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은 추웠네

 

                                                                                       권태숙

‘쭛쭛시장, 긴급 체포’란 신문 사회면 한쪽에 박힌 타이틀을 찾아낸 그는 큰숨을 한 번 쉬었다. 그리고는 활자 하나하나를 눈에 새기듯 읽어나간다. 지난 선거에서 공천 헌금 5억 원을 건넨 혐의를 포착했다는 기사. 1년 반 전인 그 당시 조그만 도시가 들썩거렸던 사건이, 그 지역 국회의원의 다른 횡령죄 수사중 밝혀진 것이다. 어제 그의 남편에게 고향의 동창들로부터 걸려온 전화로는 미진한 구석이 있었다. 조간이 오자 그 기사부터 찾았는데, 막상 확인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허탈감이 밀려오면서 눈앞이 부옇게 흐려졌다. 지금 드러난 불법 사항이 그때는 어찌, 진정을 해도 밝힐 수 없었나.

 

그의 남편은 정치를 하고 싶어했다. 살림이 안정되고 나이가 들어가자 세월 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가족을 위해 오랜 희망을 보류해온 사람에게 더 이상 절대 불가를 선언할 수는 없었다. 친구는 그랬다.

“너도 대범해졌네, 감히 그런 허락을 하다니.”

“아니, 나 만나서 자신의 꿈을 한번 펴보지도 못했다는 원망 듣기 싫어 져준 거야.”

2000년 가을, 23년간의 공직생활을 미련 없이 접고 그의 남편은 고향으로 갔다. 그로부터 2년 가까이 그는 서울과 쭛쭛시를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했다. 대학생이지만 두 아들에게 네 식구가 살던 집을 맡길 수만은 없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기차를 탔다. 차창으로 보이는 황금빛 들판이 황량한 벌판이 되었다가 푸른 카펫으로, 다시 누렇게 변모해가는 광경을 보면서 그는 생각했다. 기차 속에서 가장 한가하게 휴식한다고.

계절의 변화는 옷을 갈아입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었다. 마음은 언제나 분주한 시장터였고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남편도 고향에서의 공백 기간을 메우느라 동분서주했다.

2002년 6월 13일,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에 출마했던 그의 남편은 패배의 잔을 마셨다.

“그 당 공천만 받으면 바보라도 당선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인 지역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지역에 내려오면 그의 남편을 앞세우고 행사에 참석하던 국회의원은 공천 날짜가 가까워오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서관을 몇 차례 만나고 온 그의 남편은 분개했다.

“이대로 말 수는 없어. 시민의 심판을 받아야겠어.”

시작할 때는 당의 공천을 받으면 하겠다던 그의 남편이 무모하게 정치판의 생리를 답습하려 했다. 그는 승산 없는 싸움을 말렸다. 합리적인 설득이 효과가 없자, 운명의 힘을 빌어보려 했다. 무언가 암시하는 듯한 세 개의 꿈을 이야기했다.

“구슬을 실에 꿰고 있었어. 반쯤 했는데 다시 해야겠다면서 꿴 것을 다 풀었어.”

“흰 종이에 당신 이름을 크게 썼는데 글씨가 점점 흐려지는 거야. 나중엔 잘 안 보이게 되구.”

“당신이 당선되었다는 거야, 좋아서 책상에 앉아 무언가에 사인을 해서 비서에게 주더라고.”

상징적인 꿈은 그대로, 현실적인 것은 반대로 풀이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을 무시한 채 남편은 출항을 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한 배를 탔다. 괜히 이해심 많은 척했다고 후회했다. “정치하려면 나랑 이혼하고 해.” 사업에 성공한 남편이 딴 마음을 품으려 할 때 얘기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는 지인(知人)의 말을 기억하며 그는 ‘난 왜 그렇게 말할 수 없었을까. 정치라는 것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란 걸 왜 헤아리지 못했을까’ 생각했다.

 

“아니, 이런 후보가 시장이 되게 할 수는 없심더. 옛날 체육선생 할 때 한 짓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저거 아부지는 일제 때부터 고리대금으로 돈 벌었지. 행실은 또 어떻고. 그 애비 돈으로 교육위원도 안 샀나.”

모르는 50대 여인과 팔순 노인이 한 말에 위안삼았다.

“3번이 최고야, 학벌이나 경력이나. 3번 파이팅!”

홍보물을 보고 시장 상인들이나 젊은이들이 손가락 세 개를 치켜세울 때 힘을 얻었다. 그러나 선거전은 예상한 대로 쉽지 않았다. 그의 남편이 고향을 떠난 30여 년 동안 다른 후보는 줄곧 그 도시에서 살았고, 야망을 위해 수년 전부터 투자를 해왔다. 인적 물적 조건에서 크게 불리한 게임이었다. 계획한 액수만 투입하겠다고 작정한 것은 그의 무지였다.

부녀회, 경로잔치, 종친회 등에서 후보와 후보 부인을 부르는 모임은 동네 수보다 많았다. 빈손으로 갔다 나오면 뒤통수가 따가웠다. 선거는 이상이 아니었고, 더욱 지방의 선거풍토는 지방자치제도 자체를 회의하게 만들었다. 비린내 나는 곳에 쇠파리 모이듯 이 후보 저 후보 찾아다니는 꾼들도 많았다.

선거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날, 회계담당이던 사촌 시누이가 급히 전화를 했다. 운동원들이 수고비가 밀렸다고 사무실에 앉아 버틴다고. 그는 유세차를 타고 가다가 방향을 돌렸다.

“그저께 준 돈으로 일당 안 줬어요?”

“큰오빠가 다른데 쓴다고 가져갔어요. 후보도 알고 있는데.”

맥이 풀렸다. 지역을 잘 아는 시숙은 여러 모로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그의 의도와는 차이가 많아 곤혹스럽기도 했다. 내일이면 줄 수 있다고 해도 주동자는 막무가내였다.

“나를 믿고 나가주세요, 사흘밖에 안 남았잖아요.”

“어떻게 믿어요? 미루다가 선거 끝나면 그만일 텐데.”

총알처럼 튀어나온 그 한 마디에 그는 주저앉고 싶었다. 이렇게 살진 않았는데, 이렇게는……. 그때 뒤에서 “난 사모님 믿어요.” 크게 누가 외쳤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두런거리더니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선동한 몇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남았다.

그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들에게 선거판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비록 한때 돈을 벌게 해주지만, 결코 신뢰할 수 없다는 의식이 비정한 얼굴 위에 흐르고 있어. 그런 사전 지식도 없이 덤벼들었으니 상처를 입을밖에.’

 

“여러분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많이들 드십시오.”

고기 굽는 냄새가 식당을 메우고 환기통으로 미처 빠지지 못한 연기가 실내를 자욱하게 했다.

“후보님은 다음에 나오시면 틀림없습니다.”

덕담인지 위로인지 모를 한 마디 외에는 다들 먹기에 바쁘다. 테이블마다 술잔이 오가고 음식이 추가되고, 일부 여성 운동원은 애들까지 데리고 와서 고기를 먹이느라 여념이 없다. 대형 TV가 켜지고 월드컵 축구경기가 화면에 뜨자 시선은 일제히 한 곳에 집중된다. 대 포르투갈 전, 우리가 16강에 드느냐를 결정하는 경기. 모두들 선거에 패배한 사실은 잊고 축구공에만 정신을 뺏기고 있다. 그의 눈은 화면 속의 공을 따라가고 있으나 마음은 깊이 모를 물 속을 헤매고 있었다. 때로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그는 매캐해진 공기가 목젖을 눌러오자 희부연 안경을 닦을 생각도 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계간수필>로 등단(98년).

전 서울 성산여중 국어 교사. 四季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