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지난 바닷가

 

                                                                                          유혜자

해수욕철이 지난 바닷가를 찾았다.

해질 무렵의 바닷가를 거니노라니 먼 빛으로 푸르게 보이던 맑은 물이 잔 파도를 찰싹거려서 정겨운 시냇물 같다. 여름내 흥겹던 열광의 발자국들이 지워진 바닷가. 투명한 제 모습이 드러나도록 잔 파도가 바닥을 조심스럽게 훔쳐내는 듯하다. 물기가 잦아든 모래펄엔 작은 게들이 쏜살같이 달리고, 이미 구멍을 뚫고 들어간 놈들이 밀어올린 모래구슬들로 모래펄은 화려한 구슬 무늬를 이뤘다.

게들이 밀어올린 모래구슬이 여기(餘技)로 빚어낸 것처럼 여유 있게 보인다.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살라 하는 것 같다. 사람은 최선을 다할 때 고통의 깊이만큼 밝아지고 구슬이 아닌 열매가 모아질까.

예전의 철 지난 바닷가는 한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가까이 큰 숙박시설이 있어서인지 어느 회사 연수팀 젊은이들이 구령에 맞춰 뛰어가고 있고, 산책하는 커플들의 느슨한 걸음걸이가 이어져서 적막하지가 않다. 처음 왔을 때는 없던 작은 유람선과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간이 선착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해안 가까이 모래펄에 선착시설이 박혀 있었는데 저녁 먹고 나와 보니 바다 한가운데로 옮겨져 있다. 옮긴 것인지, 그 동안 물이 많이 들어왔는지. 물도 들어왔고 자리도 옮긴 것 같아 위치를 확인하려는데 가까이 모래펄에는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지프차가 한 대 서 있다.

사람들이나 조용히 거닐어야 할 자리에 세차를 하려고 세워놓았을까. 고장이 난 걸까. 자동차 주인은 소금물에 부속품이 나빠질 것도 생각을 못했는지 마음에 걸려서 자꾸만 돌아보는데, 멀리 수평선 쪽에서 희끗한 것이 눈길을 잡아끈다. 고깃배인가, 유람선일까.

일상적인 쳇바퀴에서 벗어나 멀리 수평선에 넘나드는 배를 한가롭게 바라보는 것으로도 생활의 무거운 짐이 벗겨진 듯 홀가분하다. 바다처럼 넓은 시선으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싶다. 한순간도 같지 않은 바다처럼 새 모습의 나를 만나고 싶다. 수평선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하얀 배를 보며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생각하는데 멀리서 어느 새 밝혀진 등대가 깜빡거리는 것이 어렴풋이 보인다. 등댓불을 껐다 켰다 하는 것은 넓은 바다에서 배가 계속 켜 있는 불을 보고 가다가 방향을 잘못 잡게 될까 봐서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게도 길을 잃을까 봐 인도해 준 깜빡이는 등대가 있었던가.

평소에 무심하게 무감각하게 보냈다면 한순간도 같은 모습이지 않는 바다 물결에서 새로운 감동을 느끼고도 싶다. 여름 바다가 사람을 들뜨게 하고 완성되지 않은 감성을 소용돌이치게 한다면 가을 바다는 차분한 이성을 되찾아준다. 태초부터 넘실대는 바다의 충만한 가슴 속엔 희로애락이 잠겨 있으면서, 바람이 불지 않으면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는다. 대신 바람이 일으키는 잔물결이 우리 가슴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생각의 응어리들을 일으켜 솟아오르게 한다.

바다가 비워낸 모래펄을 보며 마음을 비운다는 말에 무심할 수가 없다. 충만과 비워낸다는 것은 상통하는 의미가 아닐까. 끝없는 욕심으로 혼돈 속에서 어느 것이 의욕이고 혹은 쓸데없는 욕심인지 미욱하여 선별되지 않을 때가 많다. 모래펄에 흩어진 조개껍질 중에서 남보다 오묘한 것을 찾아낸 기쁨과 뿌듯함을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할 만큼 어리석기도 하다. 그런 것도 마음 비우지 못한 욕심일까.

홍윤숙 시인이 ‘빈자리’라는 시에서 ‘내가 너희를 빚어 세상에 보냈을 때`/`너희 안에 남모르는 빈자리 하나 마련하였거니`/`바로 내가 돌아가 너희를 채워줄 나의 집이니라’한 신앙시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밀물은 가장 멀리 나갔던 물이나 연안에서 맴돌던 물도 한꺼번에 밀고 들어오리라. 잃어버린 마음은 찾을 줄 모르고 가진 것만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지는 않았는지 밀물을 보며 생각해 본다.

바다에 파도가 사라지지 않듯이 사람들의 욕심도 줄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노라니 바닷가 저쪽 송림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향그럽다. 또 여름이면 얼마나 많은 인파들이 이 모래펄을 열기로 달구고 오염시킬까 두려운 마음인데, 모래펄에 서 있던 자동차가 몸체가 무거운 듯이 투박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다. 가만히 보니 간이 선착장에 물이 잠기고 유람선을 자동차가 끌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고요한 바닷가에 철鐵, 아니 자동차가 달릴 때 모래펄의 생물들은 얼마나 놀랄까. 하루에도 여러 차례 자동차, 아니 철이 지나는 바닷가가 어떻게 될 것인가.

바다가 사라질 수 없는 한 저렇게 사람을 위한 기구들을 끌어들여 부드러운 바다 밑바닥은 화석처럼 굳어지지 않을까. 자동차가 지나는 철 지난 바닷가를 떠나는 마음이 편안치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