버럭 화를 낼 수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여름날 혹서에 시달린 황소처럼 외양간에 누운 채 꿈벅꿈벅 졸거나 아득아득 되새김질할 뿐 눈시울만 축축해진다. 기껏해야 저들이 들리지 않는 뒷전에서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나라 밖에서는 해일과 지진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나라 안에서는 산불이 꼬리를 물어도 산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추녀를 맞대고 다소곳하다.

산을 내려오는 골목에서 딸그락거리는 수저 소리를 들었다. 지금 저들의 행복은 저들의 식탁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저들의 식탁에도 설탕·소금·쌀밥 등의 소위 삼백三白을 금기하는 훈령이 내렸을까? 아~니, 반주를 곁들였을까? 석 잔이 넘으면 가슴 한쪽이 둑 무너지듯 망가질세라 잔을 내려놓고 있겠지. 그렇다면 저들 또한 고분고분 준칙을 지키느라 쩔쩔 매면서 살아가는 비만한 성인들일까? 마치 궤도를 걸어가면서 넘어질세라 두 손을 설레설레 흔드는 사람들, 그들은 고물고물 착한 백성들, 그러나 궤도마저 없을 때 당장 어쩔 줄 모르는 창백한 시민일 뿐이다.

 

가끔 낯선 나라, 낯선 땅에서 막차를 놓치고 싶다.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어도 무방할 것이다. 까만 하늘 아래 씽씽 바람이 곤두박질하는 대합실 밖에 서서 당장 하룻밤을 어디서 지낼까? 망망한 불안과 미지의 위기, 그것들은 차라리 짜릿한 충격으로 다가올지 몰랐다. 하기야 목숨 걸고 대처한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벌써 중국의 서역을 여러 차례 떠돌았다. 우루무치서 남북 어느 쪽으로 가도 그 서편으로 황소의 잔등처럼 길게 누워 있는 산맥이 있다. 우랄 아타이에서 파밀 고원까지 장장 천 몇백 킬로미터의 길이에 평균고도가 3천 미터에서 4천 미터, 그 주봉인 덩그리 산은 7천2백 미터인, 말하자면 지구의 중심을 남북으로 누운 긴긴 장성이다. 이름하여 텐산(天山) 산맥이다. 그런데 그 길다란 장성은 3층·3원색이었다. 맨 위로는 하얀 적설, 가운데로 파란 산림, 맨 아래로 누런 사막. 그것들은 높낮이를 바꾸면서 파도를 치고 있었다. 마치 낙타의 길다란 행렬처럼.

나는 몇 번인가 저 파도 속 어느 구릉에 무작정 작은 깔대기를 세우고 거기에 사과 궤짝 서너 개에 놋냄비 한 개쯤 걸어놓고 남은 세월 몇 꼭지 없는 듯 숨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다.

그것은 꿈같은 이야기라 치자. 글쎄 내 눈썹 간지르도록 눈에 익은 고향집 돌아가기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시시콜콜한 세상 일 툭툭 털어버리고 무작정 내려갈 수 없을까? 가서 벌써 냉골된 지 스무 해가 훨씬 넘는 사랑방에 군불을 지피고 거기 대청마루에 자리를 깔고 벌렁 누워서 늙은 회화나무 그늘을 바라볼 수 없을까? 그리고 가로등 한 점 없는 깜깜한 밤에 초롱초롱 별을 보면서 죽음 같은 적막을 즐기고 싶었다. 말하자면 나는 무작정 하경下京 한 번 못 해 보았다. 고향이 그리우면 불현듯 파카 한 벌 걸치고 불 같은 배갈 한 병 허리에 차고 부르릉 액설러레이터를 밟으며 바람처럼 달려갈 수 없었다.

3, 40년 전, 그때 우리나라에는 무작정 상경이 러시를 이루었었다. 수백 년 지켜 살던 농토를 내던지고 남부여대男負女戴해서 서울로 모였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남쪽은 공동空洞으로 허물어진 지 오래지만 서울은 엄청 비대한 채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 번영을 이룩한 아버지는 일찍이 타관을 떠돌았지만 그의 아들·딸은 지금 서울을 고향 삼고 해피한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고향이 먼 옛날 할아버지의 타관이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수천 년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들의 까마득한 조상은 저 멀고 먼 알타이 산맥 언저리서 무작정 동진타가 어느 날 망망무애의 만주 땅에서 남하, 따뜻한 남쪽 반도를 개척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반도를 일군 파이어니어, 그리고 아름다운 서울을 번영시킨 상경족, 그들의 몇 할은 무작정 내려왔거나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성취, 그 몇 할은 그들이 빚은 영광일지 모른다.

나도 이 나이에 그 격정을 나누어 갖고 싶다. 안개처럼 소나기처럼 자욱한 눈보라 속을 무작정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