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처 보기

 

                                                                                         정훈모

뉴욕의 맨해튼 거리는 상상했던 대로 활기차고 복잡했다. 수많은 빌딩들과 많은 인파들 그리고 자동차들, 우리 관광버스는 정차할 곳을 찾지 못해 34번가를 계속 돌았다. 성수기 때는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오후 5시가 넘어선지 별로 기다리지 않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86층으로 올라가니 전망대다. 내려다보니 과연 스카이라인이 대단하다. 저만치 앞에 하늘 끝이 있는 듯하다.

여행하는 동안 내내 많은 것을 보느라고 정신없이 다니다가 마지막 코스인 여기에 서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눈앞에 불현듯 보이는 흰구름이 한가롭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하늘에 오르듯 나는 생각의 넝쿨을 탄다.

평소에 헬렌 켈러의 상상력을 찬탄하던 나는 그녀가 쓴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란 글을 좋아했다. 그는 첫째 날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준 친구들의 내면적인 천성을 보고 싶고, 둘째 날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예술을 통해 사람의 영혼을 살펴보고 싶고, 셋째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그들이 어떻게 일하며 살아가는지, 도시의 행복과 불행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기회가 되면 나도 그녀처럼 같은 체험을 해보리라 상상하며 이번 여행 일정을 뉴욕으로 잡았다.

저 밑에서 사람들은 열심히 움직이고 있겠지만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니 모든 것이 아물거린다. 세상살이가 환영(幻影)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똑바로 보라고 말들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웃거리고 더듬어보았자 조물주의 눈에는 사람들이 마치 고물거리는 벌레들처럼 보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렇게 하염없이 서서 내려다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철조망 밖의 난간에 비둘기 한 마리가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급히 남편을 불렀다. 남편과 나는 생전 처음 비둘기를 보는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며 사진을 찍었다. 그는 사진을 찍는데도 꼼짝을 하지 않고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갑자기 ‘눈부처’라는 말이 생각났고, 비둘기의 눈에 눈부처라도 만들 것처럼 마주 바라보았다.

“어쩌자고 여기까지 혼자 올라왔니?” 나는 신기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그 역시 나를 보고 “너는 무엇을 찾아 여기까지 왔니?” 하고 물으며 나를 빤히 보고 있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 비둘기는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고 그리고 유일하게 젖을 먹여 새끼를 기르는 모성 본능이 강한 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살며 가장 빠르게 비행하는 새라는 정도다. 그런데 혼자 이 높은 곳에 앉아 있는 비둘기가 무슨 의미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가슴으로 그를 안았다.

그 날 저녁 나는 맨해튼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그렇게 J를 만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다. 다른 친구를 통해 그 친구의 전화번호를 듣고 나는 망설임도 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금방 서로를 알아보고 얼싸안았다.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는 잠깐 동안 서로의 안부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J는 77년에 온 집안이 이민을 왔고, 그 동안 디자이너 일을 하다 지금의 남편과 재혼을 했으며, 남편은 변호사로 잘나가고 있어 경제적으로는 풍족하나 전실 자식들을 키우는 문제가 만만치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세 살부터 키운 막내가 친엄마로 알고 잘 따르고 있다면서,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어릴 적 모습과 천성이 보인다.

우리는 푸짐한 저녁을 먹고 길 건너 빵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뉴욕의 밤은 깊어만 가는데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고려당’이란 네온 간판을 보니 여기가 서울 종로인지, 맨해튼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눈가에 살짝 어린 주름살도 무색하게, 우리들은 모두 어릴 적 빛났던 순간들을 이야기하며 갈래머리 소녀들처럼 웃었다.

나는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도 터널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굴을 뚫는 작업과 비슷하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같이 노력하면 금방 소통이 되지만, 한쪽에서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단단한 바위를 만나면 어렵듯이 상처가 많은 사람이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 어렵게 터널을 뚫었어도 자주 왕래하지 않으면 다시 막힐 수도 있다.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는데, 우리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잘 통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후에 만난 비둘기와 내 친구들이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지키면서 전문가로 일하는 모습들과 그러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점들이 닮아 보였다. 동그란 그녀들의 눈과 비둘기의 눈이 오버랩 되며 내 가슴으로 다가왔다.

‘무엇을 보러 여기까지 왔을까,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보며 살아갈까?’ 하는 화두를 안고 나의 일정은 끝이 났다. 각자의 가치관과 인식의 틀이 문제겠지만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음에 감사하며, 헬렌 켈러처럼 마음의 눈으로 친구 J도 만났고, 센트럴 파크를 거닐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9·11 사태의 참사 현장을 보며 이 도시의 행복과 불행도 보았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환영이라도 나는 의미를 부여하며 보고 싶다. 다음날 새벽 공항으로 가면서, 나는 언제나 세상을 경이롭게 볼 수 있는 눈과 남은 생의 길목에서 만날 모든 사람들에게 눈부처(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를 보리라 소망하며 뉴욕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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