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여유

 

                                                                                      구양근

이번 중국 여행은 내가 자청한 것이다.

우리 과는 중국의 세 대학에 어학연수생을 보내고 있다. 총장님의 구상으로 지금 한창 인기가 있는 중문과 학생은 4년 재학기간 동안에 누구나 1학기 이상 현장학습을 쌓아야 한다는 계획 때문이다.삼 년이 넘었다. 중국에 대한 현장감각이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자진하여 가겠다고 하였다. 고참인 내가 자청을 하니 모두 의외인 모양이다. 젊은 학과장은 물샐 틈 없이 일정을 짜주고 수속이며 현지 연락을 다 취해 주고도 걱정이 되는지 몇 번이나 괜찮겠습니까를 연속한다.

“사람을 무엇으로 아는가? 단돈 2백 불을 비상금으로 가지고 가서 외국 유학 10년을 마치고 온 내 경력을 몰라서 하는 말인가?”

큰소리는 쳤지만 워낙 넓은 대륙을 횡단하며 빡빡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 약간 불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보니 실은 망중한도 즐길 수 있었고, 중국인의 여유를 보고 나도 그렇게 그곳에서 살아버리고 싶은 충동도 여러 번 느꼈다.

중산대학은 후문인 남문에서 정문인 북문까지 직선으로 걸어가는데도 20분이 걸리는 거대한 대학이었다. 북문에 도착하니 키 큰 홍면수(紅棉樹) 붉은 꽃과 어울리게 ‘국립중산대학’이란 높은 패루(牌樓)가 홀로 서 있고, 거기에 바로 주강(珠江)이 연해 있다. 주강 위에는 한 척의 유람선이 떠 있고, 그 배의 유람을 즐기려는 듯 주로 데이트 객들이 상당수 승선해 있다. 이 배가 몇 시에 떠나는가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는 배에서 내려 하릴없이 길가를 서성이다 야자 하나를 샀다. 3콰이(塊) 5마오(毛), 우리 돈 350원 남짓이다. 우리나라 커피 한 잔 값의 10분의 1. 돌처럼 단단한 야자를 가장 약한 부분인 꼭지 쪽에서 칼로 구멍을 내더니 빨대를 하나 덜렁 꽂아준다. 야자 하나를 다 빨아들였는데도 배는 떠날 줄을 모른다. 그런데 얼핏 보니 언제 왔는지 뱃사람인 성싶은 사람이 배 삯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얼른 타서 8마오를 지불하고 한쪽 구석을 차지하였다.

배는 서서히 떠나며 광주의 최신 발전상을 선보이더니 어느덧 15분 만에 탠즈마터우(天字碼頭)란 부두에 정박한다. 내가 물을 때는 분명히 이 배가 다시 중산대학까지 돌아온다고 하였는데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하선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몇십 분 동안 기다리면 이 배가 다시 출발해서 중산대학까지 간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거기서 택시로 부랴부랴 중산대학 북문까지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유람선이 있으면 무조건 타는 것이고, 타고 있으면 배는 언젠가 떠나는 것이고, 내려주는 곳에서 노닐다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바쁠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가롭기 그지없는 사람들이었다.

심천대학에서는 상해로 가는 비행기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차분히 점심을 먹을 시간이 적당치 않았다. 아침 겸 점심이 될 수 있는 광동 특유의 ‘얌차(飮茶)’를 먹자고 하였다. 신타오웬 호텔(新桃園酒樓) 이층이 식당인데 평일인데도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일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름을 대고 번호 대기를 하여야 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이층 식당을 들어서니 그 넓은 홀에 손님이 가득하고 담소하는 소리가 온통 공간을 메아리치고 있었다. 식탁에 앉아서 손수레가 지나가면 멈춰 세우고 요리를 집어오면 되는 것이다. 죽 종류의 손수레, 만두 종류, 약밥 종류 등 손수레는 끊임없이 지나갔다. 지금 시간이 오전 10시인데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이렇게 한가할까. 이런 아점의 식사가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계속 되었고 손님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상해의 사범대학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꾸이린 공원(桂林公園)이 있고, 그 건너편에 캉젠웬(康健園)이란 공원이 있었다. 나는 아침이면 교문 앞의 아침거리를 사먹으러 나가곤 하였다. 3콰이면 탠쑹쯔판젠(田松   飯券, 긴 말이 밥)이든 산뚱젠삥(山東煎餠, 얇은 떡 말이)이든 훈뚠(混沌, 작은 고기만두국) 등을 먹을 수 있었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꾸이린 공원이며 캉젠웬을 산책하고 들어가곤 하였다. 캉젠웬 공원에는 기지개를 켜는 듯, 잠꼬대를 하는 듯 느리기 짝이 없는 타이지췐(太極拳)의 무리가 물결치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무더기들의 율동 체조, 부채춤, 검무가 여기저기서 느리게 춤추고 있었다.

꾸이린 공원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거기는 중국 정통 정원을 모방하여 만든 공원이었다. 각 곳에 정자며 연못이 대관원이라도 들어온 양 고즈넉하다. 동네 노인들은 모두 집에서 가지고 온 샤오삥(小餠, 작은 떡), 이우탸오(油條, 꽈배기)를 샌드위치 한 것이나 찐빵을, 자기가 가지고 온 보온병에서 엽차를 따라 한가로이 식사를 즐기며 담소를 나눈다. 한 정자에서는 어느 자선단체에서 나왔는지 한 아주머니가 노인들에게 정성들여 엽차를 따라드리고 있었다. 나도 오랫동안 그들과 하나가 되어 물끄러미 앉아 있었다. 시간이 멈춘 중국에서 저렇게 우주의 순리대로 살다가 가면 되는 것을 그토록 아옹다옹하였나 보다고 후회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