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살기를 바란 어느 하루

 

                                               김태길

내 나이 어언 80대 중반 마루턱에 올라섰다. 삶의 나머지는 덤이라 생각하고 유유자적한다 해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하지만 이미 벌여놓고 마무리를 짓지 못한 일들이 널려 있으니,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다만 다행하게도 오늘이 일요일이니, 이 하루만은 ‘덤’의 자유를 마음껏 누려도 좋을 성싶다.

내가 서재로 쓰는 방에는 문만 닫으면 마음대로 누울 수 있는 자리 하나가 마련되어 있다. 우선 그 위에 러닝셔츠 바람으로 큰 대(大) 자로 누웠다. 이제 내 세상이다. 반듯이 누운 자세로 길게 복식 심호흡을 한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불곡산(佛谷山) 맑은 공기가 전신에 상쾌하다.

어렴풋이 잠이 들 만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왜 하필이면 이런 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수화기를 들었다. 학술원의 당직자가 건 전화였다. 학술원 회원인 아무개 교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전화를 걸었다고 하였다. 학술원의 회원이 작고하면 우선 회장에게 알리는 것이 사무국에서 해야 할 일과의 하나이다. 내일 중으로 문상을 가겠다고 말한 다음에 수화기를 놓았다.

학술원이라는 곳은 고령자들의 집단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상을 떠나야 할 사람들이 가끔 모여서 나라 걱정을 하기도 하고, 옳은 길과 그른 길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모임 한 모퉁이에 나도 끼어서 이런저런 문제들로 신경을 쓰는 요즈음이다. 그렇게 신경을 쓰는 순간에는 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상을 떠나야 할 대열 한복판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다.

인명은 재천(人命在天)이라 하였다. 앞에 선들 어떠하고 뒤에 선들 어떠하랴. 만사를 하늘의 뜻에 맡길 일이다. 우선 ‘덤’으로 살기로 한 오늘 하루를 ‘덤’답게 보내기 위하여 자다가 만 낮잠을 다시 청할 요량으로 아까처럼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그러나 누워서 눈만 감으면 언제나 잠이 오도록 두둑한 신경을 가진 위인이 못된다. 쓸데없는 생각들이 무질서하게 오락가락한다.

또 전화벨이 울렸다. ‘네에에’ 하며 시들한 목소리와 함께 수화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생각지도 않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찜통 같은 더위에 기력이 안녕하시냐며 인사성도 밝다. 어쩐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기에 용건을 물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한 조건의 부동산이 나왔다며 긴 설명을 시작한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였다. 90 고개를 바라보는 늙은이 두 사람만 사는 집이라는 것이 미안함의 이유였다. 목소리가 아주 젊게 들린다며 곧이듣지 않는다. 이번에는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수화기를 놓았다.

그 뒤로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에 또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잘 아는 친구의 것이다. 10여 년 전에 내가 조그만 신세를 진 적이 있는 친구가 건 모처럼의 전화였다. 우선, 반가운 목소리다. ‘찜통 같은 더위’에 관한 인사가 자연스럽게 교환된 다음에 용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용건은 모종의 축하 말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크게 어려운 부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전화’라는 것이 ‘덤’으로 하루를 사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찜통더위와 전화벨을 동시에 피할 수 있는 길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집에서 5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곳에 ‘태현공원(泰峴公園)’이라는 이름까지 붙은 공원이 있는 것이다. 그곳에는 정자와 나무 그늘이 있어서 휴대전화만 들고 가지 않으면 두 가지를 동시에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아스팔트 길 위를 걸어가는 구부정한 노구(老軀)는 아래와 위에서 협공하는 복사열(輻射熱)이 힘에 겨워 느릿느릿 걸음의 속도를 조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자와 나무 그늘이 있는 공원까지만 가면 문제는 해결되리라는 희망을 안고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공원에 도착해 보아도 문제는 남아 있었다. 정자와 큰나무 그늘에는 빈자리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가족끼리 또는 이웃끼리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 모여서 음식과 소담笑談을 즐기고 있는 틈에 땀에 젖은 몸을 들이밀 여지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태현공원을 떠나서 성당(聖堂)으로 통하는 길을 한 5분 걸어가면 왼쪽에 또 하나의 아주 작은 공원이 보인다는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발길을 옮겼다. 그 이름 모를 작은 공원에는 사람들이 적었다. 매우 크고 깊게 우거진 나무 그늘에 오직 소수의 젊은이들이 조용히 쉬고 있을 뿐이다.

그곳에 놓인 긴 의자 하나가 빈 채로 있기에 나는 그것을 차지하였다. 참매미도 말매미도 아니고 쓰럼매미도 아니어서, 그 이름을 들은 적 없는 매미들이 기를 쓰고 합창에 열중하는 소리가 나를 어린이 시절로 되돌아가게 한다. 순간 같기도 하고 아주 오랜 세월 같기도 한 나의 살아온 길이 아물아물하다.

장난꾸러기 아들을 데리고 왔던 젊고 건장한 아빠도 떠나가고, 시누와 올케 같기도 하고 동서끼리 같기도 한 두 여인들도 사라졌다. 홀로 남게 된 나는 아예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땀에 젖은 발을 바람에 맡겼다. 아까는 중학생 같은 여자아이가 북쪽으로부터 와서 남쪽으로 가더니, 지금은 그보다 약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남쪽으로부터 와서 북쪽으로 사라진다. 나도 좀더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야지.

이름을 들은 적 없는 매미들은 아직도 열심히 합창에 열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