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천료>

 

이어받음과 열어나감

 

―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를 중심으로

 

                                                                                            김형진

현재 우리들은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수필류(隨筆類)에 에워싸여 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수필의 전성기를 맞은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꺼풀만 걷어내고 들여다보면 정체성(正體性)의 상실 뒤에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침체의 늪에 빠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이웃 장르인 시나 소설에서 1920년대 이후 치열했던 전통 형성 작업을 수필에서는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문학상에 드러난 국문수필은 극소수이다. 시조나 가사는 말할 것도 없고 국문소설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이 극소수인 국문수필을 대표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는 18세기 말 의유당(意幽堂)이 쓴 기행문 형식의 『동명일기(東溟日記)』, 19세기 초 유씨부인(兪氏夫人)이 쓴 제문(祭文) 형식의 『조침문(弔針文)』, 어떤 부인이 19세기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대화체 중심의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 등이다. 이 세 작품은 당대의 시조, 가사, 소설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문학성이 뛰어나다.

이 중 ‘규중칠우쟁론기’가 고대문학적 요소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으며 또 현대수필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알아봄으로써 한국수필문학의 전통을 정립하고 현대수필이 나아가야 할 길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규중칠우쟁론기’에서 쉽게 눈에 띄는 것은 서술방법이다. 서두에서는 직접적인 서술방법을 취하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간접적 서술방법을 취하고 있다. 서두에서는 화자가 표면에 나서나 본문에서는 화자가 이면에 숨는다. 의인화된 사물들 뒤에 숨어 그들의 언행을 통하여 서두에서 제기한 중심화제를 증폭시키면서 심도를 더해 간다.

먼저 직접적인 서술로 중심화제를 제기하고 있는 서두를 살펴보자.

 

「이른바 규중칠우(閨中七友)는 부인네 방 가온데 일곱 벗이니 글하는 선배는 필묵(筆墨)과 조희 벼루로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삼았나니 규중 녀잰들 홀로 어찌 벗이 없으리오.」

 

서두의 첫째 단락이다. 이를 요약하면 ‘선비에게 문방사우가 있듯이 규중부인에게도 규중칠우가 있다’이다. 이를 더 간단히 정리해 보면 ‘남자`→`문방사우`=`여자`→`규중칠우’의 등식이 성립된다. 남존여비의 가부장제가 엄존하던 당시의 사회제도 하에서 이렇듯 남녀평등사회가 열리기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서두의 둘째 단락에서는 규중칠우인 바느질 도구에 각각 명호(名號)를 붙여준다. 여기서 간과(看過)해서는 안 될 점은 바느질 도구에게 ‘각시(閣氏), 부인(婦人), 낭자(娘子), 할미’ 등 여인들에게 연령대에 따라 부여되는 호칭이 아니라, 바늘은 ‘세요(細腰), 자는 척(戚), 가위는 교두(咬頭), 인두는 인화(引火), 다리미는 울   , 실은 청홍흑백(靑紅黑白), 골무는 감토’와 같이 여인들의 개체를 인정한 호칭이다. 당시 개체성을 무시당하던 여인들에게 각자 이름을 붙여 주체적 인격을 부여함으로써 평등해야 할 대상을 ‘남자`=`여자’일 뿐만 아니라 ‘개인`=`개인’에까지 넓히고 있다. 이렇듯 평등을 중심화제로 당시의 사회제도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본문은 바느질 도구에 인격을 부여하여 전반부에서는 칠우끼리 논쟁을, 후반부에서는 규중부인과 칠우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간다.

 

「“규중 부인내 아츰 소세를 마치매 칠우 일제히 모혀 종시하기를 한가지로 의논하여 각각 소임을 일워 내는지라.”」

이로 미루어보아 칠우는 각자 자기의 소임에 충실한 공동사회의 구성원들이다. 그러니까 공동체 안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소임에 자부심을 갖는 개체들이다.

 

「일일一日은 칠위 모혀 침선의 공을 의논하더니 척 부인이 긴 허리를 자히면서 이르되, “제우(諸友)는 들으라, 나는 세명지 굵은 명지 백저포(白苧布) 세승포(細升布)와 청홍녹라(靑紅綠羅) 자라(紫羅) 홍단(紅緞)을 다 내여 펼쳐놓고 남녀의(男女衣)를 마련할 새, 장단광협(長短廣狹)이며 수품 제도(手品制度)를 나 곧 아니면 어찌 일으리오. 이러므로 의지공(衣之功)이 내 으뜸 되리라.”

교두 각시 양각(兩脚)을 빨리 놀려 내다라 이르되, “척 부인아, 그대 아모리 마련을 잘 한들 버혀 내지 아니하면 모양 제되 되겠느냐. 내 공과 덕이니 네 공만 자랑마라. (중략)”

인홰 이르되, “그대네는 다토지 말라. 나도 잠간 공을 말하리라. 미누비 세누비 눌로하여 저가락 같이으며, 혼솔이 나 곧 아니면 어찌 풀로 붙인 듯이 고으리요. (후략)”

울 낭자 크나큰 입을 버리고 너털웃음으로 이르되, “인화야 너와 나는 소임이 같다. 연이나 인화는 침선뿐이라. 나는 천만 가지 의복에 아참예하는 곳이 없고, 가증한 여자들은 하로 할 일도 열흘이나 구기여 살이 주역주역 한 것을 내의 광둔(廣臀)으로 한번 스치면 굵은 살 낱낱이 펴이며 제도와 모양이 고하지고 (중략) 더욱 세답하는 년들이 게으러 풀먹여 두고 잠만 자면 브딪쳐 말린 것을 나의 광둔 아니면 어찌 고으며, 세상 남녀 어찌 반반한 것을 입으리오. (후략)”」

 

앞부분에서는 척 부인이 자기가 맡은 소임의 중요성을 자랑삼아 말하자 교두 각시가 화를 내며 반박하고 있으며, 뒷부분 역시 인화의 자기소임 자랑에 울 낭자가 발끈한다.

우선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묘사의 뛰어남이다. 자는 허리가 길므로 성격이 느긋하며, 가위는 다리가 짧으므로 성질이 급하다. 그래서 교두 각시의 말은 척 부인의 그것에 비해 길이가 짧고 내용이 도전적이다. 울 낭자는 입이 크니 너털웃음이 어울린다. 그리고 매우 화가 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세답하는 년들이 게으러…” 식의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생김새에 성격을 부여하여 인물을 간명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활달한 자기표출은 청홍흑백 각시, 감토 할미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단순한 공치사가 아니다. 개체의 주체성을 확인함으로써 사회 안에서 각자가 평등한 존재임을 내세우고 싶어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단순히 공치사로만 치부하는데서 ‘공치사를 일삼는 세태풍자’라든가, ‘직분에 따른 성실한 삶’이라든가 하는 엉뚱한 중심화제를 끌어다 붙이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규중부인이 이르되, “칠우의 공으로 의복을 다스리나 그 공이 사람의 쓰기에 있나니 어찌 칠우의 공이라 하리오” 하고 언필에 칠우를 밀치고 베개를 돋오고 잠을 깊이 드니, (후략)」

 

그동안 잠자코 있던 규중부인이 의논에 참견함으로써 구성상 전환점 구실을 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규중부인과 칠우와의 관계이다. 규중부인은 칠우와 대등관계(對等關係)인 듯하나 실은 주종관계(主從關係)임을 보여준다. 규중부인도 자기의 공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는 칠우와 대등하나 개체를 의논의 상대로 생각지 않고 다잡아 다그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분히 차별적이다. 대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차별적인 이 미묘한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반부에서는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 소임이 비슷한 벗을 논박하던 칠우들이 이제는 공동으로 규중부인을 성토하기 시작한다. 서로 협력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친숙하고 대등한 관계로 알았던 규중부인이 자기들 위에 군림하는 상전임을 자처하고 나선데서 오는 배신이 원망으로 심화되면서 상층계층에 대한 저항적 색채를 띠어가는 것이다.

「척 부인이 탄식하고 이르되, “매야할사 사람이오 공 모르는 것은 녀재로다. 의복 마를 제는 몬저 찾고 일워내면 자기 공이라 하고, 게으른 종 잠 깨오는 막대는 나곧 아니면 못 칠 줄로 알고 내 허리 브러짐도 모르니 어찌 야속하고 노흡지 아니리오.”」

 

표면적으로는 원망스러움에서 나온 탄식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탄식과 원망에 그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규중부인(사람)은 임무를 수행할 때는 척 부인을 앞세워 부려먹고 임무가 완수되면 모든 공을 자기의 공으로만 돌리며, 척 부인의 소임과는 상관없는, 즉 게으른 종의 잠을 깨울 적에는 내려치는 매로 사용하기까지 하여 허리가 부러짐도 상관치 않는, 매정하고 야속함을 지나 노엽기까지 한 존재라는 것이다. 노여움은 적의(敵意)를 내포한 감정이다. 그리고 이 적의는 하층계급이 자기들을 핍박하는 상층계급을 겨냥할 때 더욱 거세어질 것은 자명하다.

 

「세요 각시 한숨 지고 이르되, “(전략) 내 일즉 무삼 일 사람의 손에 보채이며 요악지성(妖惡之聲)을 듣는고. 각골통한(刻骨痛恨)하며, 더욱 나의 약한 허리 휘드르며 날랜 부리 두루혀 힘껏 침선을 돋는 줄은 모르고 마음 맞지 아니하면 나의 허리를 브르질러 화로에 넣으니 어찌 원통하지 아니리요. 사람과는 극한 원수라. 갚을 길 없어 이따감 손톱 밑을 찔러 피를 내어 설한(雪恨)하면 조곰 시원하나. (후략)”

인홰 눈물지어 이르되, “(전략) 나는 무삼 죄로 포락지형(火包烙之刑)을 입어 붉은 불 가온데 낯을 지지며, (후략)”」

 

세요 각시는 규중부인의 말을 요악지성이라 단정한다. 이제까지 자기의 소임을 다해 온 것을 각골통한하며, 실컷 부려먹다가 마음에 맞지 않으면 허리를 분질러 화로에 던져버리는 규중부인이야말로 더할 수 없이 잔악하여 극한의 원수로 생각하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뾰쪽한 방법이 없어 이따금 손톱 밑을 찔러 피를 내어 한을 푼다 하였다. ‘갚을 길 없어’에서 보여주듯 엄존하는 계급사회의 벽을 의식하면서도 ‘이따금 손톱 밑을 찔러 피를 내’는 저항을 시도한다. 참으로 처절한 저항이다. 인화는 아무런 죄도 없이 포락지형, 곧 불에 달구어 지지는 형벌을 당하는 하층계급의 괴로움을 호소한다. 계급사회가 안고 있는 비인간적인 행태를 고발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조선 후기에 일기 시작한 평민들의 자의식이 기존의 사회질서에 충돌하는 모습을 형상화함으로써 평등사회 실현을 앞당기고자 하는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규중부인이 잠에서 깨어 칠우를 힐책(詰責)하는 대목에서 제2의 전환점을 맞는다.

 

「“칠우는 내 허물을 그대도록 하느냐.”」

 

계급사회 현실에서 절대적 권위를 지닌 상층계급인 규중부인이 뱉은 이 한 마디가 갖는 파괴력은 대단하다.

 

「감토 할미 고두사 왈(叩頭謝曰), “젊은 것들이 망녕도이 헴이 없는지라 족하지 못하리로다. 저희들이 재죄 있으나 공이 많음을 자랑하야 원언怨言을 지으니 마땅 결곤(決棍)하암즉 하되, 평일 깊은 정과 저희 조고만 공을 생각하야 용서하심이 옳을가 하나이다.”」

여재 답왈, “할미 말을 좇아 물시(勿施)하리니, (후략)」

 

감토 할미가 나서 사태를 수습한다. 육우는 감토 할미의 이 능란한 중재로 태형을 면하게 된다. 그렇다고 작품의 중심화제가 무너져버린 것은 아니다. 감토 할미의 말 가운데 ‘저들이 재주 있으나…’라 한 것은 칠우가 자기소임에 충실한 개체임을 내세운 것이며, ‘공이 많음을 자랑하야 원언을 지으니 마땅히 곤장을 침즉하나’는 육우의 저항이 현실적으로 죄가 됨을 인정하는 것으로 오랜 세월 계급사회에 순응해온 보수적 입장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평일의 깊은 정과 저희의 조그만 공을’ 내세워 용서를 구하고 있는데서는 계급사회의 장벽이 어느 정도 유연해져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더군다나 규중부인이 감토 할미의 말에 ‘할미 말을 좇아 물시(勿施)하리니…’한 것은 장벽이 유연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낮아져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평등사회 실현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할미는 고두배사(叩頭拜謝)하고 제붕(諸朋)은 참안(慙顔)하야 물러나니라.”」

 

계급차별이 엄존하는 당시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대목이다. 언뜻 고두배사(叩頭拜謝), 참안(慙顔) 등의 어휘는 좌절을 시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품의 결과는 작품 속에 내재된 요소 하나하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요소와 요소 사이의 결합과 상호보완에 의해 결정된다는 종합적 관점에서 본다면 좌절로 마감될 수는 없다. 작가가 서두에서는 직접적인 서술에 의해 분명하고 당차게 남녀평등을 내세우고, 본문의 전반부에서는 칠우의 개체성을 확인한 뒤 후반부에서는 육우들이 지배계층의 잔악함에 치열하게 저항하는 수순을 밟으면서 성별, 개체, 계층 사이의 평등을 간접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보아 말미에서 응당 작가의 직접서술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게 없다. 그러니까 응당 있어야 할 결미를 과감하게 생략해 버림으로써 문학적 효과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규중칠우쟁론기’는 수필의 전통 계승과 새로운 세계의 개척이라는 양대兩大 과제를 한꺼번에 제시해 주고 있다. 바느질 도구를 의인화한 기법은 일찍이 고려시대의 가전체(假傳體)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수궁가’ 등 판소리 사설로 이어져온 것이다. 의인화는 비인격체(非人格體)에 인격을 부여함으로써 관념적인 화제에 리얼리티를 부여할 수 있으며, 중심화제와 사회적 현실 사이의 마찰을 유화시킬 수 있는 고차적인 표현기교로서 현대문학에도 시, 소설, 희곡 등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인물의 동작과 대사를 절묘하게 조화시켜 표현해 내는 기법 또한 판소리계 소설에 흔히 보이는 것이다. 이는 우리 선대들의 탁월한 언어 구사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현대 산문문학에서도 인물을 간접적으로 묘사하여 문학성을 높이는데 주로 쓰인다. 불합리한 현실에 과감히 도전하는 치열한 작가의식은 고대소설 『홍길동전』이나 『춘향전』 등에 현저하게 드러나 있다. 도전적인 작가의식은 문학이 갖추어야 할 기본 정신이다. 이상을 추구하는 노작(勞作)이라는 점에서도 문학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다. 작가의 의식을 직접 드러내는 수필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점들은 순화하고 탁마하여 전통수필의 맥을 형성하는 요소로 삼을 만하다.

중심화제를 점진적으로 증폭(增幅)시키면서 심도를 더해 가다가 결미를 과감히 생략한 구성법은 ‘규중칠우쟁론기’의 백미이다. 이는 수필에는 구성법이 따로 없다는 일부 현대수필 담론자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수필의 구성은 시보다 치밀하고 소설보다 자연스러워야 한다. 결미를 과감히 생략함으로써 서두와 본문에 제시된 요소들을 상세화하고 결합하여 결말을 추출하는 작업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구성기법은, 의미나 지식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방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능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20세기 후반에 들어 과학, 인문학 등의 분야에 널리 적용되고 있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의 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필자가 독자에게 글의 내용을 조직하고 분류하고 연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용을 떠올리게 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단서를 주는가에 대하여 ‘명료성’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편으로는 필자가 (독자에게) 많은 안내를 제공하여 명료하게 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배경지식이나 논제지식을 바탕으로 독자가 추론하도록 남겨야 하는 상세한 부분까지도 명확히 기술해 주고 특별한 사건이나 국면 사이의 관계를 만들고,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조직적인 패턴인가를 말하는 초인적 담화를 사용함으로써 가능하다. 반면에 필자는 이런 많은 안내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세부적인 것을 상세화하게 하고, 관계를 짓게 하고, 중요한 생각들과 조직 형태들을 독자가 추론하도록 남겨둘 수도 있다. ─ 『구성주의와 읽기 쓰기』(N.N. spivey의 『The Constructivist Metaphor』를 신헌재 외 3인 번역) 중에서」

 

‘명료성’을 제공하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이라면 제공해야 할 단서의 어느 부분을 생략하여 추론케 함은 고차적인 글쓰기 기법이라는 ‘구성으로서의 작문’ 장의 이 부분은 ‘규중칠우쟁론기’의 결미 생략의 이론적 배경으로 채택할 만하다. 우리의 이 국문수필이 전위적(前衛的) 학문 이론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 한국현대수필을 열어나갈 텍스트로서의 자격을 부여받는데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 그렇다고 서문에서 본문에까지 배치한 요소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치밀하게 구성하는 노력 없이 결미를 생략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개화기 이후 서구 조류를 타고 들어온 현대시가 우리 시가(민요, 시조)의 부흥운동을 통하여 전통시의 맥락을 형성했고, 소설에서도 서구풍의 소설에 우리 고대소설의 요소를 결합시키는 노력으로 전통소설의 맥을 형성하여, 한국의 현대시와 현대소설의 발전에 기여한 것처럼 수필에서도 국문수필에 대한 탐구를 통하여 현대수필에 적용이 가능한 전통적인 요소를 찾아 이를 한문수필이나 서구수필과 융합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한국수필의 전통을 형성하여야 한다. 그러한 노고 뒤에야 한국수필이 그 위상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며, 현대문학의 한 장르로서의 자리를 굳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천료 소감>

 

이런 심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해냈다는 점에서는 기쁜 것도 같고,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데서는 부끄럽기도 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십 년 가까이 수필을 써오면서 한국수필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해 왔습니다. 어엿한 문학의 한 장르요, 작가들의 열정이나 인원에서도 타 장르에 뒤지지 않고, 전문 잡지나 단행본 출간에 있어서도 그 어느 장르보다 풍성한데 왜 수필만이 유독 공인된 위상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표류하는가, 고민하다 나름대로 처방을 찾아 나서보기로 한 것이 이런 부끄러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의 바람을 이해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너무 늦기는 하였습니다만 시간과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한국수필의 정체성을 밝혀 수필이 현대문학에서 가장 유망한 장르로 우뚝 설 날을 바라며 미력을 다해 보겠습니다.

 

본명 김길전金吉田. <계간 수필>로 천료(97년).

8인 수필집 『黃土에 부는 바람』(83년), 수필 모음집 『흐르는 길』(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